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네는 약속
국내에 많은 양조장들이 생겼다. 그 수만 해도 벌써 1,300여 개(22년 4월 기준)가 넘고 우릴 포함해 앞으로 생겨날 곳들은 더 많을 거다. 가끔은 아침에 눈만 뜨면 SNS에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술 소식이 스크롤을 내리는 내 엄지 속도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와, 이게 다 마셔봐야 할 술이라니! 그만큼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와 맛보고 싶은 술들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다.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중요할 테지만 그래서인지 이 작업은 전부터 바짝 긴장을 했다. 우리의 첫 옷이자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아야 할 로고 작업이었으니 말이다. 전에는 막 로고가 리뉴얼된 상태에 입사를 하거나 브랜드 로고 가이드가 너무나도 명확해 그대로 쓰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처음으로 흰 도화지를 맞닥뜨렸다. (사실 주인이 되고 나면 '처음'이 아닌 일들이 잘 없다.)
우선 로고 작업을 위한 명확한 목적과 기준이 필요했다. 우리 구성원중 일부는 '맥주'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베이스가 거의 외국에서 들어온 재료들이다 보니 우리 지역에서 난 재료 사용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쌀로 우리만의 스타일을 녹여낸 술을 만들 순 없을까? 지역에서 난 재료로 술을 빚고 우리술을 주제로 다양한 문화와 연계해 꿀꺽하는 순간의 즐거운 경험을 전해줄 순 없을까?
그렇게 시작된 '꿀꺽하우스'의 이름은 일찌감치 정해진 상태였고 이를 실체화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할 로고가 필요했다. 여기에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아낼 것. 다수의 양조장과는 구분되고 우리의 색깔이 드러나는 디자인이어야 할 것. 그렇게 우리만의 기준을 세우며 로고를 만들어갔다.
꿀꺽하우스를 오픈하고 나니 처음에 세워놓은 목표와 판단에 더욱 확신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이따금 바뀌는 경우도 있다. 요즘도 회의를 하며 종종 우리는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은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달라진 생각들은 없는지 등을 이야기하곤 한다.
의사결정을 위한 기준을 세우고 팀원들 간 목표와 방향을 일치시켜가는 작업은 술을 빚을 때처럼 꾸준히 들여다보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그만큼 중요한 걸 알면서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글을 쓰며 한 번 더 상기시킨다. 아래는 초반 그런 질문에 각자 써본 내용들을 다시 한번 대화하며 쭉 써 내려갔던 내용이다.
1. 지역에서 난 재료들을 이용해 직접 우리술을 빚는다.
2. 꿀꺽-하고 마시는 순간의 즐거움과 경험을 전한다.
3. 우리술-맥주, 전통-현대, 지역 공동체-사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4.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술을 빚고 현재를 살아가는 꿀꺽하우스만의 건강한 '가양주 문화'를 소개하고 연결한다.
5. 술이란 테마가 모든 종류의 예술, 문화, 사회, 인간과 어떤 방식으로 매개하는지를 보여주고, 그 결과로 사람들에게 어떤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고민하고 안내한다.
6. 기존의 꿀꺽- 삼키는 것들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킨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생각한 꿀꺽하우스는 우리술을 통해 꿀꺽하는 순간의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현재를 살아가는 꿀꺽하우스라는 집에서 빚어진 건강한 가양주 문화를 소개하고 연결하는 것이다.
맛있는 술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술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싶었다. 커피와 맥주, 이제는 차(Tea)까지 우리 일상의 다양한 오브제가 되는 것처럼 우리술 또한 우리의 관점과 취향을 담아 하나의 문화를 삼키게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우리술에 대한 맛과 이미지를 우리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보고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과정들은 차근차근 단계별로 꺼내 보일 예정이다.
이젠 직장과 집, 업종간 등 다양한 경계가 허물고 교차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겨나기도 한다. 술도 마찬가지 일거다. 우린 단순히 전통주라는 카테고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문화와 관심사를 술에 담아 지역에서 난 쌀을 베이스로 다양한 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역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꿀꺽하우스가 빚은 술이 또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립되길 바라면서!
로고 또한 이러한 꿀꺽하우스의 의미와 상징성 전달을 목적으로 다른 양조장에선 보이지 않는 차별화된 디자인이어야 했다. 꿀꺽하고 삼키는 모양을 시각화하고 우리술-맥주, 전통-현대, 지역-사람과의 연결 그리고 확장성 등을 고려해 키워드를 뽑아냈다. 그리고 이 생각들을 한 번 더 유연하고 개성 있게 풀어줄 분을 찾았다. 꼭 한 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연이 닿게 된 작가님(@vntr_jun5)과 함께 이미지를 구체화시켜갔다.
꿀꺽- 삼키는 모양을 시각화
연결/가교 역할,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
확장성
로고도 유행이 있다. 한창 로고타이프만 쓰거나 볼드한 느낌이 대세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생각한 바를 담기 위해선 심벌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위 키워드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작가님이 몇 가지 러프한 시안을 잡아줬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수정을 해갔다.
삼키는 모양, 목젖 같은 걸 많이 떠올리다 보니 이 부분이 꿀꺽 영문 스펠링의 첫 글자 'G'와도 유사해졌다. (꿀꺽의 영문 표기를 KKULKKEOK 등으로 고민하기도 했는데 강한 어감이 있어 좀 더 유연한 느낌의 G를 택했다.)
그렇게 완성된 최종 심벌. 보는 이에 따라 흐르는 물, 목젖, 꽃 등 다양하게 읽히기도 한다. 꿀꺽-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처럼 꿀꺽(G)의 모양도 다양한 형태로 재기 발랄하게 변주 해갈 예정이다.
심벌에 이어 여러 가지 사용 상황을 고려해 영문과 한글을 함께 작업했다. 심벌과 조화로우면서도 우리가 생각한 유연한 사고를 가진, 차분하지만 단단한, 본인의 관심사가 뚜렷하고 개성 있는 어떤 인물을 떠올리며 고급스러움, 세련됨, 귀여움 등 어울리지 않는 느낌들은 하나씩 제외시켰다.
글로는 생략된 정말 다수의 피드백과 수정 작업 시간이 지나갔고, 그렇게 우리의 로고타이프도 탄생했다.
이제 만들어진 로고를 모든 접점에서 일관되게 전개해가는 과정이 남았다. 우리의 공간, SNS, 사람들과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로고를 만들기 위해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글로 정리하고, 여러 수정 작업을 거치고 보니 이는 단순히 브랜드의 상징성에서만 그치지 않는 듯하다.
앞으로 우린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말을 건넬지 사람들과 또 스스로에게 건네는 일종의 선언이자 약속이었다. 명함, 이메일 서명란, 잔, 그리고 우리의 공간에 로고가 하나씩 새겨질 때마다 스스로에게도 다짐한다.
오늘도 즐겁게, 또 유연한 사고로 꿀꺽하우스를 만들어가자고. 그래서 수많은 뉴스 속에서도 꿀꺽하우스가 건네는 이야기엔 스크롤을 멈추게 하자고. 꿀꺽하는 순간 맛의 경험과 문화에 대한 영역을 하나하나 확장시키며 꿀꺽하우스를 통해 사람들이 더 다채로운 우리술 이야기를 채우고 비워가게 하자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앞으로 무수한 도전과 맞닥뜨리겠지만 이 또한 차근차근 꿀꺽해버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