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by 감성현

2018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022년에 엄마가 긴 여행을 떠나셨다.


누군가는,

두 분이 너무 사랑하셔서

아버지를 따라 엄마도 그렇게 일찍 떠나신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착한 엄마는

나쁜 아버지를 끝내 버리지 못했을 뿐,

무척이나 싫어하셨다.


수십 년을 아버지에 시달리며 살아오셨던 탓에,

자식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죽음 뒤에, 엄마에게 '이제 좀 편하게 지내실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착한 엄마는 그때도 나를 나무라셨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를 욕하셨다.


형의 끝없는 설득으로,

엄마는 평생 하나 챙겨놓으신 아파트를 월세로 돌려놓고,

형과 함께 살기로 했다.


현명한 형수와 귀엽기만 한 손녀, 손자와 함께,

엄마는 형과 함께 남은 인생을 살기로 했다.


엄마는 평생 돈 걱정에 시달리며 살았다.

말로는 일을 안 하면 심심하고, 오히려 병이 난다면서 계속해서 일을 하셨다.

그렇게 차곡차곡 통장에 쌓여가는 돈을 보는 게 낙이면 낙이셨다.


그 돈을 매번 호시탐탐 노리는 아버지와 싸우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으로 빌려버린 수천만 원 돈을 아버지 대신 갚으면서도,

엄마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엄마가 형과 살기로 한 그 시기에

통화에서 엄마는 해맑게 웃으며 내게 자랑을 하셨다.


"아들. 엄마, 이제 국민연금 받아. 그리고 월세도 따박따박 들어오고."

"이제 엄마는 놀기만 하면 되네."

"아들. 그동안 한 번도 용돈 준 적 없는데, 엄마가 용돈 보내줄까?"

"아니. 그럴 돈 있으면 엄마 써라."

"...."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 무렵부터 집과 정을 떼고,

일절 집에 손을 벌리지 않고 살아온 아들을.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도 가끔은 집에도 찾아가고,

연락도 하면서 지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7년 전부터는 아예 모든 연락을 끊고 살았다.

억지로 안 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하지 않았다.


다시 집과 연락을 하게 된 것도,

다시 엄마와 연락을 하면서 지내게 된 것도,

7년 만이었다.


"아들. 엄마가...."

"됐다. 뭔 소리를 또 하려고."

"아니, 그냥...."

"천천히 하자, 천천히. 앞으로 시간도 많은데 천천히 풀어가자."


그리고 또 습관처럼 연락이 끊겼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석 달이 되어가는 20년 12월에 형에게 연락을 받았다.


엄마가 많이 아프다고.

이건 또 무슨 말인지.


국민 연금도 받기 시작했고,

따박따박 월세도 들어오고,

연봉 높은 큰 아들이랑 돈 걱정 없이 살고,

싹싹한 며느리와 애교 가득한 손녀, 손자랑 알콩달콩.

이제는 아무 걱정도 없이 재미있게 살기만 하면 되는데.


"어디가 아픈데?"

"...."

"병원에 갔어? 병원에서는 뭐라는데, 심각하데?"

".... 뇌에...."

"뇌?"

".... 수술을 하셔야 해.... 그런데 수술을 해도...."


울음인지, 울분인지.

그 쏟아져 나오는 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한마디 한마디 힘겹게 형은 동생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전화를 끊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누가....

어떤 작가가....

어떤 감독이....


이따위로 이야기를 전개하냐고.

막장 드라마도 아닌데.

왜....


하다못해 10년....

10년만이라도 모든 걱정 내려놓고,

좀 웃으면서 즐겁게 살아보면 안 돼.


우리 엄마한테는.

그것도 사치냐.... 씨발새끼들아.






20191203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수술은 오후 5시가 되어서 끝났다.

우려했던 심장의 무리도 없고, 마비도 없다.


수술이

완치가 아닌,

고작 삶을 조금이나마 더 연장을 위해,

하려는 이유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수술로

엄마의 삶이 3개월에서 1년 4개월로 연장됐다.


대략 1년의 연장....

고작 1년인데, 수술은 무지 잘된 거라고 한다.

이제 또 항암치료도 같이 진행해야 한다고 한다.


엄마에게 1년 4개월이라는 이야기는 숨기기로 했다.

열심히, 꾸준히 계속 치료받으면 계속해서 나아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그게 맞나 싶기도 하다.


엄마에게 남은 삶이 길지 않다고 말해줘야 할까?

그래서 그 짧게 남은 삶이라도 못해본 것 없이,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도록.

갖고 싶은 거 다 갖고, 입고 싶은 거 다 입고, 가고 싶은 데 다 가고.


그렇게 원 없이 사시라고.

말을 했어야 했나?


긴 고민 끝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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