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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Sep 06. 2023

정신병원 가기 딱 좋은 날

사는 이야기


그날은 흐리고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초겨울의 날씨였다. 영화 "신세계"의 대사 중에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라는 대사가 있다. 그날은 말하자면 ‘병원 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아니 날씨 따위는 상관없다. 불안이 이미 나를 잡아먹은 후라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 정신의학과는 내게 최후의 방법이었다. 


 적당한 병원을 찾는 일은 차라리 쉬웠다. 일산에 있는 아무 병원이나 고르면 되었다. 내가 고른 병원은 방송에도 많이 나오는 의사 선생님이 운영하는 곳이라 했다. 이제 그 병원에 전화를 걸기만 하면 되는데, 그 일이 내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정신병원에 다닌다고 하면 인생을 잘 못 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학원 다닐 때 일부 교수님들은 정신과 의사들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약밖에 모르는, 뭐든지 약으로 해결하려고 드는 약쟁이들이라고 했다. 사람은 사람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듯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에 가지 않고, 망설임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왔다. 지난 5 년간 그랬듯이 이대로도 어떻게든 살아질 것 같긴 하다. 고통이야 적응하면 그만일 터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검은 바닷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전화를 걸지 않으면, 몸속의 산소를 모두 소비한 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여기서 이대로 멈추지는 않을 거라면, 한번 시도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서둘러야 할 때 오히려 행동거지가 느려지는 습관에 따라 최대한 천천히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거기 정신병원이죠?”

 “네, 어떻게 전화하셨나요?” 

 “예약하려고 합니다.”

 “두 달 기다리셔야 합니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그 유행을 따라 미쳐가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     

 나는 달걀 하나를 들고 서 있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 위에서 그 달걀을 깨뜨린다. 터진 달걀은 익어가면서 형태가 새겨진다. 부리가 자라나고, 날개가 생기도, 발톱도 자라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익어가기 시작한다. 거의 다 익어갈 때쯤 형태가 갖추어진 달걀은 고통스러워 몸을 비튼다. 소름이 끼쳤다. 온몸에 닭살이 돋은 나는 프라이팬을 들고 하수구에 버린다.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한 달걀은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수구 파이프를 따라 떠내려가면서 저 달걀은 부패할 것이다.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그런 꿈을 꾸다니... 내게 닥친 현실을 보여주는 듯해서 찝찝했다.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다. 두 달을 기다려서 예약일이 된 것이다. 왠지 이 날 하루는 쉬어야 할 거 같아서 회사에 월차를 냈다. 끈질기게 사유를 묻는 문이사에게는 에둘러 병원 진료라고만 했다. 그러나 문이사는 기어이 병원 사진을 찍어보네라는 요구까지 했고 나는 그의 요구를 묵살하기로 했다. 내 병의 원인 제공자에게 병명까지 알리긴 싫었다. 


 차도 가져가면 안 될 거 같아서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탔다. 버스를 타본 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운전을 하며 스쳐 지나가는 버스는 내게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창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사람들은 모니터 속의 인물들 같다. 각기 다른 얼굴에 비슷한 표정,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 나도 저 사람들 속에 섞여, 그들과 비슷한 목적지로 함께 가고 싶다. 차 안의 나는 어쩌면 외로웠던 것도 같다.  


 주엽역 3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2층에 ‘정신건강의학과’라는 간판이 보였다. 나는 그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나는 세상이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느꼈다. 요란스러운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웅성대며 웃고 떠드는 길가의 사람들도 침묵 속에 나를 지켜보는 거 같았다. 세상이 모두 나를 보는 거 같았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니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정신병원이 있는 2층에 간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병원은 마치 ‘카페’ 같은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잘 연출된 아늑한 분위기가 병원을 찾는 이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하는 것도 같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누가 볼까 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한쪽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최대한 아무 이상이 없다는 듯, 애써 평온한 얼굴을 만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에 의사 선생님이 낸 책이 전시되어 있었고, 커피자판기와 정수기가 있는데 아무도 마시는 이가 없었다. 간호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000 요’라고 외쳤다. 모두들 마스크 뒤로 불안한 얼굴을 숨기고 간호사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진표를 작성했다. 내 정신 상태를 알고자 하는 질문들에 일일이 답을 달았다. 최대한 내가 힘들다는 걸 알리기 위해, ‘나 이상해요’라고 호소하기 위해, 대부분의 질문에 '매우 그렇다'로 체크를 했다. 이왕 작심하고 찾은 병원이었다. 의사로부터, 별 문제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허탈할 것 같았다. 막막하고, 억울할 것도 같았다.


 ‘당신은 전문 가니까 나의 억울함을 알아주겠죠? 

 나를 바닷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겠죠?’     


 예약을 했는데도 1시간을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책을 꺼내 들었다. “불안이 젖은 옷처럼 달라붙어 있을 때”라는 에세이인데 제목에 끌려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젖은 옷처럼 척척하게 달라붙는 불안이 어떤 것인지 나도 잘 알고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외면하려 해도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내 무너뜨리는 유령 같은 '고통'의 정체에 대해 파악하려 했다고 한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기 분석에 관한 글을 썼다고, 전문가적 관점에서 트라우마를 분석하여 ‘치유의 글쓰기’를 완성했다고 했다. 자신의 고통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글쓰기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변화했음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그는 참 긍정적인 사람인 듯했다.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나는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는 저항에 부딪혔다. 억울했다. 나는 그 억울함을 멈출 수 없었다. 늘어진 몸뚱이를 간신히 쓸어 올려 일으키려 해도 계속 흘러내렸다.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버린 나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책 속의 말들은 나에겐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계어였다.      




 내 이름이 호출되었다. 

 나는 책을 덮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뒤 난생처음으로 정신과 진료실에 걸어 들어갔다. 하얀 벽면에, 하얀 복도를 지나, 하얀 문을 여니 하얀 방안에, 하얀 옷을 입은, 하얀 얼굴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그 남자는 차가워 보이는 안경을 쓰고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는 엉덩이가 푹 꺼질 듯이 낮은 의자에 앉아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연륜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머뭇거리는 습관이 있다. 일단 말을 꺼낸 뒤에도 그 머뭇거림은 계속되어 입은 움직이는데 목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을 더듬는 건 아니다. 더듬을 듯하면서도 정작은 한 번도 머뭇거림 없이 토하듯 목소리를 밀어낸다. 


 나는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저 사람들이 나를 공격할 거 같아 긴장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했다. 운전 중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숨 막힐 거 같다고 했다. 그리고 매사에 두근거리고 초초하다고도 했다. 혹시나 다른 병으로 오해할까 봐 내과, 신경과, 이비인후과 종합병원에 모두 가보았지만 아무 이상 없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어쩌면 공황장애일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내린 진단명도 알려주었다. 

 다 말해버리자, 목구멍에 걸린 가래를 시원하게 뱉어낸 것처럼 뻥 뚫린 기분이었다. 난 선생님의 입만 보고 있었다. 다음은 당신 차례야 라고 대답을 갈구하듯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선생님은 음, 음 하는 신음 소리만으로 기계적인 응답을 해 주었다. 대학원 때 “상담의 이론과 기초”라는 과목에서 그런 반응을 공감 행동의 일종이라고 배운 기억이 났다. 선생님은 고양이 인형처럼 열심히 고개를 흔들어 댄다. 척 보면 안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게 묻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하시나요?” 

 “회사 다닙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연구원인데, 이것저것 잡일을 더 많이 합니다.”

     

 난 억울하고 분한 내 감정을 처음으로 말로 풀어서 설명했다. 쏟아내고 나니 우선은 후련해졌다. 선생님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써가며 설명해 주었다. 그의 소견으로는 내게 해당되는 질환명은 불안장애였다.

 불안장애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을 통칭한다고 한다. 그리고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 불편감을 초래하고 불안이나 걱정, 혹은 신체증상이 직장 생활, 대인관계 등의 일상 활동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라고 한다.

 나의 불안이 이렇게 복잡한 과정으로 나타나는 줄 몰랐다.      




 선생님은 명쾌하게 처방을 내렸다

 “약을 먹으면 좋아져요. 우선 한 달 치만 먹어봅시다.”


 “네? 끝인가요?”


 교수님이 해준 말이 생각났다. 의사들은 약밖에 모르는 약쟁이들이 맞는 거 같다.    

  

 “그럼 약을 꼭 먹어야 하나요?”


 “네! 약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하신 증상들이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거든요.”     


 약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물었다. 선생님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처방전을 계속 써 내려갔다. 딱히 다른 방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환자의 호소에만 의지해서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한다는 것, 그 약을 내가 먹어야 한다는 것이 무척 꺼림칙했다. 5 분 간의 일방적인 하소연만 듣고 나를 모두 안다고 믿는 걸까?  


 “혹시 심리 상담 같은 걸 받아보면 약을 안 먹어도 되지 않나요?”


 선생님은 입 꼬리를 삐쭉 내리깔더니 목소리를 살짝 높여 말했다.


 “자율신경계는 마음먹는다고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숨이 안 쉬어지고 답답한 게 생각을 달리 먹는다고 괜찮아지는 게 아니거든요.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단호했다. 약 말고는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는 웃으며 한 달 후에 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항불안제를 처방받고 병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하늘의 구름이 흙빛으로 보였다. 오늘로 나는 불안장애 환자가 된 것이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먹고 싶었다. 좋아하는 돈가스집에 들어갔다. 왕돈가스 하나를 시켜서 잘게 썬 뒤, 바삭한 끄트머리부터 입에 넣었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달콤함과 바삭함에 불안한 마음이 사그라졌다. 불안할 때마다 돈가스를 먹으면 불안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항불안제도 이렇게 바삭하고 달콤할 거라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었다. 이 약을 먹으면 내가 사는 세상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질 거라 생각했다. 귀속의 이명 소리도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약을 먹으면 편안해질 거라고 했다. 약을 먹고 1시간쯤 지나고 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조여 왔다. 아마도 상처가 나으려고 할 때 가려운 것처럼 머릿속의 벌레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고 생각했다.    

  

 이 고통이 지나고 나면

 그래서 벌레가 죽고 나면 

 나는 다시 바다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고요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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