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부르짖었으므로, 그들(조상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믿었으므로, 그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요,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일 뿐입니다.
《시편 22편 5~6절》
지금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하는 세상의 비방이 있습니다.
'너희들의 신이 모든 죄악을 용서해 주기 때문에 지금 너희들이 그렇게 범죄를 행하는 것이냐?'
언론에서는 연신 교회 안의 범죄를 고발하고, 예수를 따른다는 사람에게서 당한 억압과 고통과 상처를 이야기하는 이웃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이렇게 항변하고는 합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공동체는,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나는 그렇지 않을까요.
제 선배의 시대만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과 사뭇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간증이 있는데, '당신은 왜 교회를 찾아오게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선배들 중 한 명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죄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말입니다.
운이 좋게도 이렇게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었고,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더더욱 이 느낌은 커지는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은 세상과 다르게 착하고, 그런 여러분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낍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조상들은 주님을 믿었기에 구원받았습니다. 당신을 신뢰했기에 수치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비방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의 수치이자 모욕거리입니다."
이 고백이 엄청난 시대적 거리가 있는 저에게까지 관통하여 마음을 때립니다.
물론 조상과 저는, 믿음의 선배들과 우리는 동일한 인간이고 동일한 죄인입니다. 선배들이 완성한 승리의 결과와 현재 우리의 과정을 비교하기에 불합리하다 느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우리들도 반드시 구원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소망 안에서 우리의 죄악 되고 수치스러운 모습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만연한 교회의 범죄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범죄임을 고백하고 구원을 소망함으로 이것을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잘못된 그리스도인이고 나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 모두가 구원을 소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상과 나는, 선배와 우리는,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후배는 모두 한 공동체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든, 너든, 우리든, 너희든, 용서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우리를 인정해야 하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허락해 달라 기도합시다. 우리 선배들에게 행하였던 것처럼,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 모두가 구원을 누리고 세상의 덕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그리고 그 시작인 우리 안에서의 용서와 사랑이 넘쳐 흐르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