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
연좌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우리에게, '태어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다'라는 문장은 마치 책임 질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에게 죄를 묻는 것처럼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진노의 자녀라는 말씀, 혹은 원죄의 유전이라는 개혁주의 교리는 조상들의 죄를 선택과 책임의 능력이 없는 아이들에게 전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담의 선악과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사탄의 통치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정말 단적인 예로, 현대의 환경문제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발전한 문명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만들어냅니다. 타는 쓰레기는 소각 시 대기오염을 발생시키고, 재활용 쓰레기는 아주 일부만 재사용되고 많은 것들은 소각 혹은 매립되어 대기오염, 해양오염등을 유발합니다. 심지어 매립된 것들이 빗물과 섞여 하천과 바다로 흘러가서 바다 생물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지만, 쓰레기 생산을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비에는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편리를 포기하게 되면 극단적인 경우 비문명인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결국 우리는 연좌제의 관점으로 이것들을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원죄의 유전이든, 진노의 자녀이든 구조적인 악(구조악)의 문제를 성경과 교리가 다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악이 그렇듯 구조악은 멸망과 사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력으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통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죄와 사망에 구조악도 포함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건저 내셔서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셨고, 그 초대에 응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구조악을 거부하는 구조를 구축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며, 성령이 임재한 그리스도인 개개인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구조적인 악에 사로잡혀 내가 악에 둘러싸였는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이 악에 둘러싸여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조악에 저항하는 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과 부활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대한 구조악 앞에서 담대해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감사하며, 일상 속에서 구조악에 저항하는 하나님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