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현 Jul 07. 2020

차박 레이, 그럼에도 차박엔 레이

다락엔 감성

1. 차박 하려고 레이(경차)를 산다고 했더니 미친놈이란다.

"차 살라고."

"있잖아, 차. 미니 쿠퍼."

"그거 팔았어."

"왜?"

"불필요해서."

"그랬군. 그래, 서울에서 차가 왜 필요해...... 아니지, 잠깐! 아까 차 산다며?"

"응."

"미니를 팔고, 다른 차를 산다는 말이야? 왜?"

"차박 하려고. 미니는 차박 하기엔 적합하지 않아."

"....... 이런 미친X."

"ㅋㅋㅋ"

"그래서, 무슨 사를 사려고? 랜드로버? 지프?"

"레이."

"...... 레이? 그 경차 말하는 거야? 하, 진짜 미쳤네."

"ㅎㅎㅎ"

뭐, 대충. 이런 반응이다. 


덧붙이자면. 

"마흔 넘은 남자가 경차라니!"

란다. 


그래, 이런 반응에 일일이 따지고 싶지 않다. 

경차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에 대꾸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경차의 장점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내 관심사가 아니다. 


멀쩡하게 타고 다니던 미니 쿠퍼는 차박 하기엔 작아서 팔았다고 하고. 

그래서 차박을 하겠다고 사겠다는 차가 덩치 좀 큰 차겠거니 했는데, 덩치 작은 경차라니.

지인들이 속으로 삼키는 말들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차박만 아니라면. 

나도 똑같은 반응이지 않았을까.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고작, '차에서 노숙'을 하겠다고, 

천육백만 원 정도를 지불한다니, 

이렇게 생각해봐도, 

역시나, 미친X 소리를 들을 만했다. 


깔끔하게 인정.


2. 차박이 적성에 맞는다?

난 지독한 집돌이다. 

보름 가량을 가까운 편의점도 나가지 않았던 적도 있다. 

코로나19로 자가 경리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 기간 동안 필요한 생필품이 부족해지지 않았으므로)  


그만큼 난 집이 좋다. 

좋아서 나가지 않았다. 

좋아서 집에 붙어 있었다. 


무엇보다 (일이 아니라면) 난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는 것도 그다지 좋아한다.

마음이 맞는 지인들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의 자리를, 

아예 피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만들려 하지도 않는다. 

(가끔, 이대로 가면 사회에서 격리될까, 모임도 기웃거려보긴 하지만, 내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 나지만,  

한 번 문지방을 넘으면 또 엄청 돌아다닌다. 

그러니까, 언제 또 나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돌아다닌다. 


돌아다니고 싶지만, 집이 너무 좋아. 

집이 너무 좋지만, 돌아다니고 싶어. 


뭐, 어쩌라는 건지.

그래, 이중적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면. 

그래서. 


난 차박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다니고 있지만, 집에 있는 느낌. 


그 느낌이 들었다. 


3. 다락이라 이름 지은, 레이

그 집에 있는 느낌이 가장 편하게 느껴진 게, 바로, 레이였다. 

2열 시트를 접고, 그 위에 올라가 앉았을 때. 

마치 좁지만 아늑했던 다락방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에, 

다양한 차를 타보고, 비교해 봤지만, 

레이가 나에게 주었던, 

'다락방'같은 느낌이 드는 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내가 타본 차 중에서)


물론, 레이는 차박용 차가 아니다. 

차박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많은 레이의 차주들이 차박을 하고 있지만. 


기아의 레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오너들의 니즈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1열과 2열을 모두 접으면 평평해지는(평탄화) 것만 해결해줘도, 

레이는 불티나게 팔리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너무 잘 팔려서, 레이에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게, 업계의 소문이긴 하다지만.)


아무튼, 레이는 장점이라고는 공간 활용 외에는, 이렇다 할 말이 없다. 

오히려 단점 투성이다.


언덕 올라갈 때 힘이 딸려요. 

고속 주행은 포기해야 해요.

승차감 별로예요. 


맞다. 맞는 말이다. 

타보니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천육백만 원이나 하는 (옵션 비포함) 차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닌가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천육백만 원이 적은 액수의 돈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레이의 단점들이, 

'포근한 다락방'이라는 다소 개인적이고 감성적이 이유에 모두 묻혀버렸다.


돌아다니고 있지만, 집에 있는 느낌. 

단 하나의 이유가. 날 사로잡아버렸다. 


[계속]


https://book.naver.com/search/search.nhn?sm=sta_hty.book&sug=&where=nexearch&query=%EA%B0%90%EC%84%B1%ED%98%8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