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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Oct 20. 2023

희미한 시간들에 대하여

절실했던 때의 다짐과 버팀목에 대한 소고

희미함이란 뭘까? 사전적 정의는 분명하지 못하고, 어렴풋하다는 거다. 늘 이렇게 찬 바람이 시작하는 10월이면 새벽 출근길 희미했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군가 나에게 왜 과거를 회상하는지 물었다. 자기 계발서에도 나오듯, 사람은 항상 앞만 보고 가야 하는 게 맞다. 마라토너들이 뒤를 돌아보나? 그냥 앞만 보고 골인 지점만 보고 무작정 달려간다. 그것이 곧 건강한 욕망이고 성장이라 배웠고, 자아실현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희미했던 시간이라 함은 과거에 잘 기억나지 않는 일련의 순간들이라고 누군가는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게 희미한 시간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 너무 고통스러워 내가 잊고 싶어 했던 기억이다. 마치 점점 자의적으로 내 머릿속에 희미해지는 기억들.

 지난 삶 속에서 '왜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난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라며 스스로 자책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희미했던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고자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뿐 아니라 누군가도 겪는 경험이었고, 다들 이겨내며 버티며 오늘까지 잘만 산다. 당시는 슈퍼맨이라도 된 것처럼   '난 잘 이겨냈으니 이까지 왔지'라는 원론적이고 자만 섞인 생각의 조각들이 어쩔 땐 가엽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지금 이 새벽에 오늘 하루를 더 힘차게 보낼 수 있게 내게 큰 힘을 준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더 벅차고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무수히 많을 건데, 이 생각들을 끄집어냄으로써 나만의 방어막을 조금씩 높이는 것이다. 내면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방어막을 높이는 거다. 그것이 나를 덜 상처받고, 덜 고통스럽게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성장해 간다. 타인들의 고통 비교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세상에서 제일 의미 없는 남자들의 대화가 술자리에서 '누가 더 군생활을 힘들게 했나?'다. 그 어떤 성취도 보상도 없다. 똑같은 일을 겪는다해도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얼마나 더 단단해졌냐?' 그걸 알기 위해 희미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거 딱 하나 뿐이다.


 또 다른 의미는 단어 그대로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앞이 보이지 않았던 희미한 시간이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들이 누구나 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하고, 시도를 해도 내가 고대했던 결과를 갖지 못했을 때. 더구나 그 시간이 길어진다면 나와 내 주변사람들까지 힘들게 한다.

 축구선수 국가대표 이강인을 보자. 지금은 코리안메시라고 불리며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어갈 최고 유망주다. 대한민국 최초로 파리생제르망에 들어가 음바페와 함께 뛰고 있다. 이 자체로 감격스럽고 한없이 감동적이다. 하지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리그 마요르카에서 교체선수로 벤치에 앉아 있는 날들이 많았다. 축구선수는 뛰지 않으면 직업의 본질을 잃는다. 축구선수를 하는 이유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당시 벤투감독에게도 버림받고, 본인 팀에서도 신의를 잃어 입지가 불투명해진 벤치 이강인은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에겐 그 희미한 시간들이 지금 어떻게 회상될까?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만약 중간정도의 실력과, 적당한 운으로 이강인이 벤치신세를 하지 않고 평범하게 축구선수생활을 했더라면 지금 PSG의 이강인이 나올 수 있었을까? 얼마나 그 순간 많이 고민했겠나. 더 잘할 수 있는 방법, 증명할 수 있는 법, 마인드컨트롤, 고쳐야 할 것들, 주변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자책까지.


벤치에서 좌절하는 이강인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저 맛있는 거 먹고, 놀러 가고 싶을 때 놀 수 있는 평범한 나조차도 이 희미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절대 당연하지 않다. 오늘 하루의 삶은 내가 바라고 바랬던 시간들이었다. 오늘 하루의 100%를 전부 원했던 지난날들이었다. 저 끝이 안 보이는 오렌지색의 터널에도 끝은 항상 있다.

 일어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있으면 자고 싶은 게 사람마음이다. 어찌 익숙해지지 않을 수 있겠나. 내 지금 하루를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고마운 내 20대의 희미한 시간들이다. 남들처럼 어쩌면 평범했던 날이 아닌 굴곡 있는 인생을 준 것 자체로 하늘에 너무 감사하다.


 희미했던 시간들 속에서도 물론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버팀목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처럼 나를 끝까지 믿어줬던 사람들, 그리고 내 신념. 지금이 그때보다 여유롭다고, 편하다고, 그때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조삼모사일 뿐. 그때는 있었던 것을 지금 잃은 것도 많다.

 주변에 정말 성공한 팀장님이 한분 계신다. 정확히 말하면 경제적 성공이다. 부동산을 오래 공부하셨고 운도 좋아 몇십 억대의 자산가가 되신 분이다. 원래는 어려운 가정형편이었다고 한다.

 근데 이제 이렇게 부자가 되고 나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려고 하니 못 만난단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이유를 물어보면서도 당연히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부자가 됐으니,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이제 같은 레벨의 사람을 만나고 싶으신 건가?'

 정답은 그 반대였다.  

“걔네들이 날 불편해해. 밥을 산다 해도 안 만나. 격차가 이미 많이 벌어졌거든. 자존심도 많이 상해하더라고.”

이 팀장님은 경제적 부를 가진 대신 친구를 잃었다.

그때 내가 너무 힘들어 미처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한 것들, 당연했던 것들을 이 팀장님은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내 마음가짐과 그때의 버팀목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밥이라도 먹고 산다. 하지만 가지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당연 있기 마련. 바쁜 일상 속에서도 소중했던 희미한 시간을 꺼내 철저하게 지켜나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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