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희윤은 나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A형과 B형, INFJ와 ESTP, 이타적 성향과 이기적 성향, 잘 떠드는 사람과 잘 들어주는 사람. 때론 이해 안 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서로 대화는 잘 된다.
난 사소한 일에도 자주 불안해하는 타입이다.(나는 ‘불안이 높은’ 타입이다) 신호 위반하는 차량만 봐도 저 차가 나를 덮치면 어떡하지 싶어 움츠러든다. 그럴 때 옆을 돌아보면 희윤은 어느새 핸드폰 카메라부터 열고 동영상을 찍고 있다.
“뭐 해?”라고 물어보면 희윤은 “신고하려고.” 한다.
내 입장에서 보면 왜 저러나 싶지만, 희윤의 생각은 심플하다. 신호 위반 했으니 벌금 내게 해야지라는 것!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살 수가 없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걸 너무 예민하게 느낀다. 내가 겪지 않은 일도 온전히 나로 받아들인다. 뉴스에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악행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싸움들은 무심히 보아 넘기지를 못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주차 시비로 이웃 주민들이 싸우는 것을 목격하고 한동안 불안해했었다. 마치 내가 그 싸움의 당사자나 되는 것처럼. 그러니 몸이 아프고, 사는 것이 힘에 부친다.
타인이 아닌 혈육의 일은 나를 더욱 자극한다. 부모님이 병환을 얻으시자 표현은 안 했지만, 평소 잘 불안해하는 나는 더더욱 불안해져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빨리 뛰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걱정하고 불안해하는지는 잊어버리고, 불안의 증세들이 나를 집어삼키고 만다. 내 안팎의 모든 것이 멈춰버린다.
어렸을 적 난 폭력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으로부터 일상적으로 매를 맞았다. 학교가 파한 후에도 집에 가는 게 끔찍이 무서울 정도였다. 부모는 왜 나를 때릴까? 나는 왜 맞아야 하는가? 자식은 부모를 닮고. 부모는 그 부모를 닮는다고 한다. 결혼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나도 자식을 때리게 되지 않을까’였다.
우리 부부가 ‘불임’이란 판정을 받았을 때 난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기뻐서는 아니었다. 난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한 번은 희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난 부모님에게 맞고 자라서 부모님이 싫어, 하지만 나도 자식이라고 아프니까 걱정이 돼. 어떻게 해야 하지?”
희윤의 답은 간결했다.
“그럴 때, 난 전화해! 그러면 내 불안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거든.”
희윤다운 답변이었다.
매사에 ‘나’가 우선이었다. 아픈 건 부모님이지만,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나이다. 이기적인 희윤은 ‘나의 불안’부터 해결하고자 한다. 즉각 전화를 걸어 불안한 마음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나는 항상 말한다.
“나도 너처럼 살아봤으면 좋겠다.”
희윤이는 다르게 대답해줬다.
“규호 씨도 그랬어. 근데 어느 순간 불안과 걱정에게 규호 씨가 진 거 같아. 그래서 그들에게 복종하면서 살고 있는 거 같아, 그래서 안타까웠어. 이겨내 봐.”
연애 초기에 희윤이 하는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제목은 ‘백설 공주를 사랑한 난쟁이’였다. 희윤이는 반달이라는 배역이었는데, 극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하는 3시간 내내 단 한 마디의 대사도 하지 않았다. 반달이는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기 때문이다.
말이 많은 희윤은 말 못 하는 반달이가 되기 위해 얼굴과 온몸을 비트는 동작을 해대며 반달이 대신해 말을 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희윤이에게 물어보았다.
“대사 없이 연기하니까 답답하지 않아”
“아니! 반달이는 말만 못 할 뿐이지 더 많은 사랑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러고 보니 공연 내내 희윤이는 반달이를 위해 땀을 삐질 삐질 흘려 가며 무대 양쪽을 오가면 열심히 뛰어다녔고 손짓발짓을 해가며 소리 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백설공주를 위해서는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용감한 난쟁이, 벙어리 ‘반달이’가 되어 있었다.
“규호 씨,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그리고 표현하고 나면 후련해져!”
나는 요즘에서야 그때 그 말이 자주 떠오른다. 내가 최근에 많이 듣는 말이 ‘무서워 보인다’였다. 내가 무표정이니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다고..
“내가 무서워?”
“아니, 전혀. 원래 규호 씨는 잘 웃는 사람이잖아. 근데 그런 사람이 잘 안 웃으니까 사람들이 어색해하는 게 아닐까?”
나는 내가 잘 웃는다고 생각해 왔다. 다시 생각해 보면 속으로만 웃고 있었다. 그건 반달이의 웃음과는 다른 거였다. 소리 내어 웃어 보고, 얼굴을 구겨 보며 표정도 지어 봐야 한다.
요즘 나는 옷을 많이 산다. 고백하자면 과소비를 한다. 계절도, 가격도 안 따지고 마음에 들면 우선 사고 본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응어리를 나는 온갖 종류의 옷을 사는 것으로 표현하는 건지도 모른다. 옷을 입으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백일장에 나가 입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런 시를 썼다.
골목길에 도착했어요.
저 길로 들어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희망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어요.
골목길에는 그 자체의 매력이 있어요.
어디로 향하는지 몰라도
그 길이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 줄거라
기대하게 돼요.
어떤 폭발할 것 같은 행복과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 생각돼요
난 그 골목길이 막다른 길이 아닐 거라
믿고 있어요.
난 그 골목길이 끝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어요.
난 그 골목길이 깜깜한 어둠이 아닐 거라
확신하고 있어요.
만약 그 골목길에서 길을 잃는다 해도
어딘지 모르게 방향을 잃는다 해도
그 길 끝에는
그 골목길이 끝나는 길에는
더 넓은 길과 희망이 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난 세상의 끝에 가본 적이 있다. 더 이상 갈 수 없어 멈추어 버린 적이 있다. 이제 끝이구나. 더 이상 희망이 없구나 생각했을 때쯤,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골목길이 열려 있었다.
나는 어려운 일이나 결정에 직면할 때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문제의 일부인가?, 해결책의 일부인가? 결국 이러한 질문에는 답이 없다. 질문을 던지는 나 자신이 삶을 바꿔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선택 장애가 심한 나는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럴 때 겁에 질려 주변을 둘러보면 나 혼자였다. 잘못되어도 나 혼자 몰래 지면 되는 거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을 선택해 왔다.
그 누구도 항상 10차선 왕복 도로로만 달릴 수는 없다. 가다 보면 골목길로 접어들게 된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맬 수도 있고, 끝을 알 수 없는 외진 길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길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골목길은 우리들의 인생과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길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걱정과 계획, 생각, 희망, 욕망, 기억들을 꺼내 놓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이런 삶을 사는 우리는 그것이 삶의 근원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안다.
“내가 왜 항상 즐겁게 사는 줄 알아?
희윤이는 말했다
“무조건 지금 이 순간이 자유로움이고, 행복이고, 축복이야. 인생은 오직 오늘 하루뿐이란 말이라고, 아시겠습니까? 규호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