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형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끝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타인이라면 더욱 강하게 긍정했을 그 모습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긍정할 수 없었는데,
착한 엄마는.
이번에도 먼저 강하게 아들의 짐을 덜어주려고 했다.
교모세포종.
뇌종양.
뇌암.
수술은 뇌를 건드릴 수 있는.
그래서 지극히 마비가 올 수 있는.
말도 잘 못하게 될 수도 있는.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말할 수도, 행동할 수도 있는.
그래서
많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수술이었다.
- 엄마, 수술을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데.
- 얼마나 오래 산다는데.
- .... 일년 ....정도래....
- 그렇구나....
- 그런데, 잘못하면 마비가 올 수도 있데....
- .... 화장실도 못가나?
- 응?
- 나 혼자 화장실도 못 가는 건 아니지?
- 아니야, 그냥 절뚝거리는 정도래....
- ....혼자 화장실은 갈 수 있는 거, 확실하지?
그게 중요해!
내가 화장실 데리고 다니면 되잖아!
화를 낼 뻔했다.
하지만, 속상함에 화를 내서는 안된다.
나의 속상함은 엄마의 속상함에 비하면,
티끌도 안될 정도의 속상함일 테니.
엄마는,
오직 하나만 걱정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어야 했다.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 없다면,
1년의 생명연장은 하지 않겠다 했다.
아들에게도 그렇게 말했고,
며느리에게도 그렇게 말했고,
간호조무사에게도 그렇게 말했고,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수술은 길었다.
너무도 길었다.
중간에 의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와서 형을 만났다.
큰 부위는 제거했습니다.
더 욕심을 내면 뇌의 일부도 같이 제거가 돼서요.
여기까지만 하고 덮으려고 합니다.
나머지는 항암치료로 상황을 지켜보죠.
괜찮겠습니까?
그 말은.
더 욕심을 내면
엄마는.
혼자서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형은 망설였다.
나도 망설였다.
마취 상태인 엄마를 대신해 대답을 해야 했다.
지금의 엄마라면.... 뭐라고 대답할까.
지금도 많은 생각들이 수시로 모습을 바꿔가며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때 그랬다면.
일어나지도 않았던 수많은 상황들을,
떠올리고 생각해보고 후회한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수많은 상황들을,
미안해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제대로 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 거리기도 한다.
아프다는 건 어쩔 수 없다.
건강하지 못한 삶을 누가 원하겠는가.
누구나 환자가 되고,
환자가 된 '삶의 질'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수술을 마친 엄마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말도 편안하게 하고,
거동에 불편함도 없다.
물론 기운이 없고,
머리가 울리고 아파서,
기운차게 걷지는 못하지만.
엄마는
혼자서
화장실을 가셨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갈 때마다,
엄마가 고민했을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라면.
혼자 배변활동을 할 수 없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더러운 뒤처리를 할 수 없다면,
매일 내 기저귀를 가는 누군가의 표정을 봐야 한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 가족이라면.
나는 그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엄마는,
아무리 어른이 된 자식이라도,
똥기저귀를 갈아 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은,
아니.
엄마는,
아무리 아파도,
차마 자식에게 자신의 똥기저귀를 갈아 달라고 하지 못한다.
적어도.
우리 엄마는.
마지막까지도,
차마 그 부탁을 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유일했던 소원은.
혼자서.
화장실을 가게 해달라는 거였고,
엄마는 끝까지
당신의 존엄성을 지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