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이제 막 해가 떨어지려 하고 있다.
안경을 안 써서인지 날이 어두워지자 불빛이 번져 운전하기가 힘이 든다. 붉은 노을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검었으며 자세히 보면 흰 빛을 띠기도 한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이 붉은빛은 소리가 없다. 그대로 꺼져버릴 듯하다가도 어느새 다시 연한 붉은빛을 뿜어내며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시야는 온통 그 빛에 붉게 물이 들어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용미리로 갈 생각은 아니었다. 차에 시동을 걸 땐 분명 집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엔가 홀려 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이 있는 고양동을 어느새 지나쳐 용미리의 공원묘지로 차를 몰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가보는 건 물론 아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만 해도 1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외할아버지를 뵈러 간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최근 3년간은 발길을 끊다시피 했었다. 조상을 잘 모셔야 후손이 잘 된다던가? 그 말을 믿었던 건 아닌데, 자꾸만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는 요즘엔 그런 말도 마음에 걸린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조금만 더 서두르면 어둡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어머니는 혈액 암 진단을 받았다. 가족의 암투병은 나는 처음 겪는 일이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마음의 준비’란 뭘 어떻게 하는 걸 말하는 걸까? 어떻게 준비해야 닥쳐올 일련의 일들에 몸을 가눌 수 있을까? 혹시 잘 준비하면 어머니는 더 살 수 있는 걸까?
“난 내 명대로 살다가 갈 기다.”
어머니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머니의 얼굴만 살폈다. 창백한 그녀의 표정 위로 침묵의 시간만 흘렀다. 그 침묵을 어머니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어머니가 병에 걸린 이유를 찾아 나섰다. 내가 어머니를 살뜰히 보살피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어렸을 적에 속을 많이 썩여서일 수도 있다. 혹은 정말로 조상을 잘 모시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퇴근길에 어머니를 뵈러 병원에 들렀었다. 거기서 앙상하게 드러난 팔과 맨다리를 보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고요했다. 숨조차 취지 않는 듯, 들썩임조차 없었다. 병실 창으로는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내다보였다. 하늘에 걸린 해는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만 껌뻑이며 햇빛의 함성소리를 듣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들은 대답도 없지만, 어머니의 뒷모습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묘지 입구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완전히 진 뒤였다. 저녁 하늘의 붉은 기운은 들끓던 열기를 잃고 흑과 백의 차가운 어둠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묘지를 찾았던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 식당들은 마지막 손님들을 떠나보내고 있었고, 묘지 입구도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차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 시각에 묘지로 들어가는 차량은 나의 것뿐이었다. 나는 반대편 자동차 운전자들 짜증스러운 얼굴을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거칠게 훑으며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액셀을 밟으며 나는 생각했다. ‘괜한 짓을 했어. 애초에 이런 델 오는 게 아닌데...’ 그러나 내 차는 이미 산 중턱을 오르고 있었다. 차를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꼭대기의 주차장까지 올라가야 했다. 어느새 검은 하늘 가운데 나타난 달이 제 빛을 사방에 퍼뜨리고 있었다.
좁은 길을 올라가는 동안 나는 옛날 생각이 났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 벌초를 하기 위해, 큰외삼촌 작은 외삼촌, 사촌들 그렇게 대략 스무 명쯤이 매년 추석과 구정에 이 길을 걸어 올라갔었다. 그때는 길 옆으로 버려진 듯 어두운 묘지들과, 중국인들의 이국적인 형태의 묘지, 아직 주인이 없어 비어 있는 묘지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빈터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와 같이 산을 오르던 어른들도 모두 떠나고, 또래의 몇몇만이 남아 중년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공동묘지는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계로 느껴졌다. 무섭다거나, 슬프다는 느낌은 없었다. 얼마 전까지 같이 밥 먹고 대화하던 사람이 차갑고 단단한 흙 속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신기하고 믿기지 않을 뿐 감정의 동요는 일으키지 않았었다. 그저 말없이 엄숙해진 어른들을 구경하며, 엄숙한 척 시늉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달랐다. 흙속에 묻히는 사람이 내 어머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어느덧 어둠은 깊어, 자동차 라이트만이 그 속을 꿰뚫고 있다. 나는 산중턱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곳에도 인적은 없었다. 가로등 하나만이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전경에는 아파트들과 상가들이 불빛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뒤편으로는 묘지만이 빽빽하게 차 있다. 발밑의 물웅덩이엔 하늘의 별들이 비치고 있었다. 발로 물을 차니 별들이 사라졌다가 곧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나는 가로등 아래 벤치로 걸어가 털썩 누웠다. 산소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다. 아니, 시간은 상관없다. 그는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여기에 온 것은 아니었다. 벤치에 잠시 누워서 쉬었다 내려가기로 했다. 눈을 감자, 오히려 밝다. 어느새 도시의 반짝이는 불빛들이 내 눈꺼풀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알지도 못하는 집들. 그러나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만 싶다. 그곳이 그립다. 마치 돌아갈 수 없는 세상인 듯 그립다. 영원히 떠나온 곳인 듯 슬프다.
눈을 감은 채 숨을 깊이 들이마셔본다. 오늘 처음인 듯, 깊은숨. 풀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머리를 하늘로 젖히고 눈을 떠 별들을 바라본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저 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앞으로 이곳에 묻힐 사람들도 영원히 같은 별을 바라보겠지?
다시 한번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비릿한 흙냄새에 눈을 뜨니, 사람들이 보인다.
각기 다른 계절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