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죽어야지." 나이 지긋한 노인이 나직이 내뱉는다. 초점 없는 눈은 바닥을 향해 있다. 오른손에 들린 지팡이는 힘없이 축 처져 쓰러질 것만 같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지만, 이내 자신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채고서는 시선도 다시 바닥으로 향한다. "죽어야지." 마치 읊조리듯 조용조용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도 죽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방금 태어나 울음을 터트린 갓난아이도, 상수(上壽)를 바라보는 백발의 어르신도 모두 죽음을 앞둔 이들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은 온전하게 유지된다. 죽음은 만인에게 평등한 절대적인 가치다. 만약 죽음이 평등하다는 전제가 무너진다면 세상도 같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향유하는 일상의 가장 필수적이면서 대체 불가능한 가치는 죽음인 셈이다.
그래서 죽음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 죽음을 부정한 가치가 아닌, 객관적인 가치로 인식해야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모든 것을 걸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살아갈 동력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상대와 나를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누구나 죽음을 맞기에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사람과 사람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죽어야 한다던 노인은 한 시간가량 지루하게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나 진료를 봤다. 이곳저곳 아픈 곳을 가리키며 원인을 캐물었다. 병원에 자주 오기 힘들다며 한 달치 약을 처방받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약국에 향했다. 약국에서는 처방받은 약 말고도 파스며 영양제를 한 봉지 샀다. 그 노인의 삶은 죽음이 지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