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데 부캐가 필요할까요?

by 감성현

부캐 전성시대다.

안티 없기로 소문난 유재석 님이 제대로 문화를 만들었으니,

활동명을 쓰는 아이돌도 그건 부캐가 되었고,

필명을 쓰는 작가들도 그건 부캐라고 우길 수 있게 됐다.


내 이름 '감성.현'은 필명이다.

본명에 '현'자가 들어가서 '감성.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 성현'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감성.현'이다.


'감성.현'은 사실 시리즈의 첫 단추였다.

에세이는 '감성.현'으로.

소설은 '이성.현'으로,

사설 같은 글은 '개성.현'으로,

작사는 '감탄.현'으로....

그래서 나의 작업실 명이 현쓰작업실이다.

소유격 'S의 '쓰'이기도 하고,

복수형의 s가 붙은 '쓰'이기도 하다.

아무튼, 나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던 이름이었고,

첫 책이 여행 에세이가 되면서, 감성.현을 가장 먼저 사용하게 됐다.


첫 책을 들고 아버지에게 내밀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왜 감성현이냐고 하시면서 내심 서운해하셨다.

그때는 왜 필명을 썼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사실, 필명을 왜 썼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난 필명을 추천하는 쪽이다.

본명을 선물해준 부모에게는 살짝 불효(?)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부터가 불효(?)일 테니,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필명을 추천하는 이유는.

글 앞에 솔직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글을 써오면서,

내 글은 점점 더 적날해지고 단순해지고 있다.

내가 그렇게 써가고 있다.


초반의 글을 다시 보면,

온갖 수식어도 많고,

뭔가 있어 보이려고 꾸민 문장도 많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을 뿐인 상황도,

뭔 의미를 그렇게 갖다 붙였는지,

밥 한 술 뜨는데 최소 10분은 걸린다. (읽어야 한다)


뭐, 그 정도의 꾸밈은.

글맛을 살리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단순하게 글을 써가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내 글이 진솔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 원인은 자기 방어였다.

나도 모르게 나는 날 보호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글을 쓰다가도,

아, 이렇게 솔직하게 쓰다가는 내 이미지가 뭐가 될까?

이 글과 연관된 사람들이 삐지겠는데?

같은 생각들로 100%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10% 언저리에서 둘러대고 있었다.


당연히 글맛은 떨어지고,

공감도는 낮아지고,

나 스스로도 글쓰기에 만족도가 떨어졌다.


그때,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필명이었다.


필명 뒤에 날 감출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감성현을 검색하면 인터넷에 내 얼굴이 뜬다.

내 SNS가 연결되어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 수 있다.

내 본명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은행계좌를 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면)

감성현이 누구인지 매칭 되는 인물이 있다는 거다.


난 이 인물을 내가 아닌, 감성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감성현이란 인물을 연기하는 중이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이제는 내가 감성현인지, 감성현이 나인지 헷갈리지만.

어쨌든 감성현은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고, 그 인물의 직업은 작가다.


이런 장치(?)를 하고 나니까.

글이 솔직해졌다.

더 적나라하게 쓸 수 있고,

감성현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한 발짝 물러서서 대미지를 줄일 수 있었다.

(마치 배우들이 맡은 배역에 욕을 먹으면 좋아하는 것처럼)


종종, 글쓰기를 시작한 분들이 필명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요즘 래퍼나, 댄서나 거의 활동명을 쓰는 시대 아닌가.

작가라고 그 활동명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미 많은 웹소설의 작가들은 활동명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웹소설 작가 친구는.

활동명이 참 많다.

웹소설 특성상, 약속한 시간에 글을 올려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글이 자꾸 산으로 가게 되기도 하고,

조회수가 너무 적게 나와 민망할 정도이기도 하고.

그럴 땐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이 활동명을 버린다고 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른 활동명을 만들어서 새롭게 연재를 한다고 했다.


돈이 궁할 때는,

야설을 쓰기도 한다는데,

그게 잘못된 일도 아니고,

소설의 장르이자, 어른들의 문학이라고 생각하지만,

야설을 쓸 때는 또 다른 활동명이 있다고 했다.

그 활동명은 나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용이 내용이라,

자신의 판타지를 친구인 나에게 알려주기 싫다고 했다.

그냥 그건 판타지일 뿐, 허구고 소설인데, 현실로 가져와 자신에게 매칭 하는 게 싫다고 했다.


여러 이유로.

작가들은 필명을 쓴다.

이런 생활 밀착형 이유 말고도,

뭔가 문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명을 쓰는 작가도 있고.


맞고 틀림은 없다.

사고의 다름이 있는 거지.


그래서.

필명이 필요한가요?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을 해주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리고 번역이 되어 다른 나라에 출간이 되더라도 쉽게 기억되는.

나아가 외계인까지도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필명은.

있는 게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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