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영어도 못하면서,
해봉달(해외 봉사 단원을 부르는 나만의 애칭, 찡긋!)에 도전(할 생각을)할 수 있었던 건,
정말 문득 든, 너무도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파견 국가를 살펴보니,
영어권이 아닌 나라가 거의 단데....
정말 영어가 필요할까?
내가 영어를 잘해도, 대상자들이 영어를 못하면?
그러네!
상관없네!
이런 생각이,
도전의 첫걸음이 되었다.
물론,
영어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파견돼서 함께 일하게 되는 코워커(현지 직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매개어로 영어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파견지와 맡게 되는 업무에 따라서 영어가 그렇게 꼭 필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일보다는,
퇴근해서의 생활에서 영어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있다.
집도 계약하고, 밥도 사 먹어야 하고, 약국에도 가야 하고.... 뭐 이런 거.
아무튼,
'영어가 필요 없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해외 봉사 단원을 뽑는 공고가 날 때마다
열심히 지원을 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02.
해봉달 지원서를 작성할 때,
할 줄 아는 외국어를 입력하게 돼있다.
물론, 나처럼 없는 경우는 비워 놓고 지원하면 된다.
처음에는 '영어 초급'으로 입력했었다.
뭐, 길 정도는 물으면서 배낭여행 정도는 하니까.
그랬다가 다시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고 비워뒀다.
내가 여행하러 가는 게 아닌데,
여행 영어를 가지고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하면,
파견 나갔을 때, 현지에서 민폐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 과장하지 말자.
영어가 필요 없는 봉사라면 뽑을 것이고,
영어가 필요하다면 탈락시키겠지.
대신,
자소서와 경력(특히 20년 넘는 직장에서의 경험)은
지원자들 중에서, 내가 더 나아 보일 수 있도록
최대한 자세히 적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연락이 오겠지 하며,
마음을 비우고 기다렸다.
이 짓(?)을 1년 동안이나 했다.
해봉달 뽑는 공지가 뜰 때마다 계속 도전을 했다.
그러는 동안,
서류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면접까지는 붙었지만, 면접을 죽 쒀서 (확실히 그랬다)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차츰 데이터가 쌓이면서,
영어가 필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면접 때, 어떤 대답을 했어야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03.
WFK-KOICA-NGO 봉사단 모집 공고가 떴다.
NGO 봉사단이기 때문에, 많은 NGO 기관의 모집 공고가 따로따로 떴다.
서류 접수 마감일과 합격했을 때 면접 일정까지 확인해서, 일정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순서대로 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첫 번째로 지원한 NGO 기관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 당일.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되면 되고, 말면 말고 하는 마음이 컸다.
다른 기관들도 계속 면접을 볼 수 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이미 1년 정도 경험을 통한 여유가 생겨서였을까?
그래서 면접은 면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팅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면접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물었다.
"저, 합격 여부는 언제 연락 주시나요?"
"네? 뭐.... 저희도 일부러 늦게 드리거나 하진 않는데, 왜.... 요?"
"다른 건 아니고요, 다른 NGO에도 지원서를 낸 상태라서요."
"아, 그러시구나."
"여기 떨어지면, 다른 NGO에서 면접 오라고 하면 가려고요."
"붙으면요?"
"그럼 끝인 거죠. 여기에 올인."
이런 대화가 솔직하다고,
플러스가 되었을지, 마이너스가 되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날 저녁에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함께 하시죠.
합격이었다.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 가는 것까지는 아니고.
아무튼, 합격 연락을 받았는데,
뭐랄까....
기쁘다기보다는,
좀 허무했다.
그리고 정말 이제 해봉달이 되는 건가?
그럼 정말.... 해외에 봉사하러 나가는 건가?
동시에,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