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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Aug 29. 2023

책에 갇히다.

시...

도망쳐야 된다고 생각했어.

여기서 도망치지 못한다면 나에겐 희망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

더 많이, 더 빨리 용기를 모아 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새벽에 문밖으로 뛰쳐나왔을 땐 아무것도 움직이질 않았어.

지나다니는 차들도 없었고 하다못해 매일 울어대는 고양이들도 

자동차 밑에서 숨죽이고 눈만 번쩍이고 있었어.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괴물이 날 잡어 먹으려 하고 있었어

도망치고 싶었어

숨을 곳을 찾을 수만 있다면

꿈속으로 숨을 수만 있다면

과거 속으로 도망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아무것도 없는 숨 쉴 때마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열기조차도 느낄 수 없는 거리를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 달리고 있어.

그래 그때를 생각해 보자.

내가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을 때, 하늘을 바라보며 촘촘히 떠있던 별들과 반으로 갈라진 달을 생각해. 

바닥은 차가웠지만 얼굴과 배는 별과 달의 열기를 얻어 포근했었던 그때를 생각해. 


핏기 없는 거리를 달려 난 위로 계속 달려갔어. 

갈수록 캄캄해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어.

어느 방향으로도, 어느 집에서도 불이 켜져 있지 않았어

눈부신 불이 나오는 곳은 저 멀리 있는 한 지점뿐이었어. 


그때 그곳으로 갔어야 했었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책 속에 갇혀버리지는 않았을까

서서히 좁아드는 차가운 바닥에서 몸은 점점 굳어지고 눈빛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어.


결국 난 책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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