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실_B의 교실
오늘의 교실 7화
#. 오늘의 일곱 번째 교실
“솔직히 말하면 이젠 비판적 의견을 무작정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스스로 내키지 않는 셈이죠. 지금까지 영상마다 덧붙인 의견이 어쩌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고요. L 선생님의 말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현실이란 것도 인정합니다. 이젠 그만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기준은 그동안의 속내를 실토했다. 비판은 솔직하고 진솔해야 날카로운 법이다. 지금처럼 자꾸 밋밋하게 이도 저도 아닌 수업 비평을 한다면, 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내려놓음이 마땅했다.
“엥? 무슨 말씀이에요. 작가님 덕분에 저희 채널 지금 순항 중인 걸요.”
“….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반응이 괜찮기라도 하단 말입니까?”
사실 기준은 SNS 채널을 관리하는 것에도, 최신 유행의 트렌드를 읽는 것에도 젬병이었다. 그런 기술적인 점에 더해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의 심리를 읽는 데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관심도 없었고, T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뤄지는 자신의 평가에 대한 것도 직접 찾아본 적은 없었던 터였다.
“괜찮다마다요. 방금 말씀해 주신 포인트들을 저희 애청자들, 구독자들도 다 느끼고 있거든요. 작가님이 예전보다 학교 수업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선생님들에 대한 날 선 평가도 줄이고, 그런 변화의 과정도 꽤 재밌게 느껴지나 봐요. 오히려 그런 점이 리얼리티를 살려준다나. 작가님처럼 학교에 대해 비판 일색이었던 분이 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현상이긴 하니까요.”
‘뭐야…. 애써 숨길 필요가 없었잖아. 티를 내지 않으려 했는데, 이미 알고 있다니.’
기준의 생각을 읽었는지, T는 기준의 마음을 다독이려는 듯, 양손을 동그랗게 말아 ‘OK’ 표시를 만들며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편한 대로 하세요. 어차피 저희의 처음 목표는 우리나라 학교와 교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요. 시청자들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잔잔한 모습들 속에서 안정을 찾는 것 같아요. 그래도 원래 하시던 대로 비판할 점은 언제라도 비판해 주시고요.”
그러자 기준의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죄책감도 조금씩 옅어졌다. 좋은 교실은 좋다고 말하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기준의 선입견 중 하나는 나이 많은 교사일수록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선입견은 앞선 교실들의 사례로 조금씩 옅어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나이 많은 남자 교사에 대한 편견은 여전했다. 어릴 적 숙제를 안 했다고 뺨을 치고, 친구와 놀았다고 종아리를 당구 큐대로 내리친 교사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렇기에 그 나이대의 남교사는 여전히 그에게 ‘악’이자 ‘사라져야 할 적폐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 부분에 대한 경계 정도는 낮아졌다. 학교를 둘러보고, 수업을 관찰하며, 오늘의 교실은 자신이 학생이었던 시절과 달라도 정말 다른 공간이란 확신은 분명했던 덕분이었다. 학교가 달라져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는 온건했고 부드러웠으며 모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인지, 교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도 밝고 즐거웠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분위기, 그것이면 이미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의 말과 표정은 위선과 연기로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방송 촬영 한 번 한다고 아이들을 들들 볶아도 그럴 수 있는 한계치의 선이 있는 것이니까. 자연스러운 반응과 학생들과 교사가 만들어내는 상호작용 속에서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기억하던 학교와 지금의 학교는 많이 다르다.
오늘은 그래서 완전한 무작위성에 다시 기대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조건부를 달고 T에게 학급 선정을 요청했다.
“여자 선생님들께서 가르치시는 현장은 많이 본 것 같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참 괜찮은 분들이었죠. 성별이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번엔 남교사를 중점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L 선생님보다 선배인 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40대를 넘긴, 경력이 결코 짧지 않은 그런 분들요.”
그렇게 해서 도착한 오늘의 교실이었다.
[오늘의 교실]
ㅅ초등학교 4학년 2반
남학생 12명, 여학생 11명
담임 교사 B(40대 초반, 교직 경력 18년 차, 남성.)
학급 목표: [7942] 친구끼리 사이좋은 4학년 2반
‘불혹을 넘긴 남교사의 교실. 흥미로워.’
교실에 있는 소품엔 투박함이 있었다. 주둥이가 깨진 손 소독제 통, 흙이 묻은 축구공, 책들이 곧 쏟아질 듯한 사물함…. 이 모든 것은 흐트러짐을 유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이 함께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교실 분위기도 그와 발맞춰 조금은 질서가 부재한 모습이었다. 시끌벅적 집중이 안 되는 분위기였다.
“와, 와. 봐봐. 진짜 T다, T.”
“예쁘다, 꺄.”
“완전 대박. 우리 반에 T가 오다니.”
아이들의 흥분은 그런 교실의 흔들거림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였다. 아이들은 도통 아침 독서에 집중하질 못하고, 틈만 나면 슬쩍슬쩍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래도 마냥 막 나가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은 서로를 자중시키며 질서를 지키도록 노력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뚝, 뚝.
그런 소란스러움 속에서 일정한 주기로 둔탁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교실 한쪽, 물이 새는 곳이 있던 탓이다. 날씨 탓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함, 괜한 소요의 감정이 마음에 번지기 시작했다.
‘뭔가, 뭔가… 뭔가 좀 다른 걸.’
1교시 수업은 국어 시간.
온작품 도서를 같이 읽는다.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며, 한 사람씩 돌아가며 책을 읽는 소리만이 교실에서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간신히’였다. 호흡을 맞춰가던 중 한 남학생이 교사 B 앞으로 쪼르르 튀어나왔다. 짝꿍과 손장난을 치다가 실랑이가 생긴 모양인데, 교사는 수업 중임을 강조하며 조용히 타일렀다. 그것도 잠시, 이윽고 그 아이가 또 뛰쳐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잘못이 없고 무조건 짝꿍이 잘못한 것이니 혼내달라는 소리를 했다. 당연히 교사로선 들어줄 수 없는 요구. 아이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두드렸다.
쾅. 쾅.
아까의 빗소리와 어우러져 교실은 도통 집중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참…. 다른 사람이 손님으로 와 있어도 이럴 정도면. 정말 쉽지 않겠구나.’
쉬는 시간에 교사 B는 아이 두 명을 불러 이야기를 듣고, 사건의 순서를 확인했다. 이후 혼란을 겨우 수습했다.
2교시 수업은 수학 시간. 기초학력협력강사가 교실에 들어왔다.
“양해 부탁드려요. 기초 학습의 보충이 필요해서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는 선생님이시거든요. 이 학급을 오랫동안 가장 가까이서 내밀하게 들여다보신 분이기도 하고. 담임 교사 입장에서 많이 의지가 되고 감사한 분이기도 해요.”
기준은 강사와 눈이 마주쳤다. 이 교실의 많은 것을 이해한다는 듯, 안타까운 눈빛을 흘려보냈다. 약간의 소란스러움은 있지만 무난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큰 수’ 단원에서 수의 크기를 비교하는 방법을 설명하며 구체물, 그림, 기호를 차례대로 제시했다. 학생이 스스로 원리를 파악하도록 유도하는 발문이 이어졌다.
‘행동적, 영상적, 상징적…. 그래, 복잡한 개념도 그 성질을 유지한 채 어린이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던 제롬 브루너가 생각나는군. 한 차시 안에서 이뤄지는 학습 자료도 그렇고 말이지.’
쉬는 시간은 4학년다웠다. 남학생들은 축구를 하러 나갔다. 여자아이들은 교실에서 몇몇이 무리 지어 대화하거나 종이접기 따위를 하며 놀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뭔가 하나가 되진 않은 듯한 애매한 분위기. 거기에서 오는 불편함이 교실을 감싸고 있었다.
3교시 수업은 사회 교과 시간이었다. 고장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골든벨을 진행하는 차시였다.
“무등산의 높이는?”
교사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1187미터요!”
누군가 쪼르르 답을 말해버렸다. 아이들은 규칙을 어기고 대답을 한 아이를 쏘아보며 핀잔을 한 마디씩 던졌다. 그 아이는 아까 1교시 내내 책상을 두드렸던 그 아이였다. 아이들의 원성이 쏟아지는 틈에도 지식 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거 광주 시내버스 번호에도 있잖아. 1187번. 그것도 모르냐?”
또다시 평화가 깨지기 직전. 교사가 소란을 비집고 들어가, 정답을 말하면 틀린 것으로 처리하겠다고 선언하자, 그제야 아이들 사이의 소요는 잠잠해졌다.
4교시 수업은 영어 교담 수업 시간이라 참관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그 틈을 타 선생님과 인터뷰를 빨리하면 되겠네요!”
그 말을 들은 B는 교탁에서 다급히 어렵다는 손짓을 보냈다.
“아휴, 지금 상황이 어렵네요.”
학교 내 ‘긴급 분리’가 실시되어 교사가 배치되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학교폭력이든, 생활 관련 문제이든, 수업 방해 행위든, 특별히 분리 조치가 필요한 상황엔 법률이나 규정에 맞게 이것이 이루어지는데, 문제는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명분으로 교사가 반드시 아이에게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B는 그렇게 1학년 학생의 문제 행위에 대한 분리 지도를 하러 갔다.
5, 6교시 연차시 수업은 미술 시간이었다. 온작품과 연계한 활동으로 자기 경험을 떠올려 그림을 그리는 활동이 제시되었다. B는 아이들의 활동을 살펴보다가, 온통 강아지로 빼곡한 그림을 발견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그 강아지가 사람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쟤는 사람을 다 강아지로 그려요.”
친구들이 거들었다. 낙서장을 들춰보니 다른 그림들도 온통 강아지뿐이었다. 그 친구에게 수업이 끝나면 잠깐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하는 B였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이야기 나누기로 한 아이는 교실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창밖을 보니 이미 저만치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중이었다. 큰 소리로 불렀지만 뒤를 한번 쳐다보더니 교문 앞에서 서성이며 머뭇거릴 뿐이었다. B는 조용히 나가서 데려오려고 했지만 울면서 발버둥을 치는 아이의 반응에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순 없었다. 경력 덕분인지, 성격 탓인지, B는 참 침착했다. 흥분하지 않고 아이의 변화를 차분히 기다렸다.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달래어 교실에 데려왔다.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본인의 자녀에겐 문제가 없으니 신경 쓰지 말란 식의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왔다.
이후 업무 시간에는 다른 학급의 담임 교사들보다도 더욱 바쁜 듯했다. 교무실로 내려가 공문처리를 하는 B를 창문 너머로 관찰했다.
‘교사의 업무라고 하면 수업 하나인 줄로만 알았던 게 정말 큰 착오였다니까….’
오후 6시가 지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가까스로 일대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많이 늦었죠. 좀 더 빨리 끝내고 시간 확보하려 했는데…. 무슨 교육청 보고 사항이 이렇게나 많은지, 죄송해요.”
“아닙니다, 선생님.”
촬영 팀이 카메라 구도를 잡는 사이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물 소리는 시원하게 느껴질 만한 청량감이 있었다. 하지만 천장에 새어 나와 교실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아까도 참 거슬렸는데, 교실이 조용해지니 더욱 신경 쓰였다.
불편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교실이 뭔가 엇나가있는 듯한 느낌이 여전히 가슴에 뭐가 얹힌 듯 남아있었다. 그 부분을 먼저 다루어야 했다.
“오늘 교실을 관찰하면서 뭔가 좀 달랐습니다. 선생님은 분명 잘 가르치시고, 능력이 있으신 게 제 눈에도 보이는데…. 뭔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지 않은 느낌이 있더라고요.”
“아, 눈치채셨군요.”
기준의 말에 B는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사실 이 아이들의 담임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긴급 대타로 들어온 거죠.”
뜻하지 않은 대답에 놀라며 기준은 되물었다. 야구도 아니고, 대타 투입이란 게 있는 거였구나.
“대타요?”
“네. 사실 이 반…. 교권 보호를 위해 조치가 취해지고, 원래 담임 선생님께서 휴직에 들어간 반이에요. 업무부장이면서 담임을 맡지 않은 제가 이제 급히 담임을 겸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B는 방송에 송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이 반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일들을 담담히 들려줬다. 사건 하나하나가 굵직했고, 또 숨이 막혔다. 어느 누가 교사로 여기에 들어온 들, 극복할 수 없는 구조의 굴레가 곁들여져 있었다.
“그래서 아마 작가님 눈에 그렇게 보이셨을 거예요. 열심히 고군분투하고는 있지만, 아직 아이들을 파악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더 필요하기도 하고, 또 아이들 사이에서 여전히 녹아있는 문제들을 전부 다루기엔 짧은 시간이었기도 하고요.”
“그러면 원래 선생님의 부재가 영향이 아무래도 크겠군요.”
“네, 그럴 겁니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며 열정으로 지도하셨던 분이거든요. 요즘 학교 현장이 좀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애를 쓰고 모든 것을 바치는 분들이 더욱 쉽게 다치는 상황들이 이어지잖습니까. 하루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이런 생각들이 나오더군요. 아이들이 지난 시간까지 학교생활을 돌아보는 활동을 하던 중이었어요.
‘이전 담임 선생님이 정말 그리워요.’
‘우리 선생님은요,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때문에
너무 아파서 학교에 못 오는 거예요.’
‘야, 특히 누구누구가 더 심하게 그랬잖아.’
‘걔들만 그랬냐? 우리들도 할 말이 없어….’
‘제가 선생님이었어도 입원했을 거예요.’
‘선생님이 우리 담임 선생님께 대신 전해줄 수 있어요? 빨리 나아서 다음 학년 되었을 때는 꼭 다시 만나자고요.’
저는 그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첫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그립도록 남아있었던 거죠. 저 역시 그분이 그립습니다.”
상처만 남은 교실.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가 갔다. 그 틈에도 천장에 뚫린 틈 사이로 물방울은 끊임없이 떨어졌다.
“선생님께서 교사가 된 이유를 혹시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다른 대학에서 전혀 다른 전공을 하다가 조금 늦은 나이에 교사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교사가 되려고 했을 때 그 선택을 내린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스스로도 잘 몰랐어요. 교직 생활을 하면서 불현듯 깨닫게 되었는데요. 교사가 된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유년 시절의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더라고요. 사실 전 초등학교 중학년 때 극도로 힘겨웠던 시절을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 초등교사가 되어서도 그 나이대의 학년을 주로 맡았는데, 이게 참 큰 의미가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힘들고 어려운 친구들에게 자주 마음이 갔어요. 실력도 있고 노력하는데 가정의 지지가 부족한 친구들에게는 손을 보태기도 했고요.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머뭇거리는 아이들에게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그 마음으로 교직 생활을 해왔고, 그렇게 제가 교사가 된 이유를 가르치며 찾아왔네요.”
“교직 인생에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요?”
“제 정성과 노력을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뜬금없이 옛 제자에게서 오는 전화나 문자 말이죠. 철부지 같았는데 의젓함이 묻어나는 말투에서 싱긋 피어오르는 위로와 만족이 있어요. 학생뿐 아니라 동료 교사로부터도 마찬가지예요. 송별회에서 건내는 동학년 선생님이이런 한마디를 던진 적이 있었어요.
‘선생님과 동학년을 해서, 올 한해는 정말 좋았어요.’
‘선생님한테는 이 학교에서 만난 우리가 재산이야. 선생님은 재벌이니까 마음껏 하고 싶은거 다해.’
그런 함께하는 마음, 위로, 격려, 칭찬, 모든 것이 교직에서 의미를 찾는 데 보탬이 되는 소중한 조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힘드신 때 같긴 하지만, 교직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꼽아보자면요.”
“어떤 아이에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 쏟았지만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때 같아요. 이듬해 다음 학년으로 올려보내고 나면 종종 그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전해 듣게 되잖아요. 제가 애정을 갖고 신경 쓴 아이가 잘 지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결국 내가 다 바꾸어 놓을 수는 없구나.’ 자괴감 섞인 마음이 들어요.”
“교사로서 가장 노력하신 부분도 궁금합니다.”
“내 교실, 우리 반만 챙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옆 반, 같은 학년, 우리 학교에 내 역할이 필요하면 기꺼이 함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구와도 소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학년 선생님, 행정실, 학부모, 마을활동가, 유관 기관…. 아이들 교육에 필요하다면 협력하고자 먼저 다가갔습니다.”
“후배 교사들을 위해 한 마디를 해주실 수 있겠지요.”
“예, 물론이죠. 음…. ‘내가 아이들을 다 변화시킬 순 없다. 때로는 한계를 인정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안다.’ 이 점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기를 위해 애써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걸, 세상이 다 자기를 버린 건 아니라는 걸, 그걸 지켜보는 아이들은 배웁니다.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혹시 내가 어려움에 빠지거나 삐뚤어질 때 누구라도 내 손을 잡아줄 거라는 기대까지도요. 그 정도만 아이들에게 줄 수 있어도 충분히 좋은 교사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응원의 말, 칭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무너진 교실. 그곳을 다시 세우는 교사. 그 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아우성. 하지만 그것은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이끄는 중력의 작용으로 물방울은 끊임없이 떨어진다. 그러다 땅바닥과 돌덩어리도 때로는 깎여나가듯,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부딪치는 누군가의 도전이요, 투쟁이 있었다.
교실을 나설 때까지도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거슬렸지만, 불편했지만, 이젠 그렇게 담아둘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천장이 고쳐지든, 비가 멈추든, 변화가 일어날 것은 분명했으니 말이다.
… ☆ …
B 교사의 편지
제 나이는 40대, 불혹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불혹’이라는 나이가 되면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생길 줄 알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흔들리는 것은 늘 똑같고….
다만 흔들림 속에서 버틸 수 있는 힘과 경험이 조금 더 생기는 나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열정이 넘치는 교사입니다. 시대와 제도가 어떠하든지 그것을 관통하는 교육적인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한편으로는 내 틀에 갇혀있지 않고 새로움을 찾고 실천하기 위해 애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시행착오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주위의 비난이나 스스로의 자책이 여러분의 열정을 꺼뜨리지 않길 응원합니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큰 사고없이 교직생활을 하고 있고, 끔찍한 악연을 마주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언젠가 그런 아픔을 겪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묘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나를 세워줄 동료가 있다는 확신. 나를 응원하고 그리워해줄 제자가 있다는 확신. 상식 밖의 일을 마주했을 때 상식을 세워줄 학부모들이 있다는 확신.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게 설령 기대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직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