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정규 수업만 받고 가거라. 정 힘들면 담당 과목 선생님께 미리 얘기하고 독서실에 있던가. 어떻게든 정규수업은 다 받고 가라.”
나는 주체없이 흐르는 눈물을 정신없이 닦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줄어 들어도 힘든 건 여전했기에 내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찾아낸 단 하나의 방법!
그것은 ‘멍 때리기’였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계속해서 멍을 때렸다. 엄마도 슬픔도 외면한 것이다. 나는 기어이 또 현실을 외면하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야 버틸 수 있으니까···. 사실 외면도 버틸 의욕도 없었다. 그저 슬퍼하시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그리고 할머니가 나에게 한 한 마디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엄마는 너 하나만 보고 살았어.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살어.”
나도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거였는데...이제 더 이상 열심히 살기 싫은데. 엄마도 없는 지금 내가 열심히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며 반문이 들었지만 내뱉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속상해 하실까봐. 할머니 말씀처럼 열심히까지는 살지 못했고 그냥 버텼다 그냥.
그렇게 학교 생활을 꾸역 꾸역 넘기다 수능 날 시험을 쳤고 시원하게 망쳤다.
아이들은 학교에 와서 가채점한 점수를 가지고 선생님들에게 지원가능한 학교 리스트를 듣고 제3지망까지 어느 학교 어느 과에 넣어야 하는 전략들을 듣고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 대부분이 인생의 큰 갈림길을 놓고 고민하고 전략을 짜는 시기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는가의 의문만을 품은 채 제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있었다.
교실에서 교무실에서 부산을 떨며 우왕좌왕 하는 아이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덜컥 겁이 나기는 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나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무엇이 옳고 좋은 선택인지는 당연히 본인 스스로가 하는 게 맞지만 거기에 대한 교훈이나 조언을 주는 사람이 다른 아이들은 있었고 나는 없었다.
아마도 이 시기부터였던 것 같다. 내 또래 대부분의 아이들과 다른 기리을 걷기 시작한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