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진정한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반반차를 내고 크리스마스 연휴를 몇시간이라도 더 일찍 가져본다. 특별히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하루가 전쟁인 현대인에게 잠깐의 여유도 마음의 큰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아니 일을 제쳐두고 그냥 무작정 나왔다.
문득, 천만관객을 앞두고 있는 서울의 봄 영화가 생각났다. 볼일을 급히 보고 집 앞 가장 빠른 영화 시간을 검색해본다. 마침 시간이 딱 맞다. 역사를 워낙 좋아해 개봉전부터 기대했던 영화였는데 휴가에 갑자기 떠오르는 이 생각은 마치 영하를 웃도는 이 날씨에 나에게 주는 따뜻한 선물같다. 긍정의 힘. 내년엔 더 좋은 일이생길 것만 같다.
손에 제로콜라를 들고, 포장마차에서 따뜻한 오뎅을 두개 먹은 뒤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혼자 영화관으로 올라간다. 19살때부터 혼자 콘서트도 가고, 여행도 가고, 혼자 무얼 하는 것이 익숙했기에 혼자 영화보는 건 레벨1수준. 그냥 일상이다.
이젠 치열했던 141분 영화가 끝나고 느낀 단상들.
지독한 권력의 탐욕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나 의구심에 답할 수 있는 진정한 리얼리티 논픽션 영화다. 영화를 보는 141분 러닝타임 내내 음악, 편집, 배우의 연기,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적절히 맞물리며 적절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를 보고 집에 걸어가는 15분 내내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한겨울 매서운 찬바람에 얼굴과 손이 시리면서도 영화가 주는 미친 자극에 가슴까지 같이 시리다.
44년 전의 오점이 지금의 서울의 봄을 찾게 한 작은 불씨였음을 배우들의 열연으로 당당히 증명하는 올해 최고의 웰메이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지금 이 사회가 그냥 온 것이 아니라는 무한한 감사, 깨달음과 동시에 이것이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배우들의 열연 속, 전면전까지의 대치상황은 절정에 치닫는 서스펜스를 우리에게 안긴다. 과연 전두광(황정민) 은 순간의 탐욕으로 인해 거뭐진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던가. 마지막 화장실에서 오줌 누며 웃는 황정민의 신들린 연기는 마치 조커를 연상케 한다. 탐욕 앞에 가려진 삶의 정의와 올곧은 가치들. 우리는 이것을 지켜내야한다. 하나회 일동의 순간의 위선이 국민과 나아가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지금도 깨닫지 못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 각성하고 화나게 한다.
"오늘 밤은 여기가 최전방이야"
주적 북한의 침입도 무섭지 않은 그의 탐욕이 불러온 전방부대의 서울진격결정. 당연 모두가 다 아는 결말이나 만약 행주대교를 끝까지 막았다면, 헌병관의 말을 따랐다면, 이태신(정우성) 의 부름에 장군들이 적극적으로 응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순간의 선택은 감독이 세상에 내비치고자 하는 운명의 전환점임과 동시에 값지고 희망찬 상상을 우리에게 안긴다. 이미 아는 결론에도 혹시나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영화의 긴장감 있는 전개는 한치의 안도감 허용하지 않고, 꽉 채워진 연출에 러닝타임 내내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이처럼 현실과 대립되는 역설적인 제목은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뭉갠 한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비극을 당당히 복선한다.
서울의 봄은 2024년 아직도 오지 않았다.
국민들에겐 어쩌면 조용히 지나간 12월 12일 새벽. 다음날 아침 탱크가 들어선 서울시내에 놀라움을 숨기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산 그들을 보며 언론의 역할도 다시 재조명된다. 우리는 과연 지금 언론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정보를 수용하고 공유하고 있는가. 우리 자유의지대로 권력자들과 힘 있는 정치세력 그리고 사회이슈에 대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가. 얼마 전 의대증원에 대한 찬성 의견을 썼다 명예훼손 신고를 당한 이 현실도 진정한 서울의 봄이 오기 위한 과도기라고 단정 지어야 할까. 많은 생각이 든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한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무지하고 용감한 신념에 결정된다는 게 먹먹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편협한 엘리트주의가 가져온 반민주적인 결과 속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군인의 명분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이태신(정우성), 달콤한 권력 앞에 눈이 멀어 사리사욕에 급급한 전두광(황정민)의 상반된 인물이 가져오는 근현대사회비극. 역사는 어떻게 남겨지고 해석되는가? 이 값진 역사는 시간이 지나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다시 재평가되고 기록된다. 순간의 선택 속 역사는 늘 변화하며 결과가 달라지는데 그 결과에 따라 후대가 해석하는 방향도 달라진다. 결국은 결과다.
12.12 군사사태와 같은 아픈 시행착오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더 꽃 피우는 성장통이다. 지나간 과정에서 반면교사 삼고 더 나은 결과를 우리는 만들어가야 한다. 그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가 이 세상에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결과에 집착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누군가는 값진 과정을 돌아보라고 힐난하고 결과에 연연하는 국민을 가엾어한다. 하지만 과정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 결과에만 보상이 있다. 과정이 아무리 값진 들, 불의에 저항했던 헌병관, 이태신, 특전사령관 이 모두가 있었던들 결론은 전두광이 조커처럼 웃고 있는 결말 앞에서 우리는 침묵만 지키지 않나. 이 영화는 과정은 아무리 정의로워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큰 깨달음을 선사한다.
원칙과 합당한 정의 속에서 대우받는 결과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역사는 앞으로 진보하고 발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더 합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 현명한 선택을 위한 전제조건은 개개인이 똑똑해야겠지.
세상이 정의롭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탐욕을 멀리하고 우리 군은 모두가 아군이라는 이태신의 말처럼모두가 잘 사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한 개인의 선한 가치가 타인에게 전달될 때만이 그 의미가 비로소 값진 결과물이 되고, 개개인의 책임감이 두려움이라는 원초적 감정을 넘어설 때 보다 나은 내일이 만들어진다고 여긴다.
내가 더 똑똑하고 잘 돼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책임감은 오늘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나의 원동력이다. 이 영화는 더 나은 성취와 결과를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값진 교훈을 안겨준다.
지금은 우리의 봄이 왔을까. 44년 전보다 얼마나 봄에더 가까워졌을까. 한겨울 매서운 찬바람이 제목과 오버랩되어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