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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Jan 07. 2020

1년 중 절반이 여름인 곳에서 산다는 건

  한국에서도 1년에 눈이 1번 내릴까 말까 한 남쪽 도시에서 태어나서 쭉 자랐던 나는 추위를 싫어한다. 처음 대학을 갔을 때 4월에도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과연 이 날씨에 살 수 있을까 싶었다. 더워서 병이 난 적은 없지만 추우면 꼭 몸살이 났다. 날씨가 추우면 오한이 쉽게 들고 두통도 심해지곤 했다. 그렇다고 더위를 좋아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더우면 땀이 나고 화장도 지워지고 돌아다닐 기운이 나지 않는다. 추우면 옷을 더 껴입으면 되지만 덥다고 홀딱 벗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열대지방에 가서 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베트남에 가게 되었다. 2월 말에 이사를 준비하면서 여름 짐은 배편으로 보내고 가지고 간 트렁크에는 얇은 봄 옷들이 들어 있었다. 배가 올 때까지 3주 동안은 봄 옷을 입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제일 시원한 때이니까 여름옷은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었다. 낮 기온 25도 내외의 습한 날씨에 집 보러 다니느라 하루 종일 바깥에서 돌아다녔더니 바로 깨달았다. 망했구나. 90%가 넘는 습도에 온 몸이 진득해지고 곱슬머리가 존재감을 뿜어내고 화장은 이미 점심때부터 지워지고 없었다. 어쩌자고 꽉 막힌 구두와 운동화만 가지고 온 건지, 이게 2월 날씨라니 충격이었다. 더위보다는 습도가 더욱 걱정이었다. 빨래를 하면 옷이 마른 것처럼 보이지만 만져보면 눅눅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이부자리가 축축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샀던 물건은 제습기였다. 제습기는 4평 남짓의 조그마한 방에서 매일 5L가 넘는 물을 만들어 냈다. 제습기 덕분에 약간의 습기를 덜어냈다 싶다가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면 방이 금방 습기로 가득 찼다. 서랍마다 습기제거제를 넣어두었지만 2주도 되지 않아 물이 가득 찼다. 그야말로 습기와의 전쟁이었다.


  습기에 익숙해질 무렵, 더위도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더위는 4월부터인데 이미 한국의 한여름 온도를 넘어섰다. 1년 중 4월에서 10월은 한국의 여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더운 날씨이다. 습식 사우나 속에서 살면서 하나하나 포기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색조화장을 하는 것은 사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쁜 원피스보다 시원하고 통풍이 잘되는 옷이 최고였다. 구두보다 물에 젖어도 금방 건조되는 신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득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근무하는 곳은 주로 실내였고 근무시간 내내 에어컨이 가동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냉방 온도가 26도로 맞춰져 있고 한창 더운 점심시간에 1~2시간 틀 수 있는 에어컨을 여기서는 내 필요에 따라 하루 종일 틀 수 있으니 실외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실내에서 더위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었다. 다만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다 보니 냉방병이 올 수 있고 눈이나 목이 쉽게 건조해졌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좋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이런 날씨는 사람에게는 힘들겠지만 동물이나 식물에게는 잘 맞는 것 같다. 한국에서 만났다면 희귀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크기의 바퀴벌레나 거미, 도마뱀, 뱀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가로수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이파리도 아침저녁이 다르게 금세 커졌다. 시장엔 망고, 망고스틴, 파파야, 람부탄, 리치 같은 신선한 열대과일들을 쉽게 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더운 낮이 되기 전에 아침 6시도 되기 전부터 활동을 시작하고 11시 즈음엔 점심을 먹고 2시까지는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했다. 다시 오후가 되면 바깥활동을 시작하고 밤에 열리는 야시장엔 사람들이 늘 북적였다. 나도 자연스럽게 저녁 산책을 즐기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3년간 살다 대만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을 때 그래도 베트남보다는 북쪽이니까 조금은 시원하겠구나 기대했는데 섬나라라 해양성 기후였다. 베트남보다 조금 덜 덥고 겨울엔 조금 덜 추웠다. 대부분의 날이 흐렸던 베트남과는 달리 쨍쨍한 햇빛을 볼 수 있어서 바닷가지만 덜 습했다. 90%의 습도가 70% 정도로 내려갔다고 초반에는 눈이나 손이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외출할 때 제습기는 꼭 틀어야 한다. 주말에 이불을 세탁해서 햇빛 냄새나게 바싹 말리는 것이 취미가 될 줄은 몰랐다.  

  

  둘러싼 환경이 변하니 생활습관도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차가운 음료를 좋아하지만 덥다고 해서 매번 찬 것만 먹으면 안 되니 더워도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쓰레기는 매일 꼬박꼬박 버리게 되었다. 틈만 나면 밖을 돌아다녔던 것도 더우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가 늘었다. 주말에 시원한 집에서 독서, 보드게임, 프랑스 자수를 하거나 프로젝터로 영화 보는 것은 예전엔 거의 없었던 일이다. 습관뿐만 아니라 몸도 달라졌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다 보니 손발톱이 빨리 자라 매주 깎아야 되고 머리카락도 6개월 만에 1뼘이나 자랐다. 피부는 건조함이 없어서 좋기는 하지만 땀이 많이 나면서 모공이 늘어났다. 원래 몸에 열이 많은 편인데 내 손바닥, 발바닥이 몸에 닿는 것도 덥게 느껴져서 만세를 하거나 대 자로 뻗어서 자게 되었다. 헬스장을 좋아하지 않는데 밖에서 운동을 하는 것은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땀이 나니까 어쩔 수 없이 헬스장을 다니게 되었다.


  계절의 변화는 뚜렷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변화들을 찾아내는 것도 나름대로 즐겁다. 다 같은 열대과일 같아도 더위의 정도에 따라 제철이 있고, 태풍이 많이 오는 시기도 있고, 저마다 꽃이 피는 시기도 정해져 있다. 연교차가 50도 이상되는 한국과 달리 연교차가 20도 안팎이지만 패딩도 입고 어그부츠도 신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가끔은 한국의 4계절이 무척 그립다. 봄이 되면 색색깔의 꽃이 피고 모든 생명들이 움트는 따뜻함이 있고 가을이 되면 산이 울긋불긋 물들고 들에 곡식과 열매들이 영그는 풍성함이 있으니까. 4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살다 이렇게 여름이 긴 곳에서 살게 되니 시간에 상대적으로 무뎌진다. 하루가 긴 것 같으면서도 1달이 훌쩍 지나가 있기도 하고, 한 해가 끝나가는 시기에 있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을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에 무뎌지는 만큼 성격이 느긋해지려나 싶었지만 성격은 신기하게 그대로이다. 그래, 변하지 않는 것도 하나쯤은 있어야겠지. 중국어 표현 중에 ‘習慣了嗎?'라는 말이 있다. 직역을 하면 ‘여기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냐(=적응되었냐)?’는 말인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적응을 안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응을 못 하면 한국에 가야 하고 빨리 적응을 해야 여기에 살 수가 있다. 창문을 열었을 때 훅 찌는 듯한 더위와 습기가 들어오면 얼굴이 찌푸려지고 지글지글한 아스팔트 위에서 빨간 불에 서 있으려면 발바닥이 아니라 머리가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현자 타임을 매 순간 맞닥뜨린다. 적응했다는 것은 참을 수 있다는 것이지 만족스럽다는 뜻이 아니다. 예상할 수 있는 만큼 참을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날 뿐이다. 더위가 아니라 인생에서 우리가 맞게 되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인간관계에서 적응은 더위에 적응하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적응이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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