사는 이야
얼마 전 군대 선임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끊겼던 모임을 다시 시작하고자 하니 나오라는 것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선임에게서 ‘추억’이니 ‘인연’이니 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내키지 않는 기분이 더 진해졌다. 꼭 그렇게 추억과 인연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서 그럴듯하게 포장해야 하는 걸까?
OB 모임에 나가면 우선 곤혹스러운 것이 나의 근황에 대한 호기심이다. 다들 내 삶이 왜 그리 궁금한지 모르겠다.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응원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야만 한다. 게다가 어느 모임에서든 반가운 사람이 있는 반면, 싫은 사람도 있다. 싫은 사람은 당연히 나를 괴롭혔던 사람이다. 환경이 변하고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그 감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도 없이 친한 척, 그런 일이 없었던 척하는 것이 싫다. 이런 만남 참 피곤하다 싶은데도, 다음번 만남은 또 정해야 한다.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 같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왜 추억과 인연에 그토록 집착할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사라졌다가도 작은 불씨로 인해 다시 피어오르기도 한다. 나는 그 불씨를 피우고 싶지는 않았다. 기억 속에 그대로 남겨두고 싶다. 사위어 가든, 뿌리를 내리든...
싫든 좋든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추억도 시간의 손길에 맡겨두면 된다. 굳이 포장해서 냉동 보관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사라져 가도록 내버려 두는 쪽을 택하고 싶다. 군대에 관한 기억은 이미 절반쯤은 부스러져나간 상태이다. 앞으로도 점점 더 기억의 내용은 빈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독특한 향은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다녀온 부대는 수색대라는 곳이다. 남자들 군대 이야기의 단골소재가 되는 여러 특수부대가 있지만, 이곳은 다른 의미로 독특한 곳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철책선은 38선이 아니다. 실제 38선은 철책선 너머 비무장지대 한가운데이며, 1킬로미터 간격으로 박아놓은 콘크리트 말뚝으로 표시되어 잇다. 그 말뚝마저도 풀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사실상 남북한 간에는 경계가 없다. 우리가 38선으로 오해하고 있는 철책선은 이 말뚝들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각각 2킬로 지점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철책 선 안에 있는 콘크리트 건물에서 근무했다. 이곳을 GP라고 부른다.
신병교육대에서 훈련할 때였다. 모자에 독수리 마크를 단 군인들이 숙소를 헤집고 다니며 규격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내었다. 우리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들고 있던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나를 포함해 동기 스무 명을 따로 모았다. 다른 이들이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를 타고 자대에 갈 때, 우리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숙소까지 뛰어갔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굳게 닫힌 철문을 넘어가야만 갈 수 있는 다른 세상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니 끌려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어떤 자유의 지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수색대로 차출된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2년 동안 생활했다. 고립된 곳에서 살다 보면 서로 가족 같은 인연이기도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악연에 얽매이기도 한다. 그때의 인연인 듯 악연인 듯한 10명의 사람들이 이후 20여 년간 꾸준히 연결되어 왔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이 아쉬워 제대 후에도 계속 만나 왔는가? 계속된 인연을 통해 무엇을 바라왔던가?
북한군의 남한 GP 폭격이 시작됐다. 어린 병사들은 그때 생사가 갈리는 두려움을 느꼈다. 죽음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게 되자 삶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을 ‘인연’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되는 걸까?
한동안 만나오던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연락이 뜸해졌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되어서야 다시금 연락이 됐다. 가파른 시절이 지나가고 이제 숨좀 쉴만하니, 사람이 그리워진 모양이다. 나도 조금은 그랬다. 두려움이 소중함을 가르치듯, 가파름은 완만함을 알게 하는 모양이다.
우린 명색이 수색대였다. 그러므로 GP에서 근무하는 동안 수색이라는 것을 나가곤 했다. 안전상의 이유로 정해진 루트로만 다녀야 한다. 그 길을 벗어나게 되면 숨겨진 지뢰에 노출돼 목숨을 위협받게 된다. 한 번은 동기 한 명이 수색견을 앞세워가다가 수색견에 끌려 루트를 이탈해 지뢰를 밟았다. 발목지뢰라고 하는 것인데 말 그대로 발목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동기는 바로 전역을 하였고 그 이후 모임에 나왔을 때는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을 지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길가의 아카시아 나무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진한 아카시아향이 좋았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벤치에 앉아 쉬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에서 난 100년 전쯤의 풍경을 상상하며 눈을 감곤 했다. 100년 전 사람들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중 이것 혹은 저것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다시 살아본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주역인 동시에 관객으로서 다시 사는 것이다.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장소이다. 공기도 신선하고 햇빛도 깨끗하다. 누구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를 한숨에 들이마신다. 피어있는 꽃들,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들, 길이에 제한을 두지 않는 풀들, 귀신같이 지뢰를 피해 뛰어다니는 노루들. 누군가 앉아있었을지 모를 홀로 남은 벤치... 그 벤치에 내가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서 바람을 느끼고 지나간 사람들의 냄새를 맡는다. 누군가 이 벤치에 앉아 사랑을 나누었겠지? 슬프게도 울었겠지? 연극처럼 그때를 재연해 본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세월 따라 변하지 않은 광경이 있다면 바로 저 하늘이겠지. 구름들은 먼 과거의 사람들이 보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던 구름을 나도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변한 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일 뿐이다.
하늘로부터 거두어들인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길가에 뒤집혀 있는 지프차량, 구멍 난 철모, 녹슨 총, 미처 날아가지 못한 전단, 곳곳에 보이는 지뢰 핀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사람만 없을 뿐이었다. 아니 폐허가 된 건물 안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만 모를 뿐이다.
간혹 수색 중에 말뚝 건너편에서 지나가는 북한 군인을 만나곤 한다. 긴장한 우리들과 다르게 그들은 쿨 한 듯 인사를 건넨다.
“어이 동무들”
우리는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하면 군법 위반이 되는 것이다. 나는 긴장이 담긴 눈웃음으로 대답해 준다.
말뚝 하나로 세상이 나눠진다는 게 신기했다. 새들도, 동물들도, 풀벌레들도 자유롭게 왕래하는데 우리들에게만 존재하는 벽들이 답답했다.
다시 꺼내놓기엔 너무 오래된 이야기다. 다르게 변한 사람들과 변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우리는 너무 늙어버렸다. 우리가 밟고 지나간 길은 움푹하게 파여 물이 고이고, 그 땅은 물렁물렁해져서 풀들이 자라나기에 좋은 환경이거나 고인 물이 썩어 더 이상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일 수도 있다.
우리들의 인연은 그렇게 또 시작될 것이다.
인연은 늘 새로이 시작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