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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May 26. 2024

나의 급식 연대기



 투잡으로 뛰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배식 도우미 일을 하다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일단 메뉴부터가 내 어릴 적과는 비교가 안 된다. 우선 마라탕, 로제찜닭, 파스타 샐러드, 소떡소떡, 뿌링클 순살치킨이 메뉴로 올라온다. 이 중 몇 가지는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먹은 음식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 와중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 볶음밥이나 비빔밥을 못 먹어서 흰밥을 요구하는 아이들이 꽤 있다. 내 어릴 적 경험을 기반으로 바라보면 시대착오적인 나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와 메뉴를 물어볼 때면 ‘역시 이건 변하지 않았구나.’ 하며 나름 안심을 한다. 아이들이 반에서 점심을 먹고 있노라면 내 어릴 적 모습이 스쳐간다. 나의 급식생활은 군대 이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요양병원에 취업을 해서 급식을 먹고 지금은 다시 초등학교에 와서 급식을 먹는다. 어릴 때야 몰랐지만 지금은 단체급식이 집에서 먹는 보통 식사보다 잘 나오는 걸 알기에 감사함을 가지는 어른이 되었다.


 급식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나의 급식 연대기를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조금이라도 기억이 선명할 때 기록으로 남겨야지 나중에는 아예 깜깜한 화면만이 내 머릿속에 비출 것 같아서이다.


 초등학교


 초등학교 때는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리 때는 유치원과는 180도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밥을 잘 못 먹거나 종종 구토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거기에 김치를 못 먹는 친구들은 담임 선생님께 늘 꾸중을 들었다.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고 키가 큰다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도 했거니와 몸을 많이 쓰는 시기이기에 밥을 많이 먹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렇기에 배식을 할 때면 메인이거나 맛있는 반찬은 담임 선생님께서 나눠주시고 나머지 반찬을 당번인 아이들이 나눠준다.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수저를 들고 와야 했기에 반에서 서열이 있는 아이들이 깜빡하고 들고 오지 않는 날에는 보통 남자아이들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중학교


 중학교에 올라가고서는 식당이 있었기에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는 반별로 순번을 가지고 대기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서열이 위에 있는 아이들은 선생님들 몰래 새치기를 한다. 그러면 나 같은 쭈구리들은 눈치를 보며 자리를 내어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반별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식당에서 지도 및 감시를 하셨다. 그 이후로 우리는 편안히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고등학생이 되고 나면 일진들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늦게 먹는다. 일진들은 배고프다고 우르르 뛰어오기 때문에 그 순간을 피해야 한다. 만약 겹치게 되면 무한정 줄을 기다려야 한다. 또 입맛도 꽤 높아졌기에 메뉴를 보고 먹을 만한 게 없으면 매점에서 라면이나 햄버거를 점심으로 때 우는 아이들도 있다. 한동안 그런 일이 빈번해서 선생님들이 단속을 하시기도 했다.


 군대


 군대에 처음 가서는 무엇을 먹든 맛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배가 덜 고팠는지 몰라도 맛이 없는 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나 초반에는 일명 똥국이라 불리는 된장국과 콩나물국이. 질리도록 나왔다.  그러다 자대배치를 받고 식당에 들어가니 밥이 좀 맛있게 나왔다. 군대에서 처음으로 먹은 군대리아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순간 군대가 아니라 밖에서 음식을 먹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줄 정도로. 군대에서 선임들과 잘 지내기 위해 해야 하는 행동 중에 하나가 하루 세끼 메인음식을 외워뒀다가 선임이 물어보면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참 잘했다. 내 덕분에 아침을 먹을지 말지 빨리 결정할 수 있었다나 뭐라나.


 병원


 환경과 상처로 가슴에 묻어 두었던 꿈 ‘요리’를 다시 꺼내어 학원을 다니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한 요양병원에 취업했다. 그곳에서는 제일 우선순위가 환자이기에 항상 간은 싱겁거나 삼삼하게 맞춘다. 좀 더 세부적으로 나가면 일반식과 당뇨식으로 밥과 반찬을 나눠주고 더 깊게 개인적으로 가면 못 먹는 음식들을 제외하고 대체반찬을 넣어서 드린다. 간이 삼삼한 병원밥에 적응되다 보니 바깥 음식이 되게 자극적으로 다가왔던 경험이 생각난다.


 다시 초등학교로


 현재 초등학교 2024 ver.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은 항상 1개 이상 들어가고 못 먹는 음식, 안 먹는 음식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 개인맞춤으로도 해준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발전해 가는 급식상황을 보면 다행인 반면 아직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잔반처리이다. 손도 안 댄 반찬들을 잔반 통에 비울 때면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배고픔을 알기에, 음식 귀하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 혼자 사는 사람에겐 본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저렇게 버려지면 더욱더. 단체 급식이 잔반처리만 조금 개선되면 아쉬움과 어째서인지 옛날 그 정겨움은 느껴지지 않는 이 상황이 알 수 없는 감정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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