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사는 이야기

by 쪼교

선배에게 연락이 온 것은 폭설이 내려 도로가 완전히 마비되었던 1월 중순쯤이었다.

내일 일산으로 올 일이 생겼는데 우리 집에서 하루만 신세를 질 수 없겠는가 물었다. 실은 우리 지점으로 발령이 났는데 갑작스럽게 전달받은 거라 미쳐 숙소를 못 정했고 눈이 너무 많이 와 찾으러 다닐 수 없다는 거였다. 와이프 눈치를 슬쩍 보니 그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는 없고 이불만 깔아야 하는데 불편하지 않으면 그러라고 했다.

선배와 나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본사에 있을 때 업무 지원으로 몇 번 술자리를 가진 것뿐이다. 나보다는 아마 아내가 선배를 더 잘 알 것이다. 그와 같은 부서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듣기로는 하루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어떤 업무였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선배는 나보다 두 살이 많았다. 결혼한 지는 10년이 넘었고 아이들도 두 명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다. 주식에 손댔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이혼당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는 택시를 타고 대화동에 있는 우리 아파트로 왔다. 동호 수를 알려주고 잠시 기다리니 벨이 울렸다. 문을 열자 그가 서 있었다. 어깨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나는 힘을 내서 명랑하게 그를 맞아들였다. 그는 큰 잘못을 저지른 듯 눈을 꼼꼼히 털고 신발 바닥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고서야 문안으로 들어왔다. 저녁식탁의 음식냄새가 가득한 실내로 그가 두리번거리며 들어섰다.


”그런데 왜 갑자기 우리 지점으로 발령이 난 거예요? “


내가 묻자, 그가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나도 몰라. 오늘 일 마치고 퇴근하려는데, 내일 바로 일산 지점으로 출근하라네.”


“왜 일산 지점이냐고요? 선배가 사는 인천 지점도 있는데.”

얼마 전 본사에서는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다. 선배가 모시던 오 상무가 불명예 퇴직했다고 들었다. 결국 그 라인은 모두 본사에서 지점으로 발령 났는데, 인천 지점은 신임 상무 라인이라서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그래? 아니 여기도 마찬가지일 텐데”

“나도 몰라. 내일 출근해 보면 알겠지.”


우리 지점은 현재 지점장 자리가 공석이다. 선배는 자신이 그 자리로 맡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했다. 그는 회사 내 정치에 능했다. 조용히 일만 하는 스타일로 보이지만 퇴근 후에는 항상 임원이나 실세들과 어울렸다. 아니 어울렸다기보다는 그들의 수발을 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그러다가 선배가 모시는 임원이 비리에 연루되어 옷을 벗게 되자 경쟁 임원의 눈 밖에 난 선배는 보복성 인사 발령을 받은 것이었다.


“그럼, 오 상무님은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잘못했으니까 회사에서 쫓겨난 거고, 퇴직금 받으면 치킨집이라도 하겠지”

선배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는 듯 말했다.

“선배는 괜찮은 거야. 관련 없어?”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찌른다.

“나? 난 괜찮아. 내가 뭐 했냐? 그냥 운전해 주고 술 따라 주고, 잔심부름만 해줬는데.”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내는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하던 일은 상무 지시에 따른 일뿐이었음을 말이다. 그는 그 밖의 동료들에게는 무관심했다.

다음날 아침 선배는 일찍 일어나 수선을 피웠다. 얼굴을 보니 잠을 거의 못 잔 거 같다. 아내가 된장국에 생선 반찬을 차려 주었지만 선배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어느새 그는 정장을 입고 현관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맵시가 사는 걸 보니 고급 양복인 듯했다. 선배의 구두는 코가 닳아 하얗게 바래 있다.

내가 물었다.


“정말, 어느 부서로 발령 났는지 따로 연락 없었어요?”

“에이! 지점장이라니까”


선배는 걱정 없다는 듯, 짐짓 거들먹거리는 체하며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웃지를 못했다. 내가 알기로는 신임 지점장이 이미 다른 사람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정치를 잘하는 선배이니 알아서 잘하겠지만 걱정되기도 했다.

회사에 도착해서 나는 내 부서로 갔다. 점심시간에 보니 선배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후가 돼서야 다시 나타난 선배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잠시만 나 좀 도와주라.”


사무실 밖으로 나가보니 작은 책상 위에 의자가 얹혀 있었다. 그걸 가리키는 선배의 이마에는 추은 날씨에도 땀이 맺혀 있었다.


“이게 뭐예요?”


선배는 대답 없이 이걸 사무실 안으로 옮기자는 눈짓만 했다. 자신이 먼저 책상을 들고 들어가기에 나는 의자를 들고 따라갔다. 사무실 한쪽 벽면 빈자리에 책상과 의자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선배를 향해 있었다.


그 벽면의 책상과 의자가 선배의 자리였다. 누가 봐도 뻔한 보복성 인사였다. 그러나 남을 탓할 수도 없었다. 선배가 선택한 길이었다. 선배는 빠른 승진을 목적으로 출세 라인을 탔지만 그 라인은 썩은 동아줄이었던 것이다. 연고도 없는 곳에 발령받아, 소속도 업무도 없이 책상 하나와 의자만 받은 것이다.


“선배 괜찮아요?”


대답 없이 선배는 하루만 더 우리 집에 신세를 지면 안 되냐고 했다. 난 그러라고 했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해 주고 저녁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선배는 빈 책상에 앉아 말없이 핸드폰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선배, 아내가 저녁 준비했다고 퇴근하고 바로 오시라네요”

“고마워, 근데 어디 좀 잠시 다녀와야 할 거 같은데... 기다려 줄래?”

그래놓고 선배는 저녁 내내 연락이 없었다. 저녁을 준비해둔 아내는 처음에 화를 내더니 나중에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 날 오전에서야 돌아왔다. 아무 말 없이 돌아온 선배는 한참을 창밖을 보더니 짐을 챙겨 집밖으로 나갔다.

그는 좀 달라져 있었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고급 양복은 여기저기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기습을 받고 격렬한 전투를 치르다 돌아온 듯 힘이 빠져 있었다. 충격을 받은 거라 생각했다. 선배는 내게 방을 구했다고 했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 자리를 차지한 선배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 말도 걸어주고 관심도 가졌으나 차츰 그를 잊어갔다. 아무도 선배를 쳐다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선배는 그렇게 한 달을 버텼다.




어느 날 사무실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야!”

“왜!”

서로 반말이 오갔다. 선배와 신임 지점장이었다. 둘은 동기였으나 서로 가는 길은 달랐다.

“네가 왜 여기로 왔어?”

“넌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신임지점장이 말했다.

“야. 이쯤 되면 물러나야 되는 거 아니냐? 모르겠어? 회사는 너를 버렸다고, 언제까지 그러고 앉아 있을래? 쪽팔리지도 않냐?”

선배는 대답이 없었다. 싸움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선배는 퇴근 시간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시간 있냐? 술 한잔 하자”


선배는 무슨 얘기를 할까. 분명 오늘 있었던 일로 무언가 결심을 한 거 같은데, 선배랑 계속 엮이는 게 찜찜했지만 타인의 비밀을 선취한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설렘도 있었다.

회사를 나와 포장마차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꽉 죈 넥타이를 풀자 홀가분해졌다. 답답했던 공기가 음식 냄새로 환기되었다.

선배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너한테만 정보를 줄게 있는데 받아볼래?”

선배는 나에게 정치를 시작했다. 여기에 걸려들면 처음에 동지였다가 나중에는 분명 적으로 바뀔 것이고 난 소리 소문 없이 제거될 것이 뻔했다. 나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빼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몫의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뜨거운 숨을 천천히 내쉬는 내게 선배는 뭔가를 내밀었다.

서류뭉치였다.


집으로 돌아와 서류를 펼쳐보았다. A4용지 석 장 분량에 불과한 그 서류는 청체모를 비릿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거라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엔 향응을 제공하고 청탁을 한 부정한 거래 내역과, 거래장소, 그리고 물론 거래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 가운데엔 신임 지점장의 이름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건 선배의 보험증서 같은 거였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고,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도 언젠가 동아줄에서 떨어질 것을...


나는 궁금했다. 선배는 이 중요한 장부를 왜 나에게 준 것일까. 내부 비리를 폭로하고 나도 같이 동아줄에 매달리게 할 생각이었나? 선배는 그렇게 썩은 동아줄인지 아닌지 모르는 줄에 나를 매달게 할 생각이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답하지 않았다.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정말 기회라는 것이 올까? 조직을 배신하고 성공을 위해 올라가는 동아줄에 매달릴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며 썩은 동아줄을 잡아서 끝없이 떨어지게 될까?

그 후로 선배는 나를 피했다. 아니 내가 피했다. 선배는 여전히 빈 벽면에 빈 책상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얼마 후 회사에 인사 발령이 났다. 신임 지점장은 대기 발령이 내려졌고, 선배는 다시 본사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신임 지점장으로 박 차장이 발령 났다.

복도 끝에서 박 차장이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퇴근 후에 아내에게 말했다.


“지점장 자리... 내가 갈 수 있었을까?

아내는 말없이 전에 없던 규모의 대청소를 했다.

마치 선배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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