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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23. 2021

이러려고 결혼하고 이렇게 키우려고 애를 낳은 건 아닌데

낯선 설렘: 필리핀

#동남아 #아세안 #필리핀 #마닐라 #인터뷰




집안일에서 해방된 게 가장 행복해요.


피플 인 마닐라: 인터뷰#6


켈리와 숀은 6살짜리 아이를 둔 부부다. 

마닐라에 오기 전엔 그들도 한국의 여느 부부처럼 맞벌이에 육아까지, 

정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행복은 했지만, 왠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늘 고민스러웠다고 했다. 


기러기 가족이 아닌, 

온 가족이 필리핀으로 올 수 있었던 건, 남편 숀의 직업 때문이었다. 

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숀은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었고,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매드'족이었다.


개부럽. 

ㅡ..ㅡ 

  

Kelly

남편이 하는 일이 장소에 구애를 안 받아요. 

그래서 필리핀 행을 결심할 수 있었죠. 

우리는 결혼하고도 계속해서 맞벌이를 했고, 

첫째 아이까지는 어떻게든 직장과 생활을 함께 꾸려갈 수 있었죠. 

하지만 아이가 혼자다 보니깐 외로움도 타고, 

아무래도 엄마랑 아빠랑 함께하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고요. 

처음에는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셨고, 그 후엔 친정어머니. 

다시 언니가 몇 달 봐주다가, 마지막으로 아주머니를 썼거든요. 

그럴수록 점점 더 많이 벌어야 하니, 더욱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없어지는 거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 없이 고생하고, 

저희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 바쁘고, 

돈은 계속해서 벌긴 하는데 도통 모아지진 않고. 

정말이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더라고요. 

이렇게 살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키우려고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리고.... 지금 뱃속에 둘째가 있거든요. (계획된 건 아니고요, ^^), 

아무튼 하나도 이런데,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게 결코 쉽지 않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결단을 내렸죠. 


Shawn 

아내가 많이 스트레스받았죠. 

그래서 신경도 예민해지고, 싸움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Kelly

싸움도 큰 일 때문에 싸우면 억울하지나 않죠. 

가장 많이 싸운 게 밥 때문이었어요. ^^

사실, 남자들은 집안일은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Shawn 

아니야, 나 그렇게 생각 안 해. 내 일이다 생각하지.


Kelly

아니, 그렇게 생각하시거든요. 

그리고 가만히 좀 있어봐요. 

내 인터뷰잖아요. 


Shawn 

아니, 나도 인터뷰....


Kelly

있잖아요, 그건 백 번 양보한다고 해도 육아는 정말 함께 해야 하잖아요? 

가령 아이가 잠들 때 책을 읽어주는 것도요, 

엄마가 열 번 했다면, 적어도 아빠가 한 번 정도는 해줘야 아이에게도 좋은 건데, 

그것도 힘들어하고 귀찮아하니까, 제가 열이 받죠.

아니, 애는 나 혼자 만들었어? 


켈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요목조목 그동안 쌓였던 얘기를 꺼냈다. 

괜히 행복한 가정에 돌을 던진 게 아닌 가 싶어서 살짝 숀의 표정을 살폈는데, 

이미 켈리가 하는 얘기는 다 알고 있는 듯, 

미안한 웃음을 살짝 머금고 켈리의 손을 잡았다.


아, 이것이 부부인 건가?

리스펙!


아무튼, 다행이다. 

사실, 인터뷰를 하기 전부터 켈리와 숀은 무척이나 선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웃음 때문이기도 했고, 나긋나긋한 말투 때문이기도 했다. 

잉꼬부부라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켈리의 말대로라면 그동안 참 많이 싸웠을 텐데, 

그런 시기가 있었다라고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다정한 모습이었다. 

 

Kelly

필리핀에 오면서 싸움이 많이 줄었죠. 

아니, 전혀 싸울 일이 없었어요. 

무엇보다 집안일에서 해방되었거든요.

아이, 행복하여라. 

그러고 직장에서도 벗어났고요. 

그래요, 저 백수예요. ㅎㅎ

그러니 이젠 아이에게만 신경 쓸 수 있고, 

뱃속에 있는 둘째를 위해 태교에만 집중할 수도 있고요.  


 GHam

그 모든 게 필리핀에 왔기 때문이라는 얘긴가요?


Kelly

음.... 꼭 마닐라에 왔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마닐라에 오면서 여유를 되찾았기 때문이겠죠. 

여기의 가장 큰 장점은 싼 인건비예요. 

가사도우미를 써도 한 달에 10만 원 정도 하거든요. 

일도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정말 제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에 아이 돌봐주는 사람까지 쓸 수 있으니, 너무 좋죠. 

한국이라면, 거의 제 월급을 고스란히 써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절대로 한국에선 꿈꿀 수 없던 삶이죠. 

여기서는 너무 적은 비용으로 충분히 가능하죠. 


켈리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리핀엔 영어 공부를 위해 오는데, 

켈리는 정말 태교와 육아 때문만으로 온 걸까?


Kelly

영어 공부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물론 당연히 아이의 영어 공부도 이유였지요. 

아이는 벌써 조기교육을 하고 있고, 저도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마닐라엔 2년 정도 있을 계획이에요.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는 거죠. 

아이가 외국 생활에 잘 적응하는지,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잘 생활할 수 있는지를 보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을 테스트해보기엔, 마닐라만큼 좋은 곳도 없는 것 같아요.

기회비용이 나쁘지 않거든요. 

 

GHam

필리핀을 선택하신 이유는 있나요? 

가령 한국에 있을 때 누군가가 정보를 줬다던가.


Shawn 

제가 예전에 여기로 영어 공부를 하러 잠시 왔었어요. 

그때 여러모로 괜찮다는 생각을 했죠. 

영어공부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여기로 와서 생활해도 괜찮겠다는 생각 말이에요. 

그래서 아내와 상의를 했어요. 

전 좋은데 아내가 싫다고 하면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일주일 정도 답사를 왔었어요. 

여기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만나보고, 

그렇게 현지에서 정보를 얻은 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최종 결정을 했죠.

 

Kelly

여기 와서는, 처음 4개월 정도까지 하숙집에 머물렀는데, 지금은 렌트했어요.

아무래도 하숙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사는 거니까 불편하잖아요.  

아무튼 랜트해서 산지는 이제 5개월 짼데 너무 좋아요. 

버는 수입은 한국에 있을 때와 똑같아도, 여기서 살면 정말 풍요롭게 살 수 있죠.


GHam

가족이 다 같이 오셨는데, 기러기 가족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세요?

 

Kelly

대부분 기러기 가족이 되는데, 솔직히 저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요. 

가족이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죠. 

그러려고 결혼한 게 아니거든요. 

다행히 우리 가족은 남편이 프리랜서니깐 가능한 부분이었죠.

남편이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이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무조건 올 거예요. ^^

 

GHam

혹시, 좋은 점 말고, 나쁜 점은 없나요? 

예를 들면 너무 덥다라던지.


Kelly

덥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더운 건 잘 느끼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에어컨이 있으니깐요. 

쇼핑몰 같은 곳도 냉방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긴 팔을 따로 가지고 가야 할 정도거든요. 

필리핀이 더워서 못 살겠다.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숀도 막상 떠오르는 나쁜 점은 없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뭔들 안 좋을까? 

다정하게 손을 잡은 둘의 모습은 이미 신혼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닐라에서 제2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은 일과 생활에 치여 지쳤다면, 

마닐라에서의 결혼생활은 편안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선물 받은 듯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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