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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Sep 16. 2023

커튼

짧은글

그 남자는 마지막으로 문에 커튼을 달았다.


오렌지색에 꽃무늬가 있는, 해변가에서나 볼듯한 색의 커튼을 방문에 달았다. 압축봉을 끼워 넣고 고리를 연결해 오렌지색의 꽃무늬 커튼을 달고 곧바로 커튼을 닫아두었다.


문밖의 백색 형광등이 오렌지색 꽃무늬가 있는 커튼을 뚫고 오렌지색으로 변색되어 비춰 들어온다.


반대편의 창문엔 빛 한 줌 통과하지 못하도록 굳게 닫아두고 검은색 암막 커튼을 닫아두었다.



그 남자의 방안에 책이 많이 있었는데 양쪽 벽면엔  천장까지 닿아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목 책장 안에 소설, 인문, 시, 자기 계발서 등의 책들이 종류별로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 남자는 책 속에 묻혀 살았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책을 통해서 그 간격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 그 속에서 현실을 배울 수 있을 거고 현실에서 고통받으면 책 속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남자는 시간이 갈수록 방안에 갇히게 되었다. 창문은 항상 굳게 닫아 놓았고, 모형 창문을 벽에 걸어두고, 모형 창문 안에 그 남자가 보고 싶은 그림을 붙여놓았다. 그 남자는 항상 모형 창문 안의 그림을 보며 바깥세상을 상상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그 남자는 현실의 세상을 잊게 되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배경이 창밖에 있을 거라 생각했고, 문밖에 사람들도  소설 속의 인물들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수많은 소설 속의 배경과 인물들을 번갈아 가며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읽은 소설속의 주인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고통이 없는 편안한 세상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그 남자는 생각했다.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정말로 소설 속의 삶을 실제로 살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럼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겪는 괴리감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곧바로 인터넷에서  조명을 구매했다. 조명은 날개 달린 돛단배 모양인데 양쪽에 날개가 달려있어 하늘을 날 수 있는 모형이었다. 조명이 도착하는 동시에 천장에 조명을 매달아 불을 켜면 노란빛을 내는 하늘을 나는 배가 되었다.


그 남자는  날개 달린 돛단배를 타고 떠나면 될 거라 생각했다.  날개 달린 돛단배를 타면 그가 읽었던 소설 속에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남자는  생각했다. 오렌지색 꽃무늬의 커튼이 빛을 잃고 나면, 오렌지색 꽃무늬 커튼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을 것이고  그럼 더 이상 오렌지색 커튼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방문을 닫을 것이다.



그 남자는 마지막으로 책에서 읽은 대로 방안에 연탄불을 피울 것이다. 연탄은 파란 불꽃을 낼 것이고, 노란색 빛을 발하는  날개 달린 돛단배의 노란 조명과 파란 불꽃을 내는 연탄만이 남을 것이고, 그 연탄마저 파란빛을 잃으면 날개 달리 돛단배를 타고 그 남자는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남자도, 빛도, 모두 사라지게 되면, 영원히 소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날개 달린 돛단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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