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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Apr 02. 2024

가성비 좋으면 다 사야 할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가 아니다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건 뭘까? 남들이 못 가본 여행지를 가본 것? 요즘 핫한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장 먼저 가서 인증샷을 남기는 것? 아무나 사지 못하는고가의 명품을 사고, 외제차를 타는 것? 아니다. 한국인은 똑같은 조건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남들보다 ‘싸게’ 사고 누리는 것에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SNS 댓글을 보면 이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원래 얼만데 얼마에 샀어~"

"선착순으로 100명만 특가에 팔더라, 운이 좋았어"

이를 주변인들에게 가장 먼저 자랑하고 알린다. ‘개이득’이라는 말이 왜 청년들 사이 유행처럼 번졌는가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 개이득은 개인 노력대비 본인에게 큰 효용이나 가치가 주어졌을 때를 일컫는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한국인은 가성비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며 살고 있다. 오죽했으면 외국인들도 이 말을 배워 활용할 정도니.

주변에서 가성비라고 말하는 것은 대개 ‘가격대비 성능’을 일컫는다. 같은 조건의 금액을 지불하거나, 노동을 제공하고 높은 성능의 물건이나 질 높은 서비스 등 최대의 효용을 취득하는 것이 곧 ‘가성비가 좋다’는 인식이다. 사람들이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제 값의 성능과서비스를 제 값을 안 주고 제공받는 것만큼 인생에 ‘개꿀’ 이 어디 있나. 그래서 노브랜드가 현대인들에게 히트를 친 것이다. 브랜드 값을 다 빼고 오로지 ‘맛과 품질' 에만 초점을 둔 것이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당근마켓도 마찬가지다. 불신 가득한 인터넷거래가 아니라, 근거리에 그 물건을 필요로 하는 이들끼리 만나 서로에게 최대 효용을 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품 본래의 가격이다. 대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매년 인플레이션으로 가격이 상승한다. 떨어지는 법은 잘 없다. 작년에 받았던 피부마사지가 한 시간에 5만 원 했다면 올해는 똑같은 마사지가 7만 원 하고, 작년에 샀던 396만 원짜리 시계는 올해 420만 원 한다.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니 자연스레 사람들은 주식, 코인, 주택구매 등 자산을 계속 불릴 수 있는 무언가로 관심이 흐를 수밖에 없다. 가성비는 결국 이 본래의 가격대비 성능 및 아웃풋을 가려내야 하는 것이며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가 변화한다. 누군가는 40만 원짜리 소니 헤드폰이 최고의 성능대비 가격이 저렴하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성능이 최악인데 가격만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내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근데 요즘 드는 생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벽한 가성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폐업 세일로 90% 할인 중인 집 앞 종합마트에서 물건을 사면 가성비가 높을까? 일 년 내내 폐업세일 중인데도? 심지어 딱 그 정도의 가격의 제품을 팔고 있고, 우리 모두 그 제품은 오래 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싼 가격에도 큰 기대 없이 구매를 한다. 이와 관련된 경험은 수도없이 많다. 급하게 쓸 일이 있어 5천 원짜리 셔츠를 산 적이 있다. 부직포 같은 뻣뻣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어 한번 쓰고 버렸다. 서비스도 마찬가지,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가장 최저가로 샀다고 생각했을 때 귀국 할 때 수화물을 붙이니 캐리어마다 가격이 추가로 측정되어 있었다. 그 항공사는 수하물 가격을 제외한 후 가장 저렴하게 보이기 위해 소비자를 현혹한 것이다. 싼 것에는 이유가 있고, 비싼 데에는 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도 이 세상에는 가성비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싸게 제품을 샀고, 서비스를 제공받은 적은 수도 없이 많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성비라고 생각한 것들은 진짜 다 가성비일까? 태국이나, 미얀마,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에 가서 하는 마사지는 파격적인 가성비로 느낄 수 있으나 이는 현지인들에게는 결코 가성비라 할 수 없다. 그 비교는 한국 물가에 적응해 마사지가 5만 원인줄 인지하고 있다가 5천 원임을 알게 되어 상대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차이일 뿐이다. 태국, 미얀마 왕복 비행기값, 식비, 호텔값은 생각 안 하나? 가성비라고 우리가 착각하는 것들은 사실 가성비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기업이나 자영업자나 직장인이나 이익을 남겨야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인터넷을 가입하면 TV를 사은품으로 준다고 하는 광고를 보고 인터넷을 가입했다 치자. 3년 의무약정에, 비싼 요금제유지, 위약금 모두를 감당하고 우리는 그 대가로 TV를 받는 것이다. 정작 계산해 보면 손해다.

오천 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에 한우가 들어 있을 리 만무하고, 동해 바닷가에 파는 대게와 서울 대게의 가격이 같을 리 만무하다. 결국 우리는 아주 비슷한 조건에서 아주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성비라고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가성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은 다 제값을 한다.


자, 그러면 우리는 가성비가 아닌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할까?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예전에는 가성비가 제품이나 서비스에 한정된 것이었다면, 요즘 가성비는 내 적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그 이상의 아웃풋을 내는 걸 포함한다.

나는 슈프림 콜라보 한정판 신발이 정가는 100만 원인데 싸게 사려고 3일 밤낮을 뒤져 아주 운이 좋게 79만 원에 산 적이 있다. 그때는 싸게 샀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근데 나는 과연 가성비 좋은 구매를 한 걸까? 21만 원을 더 저렴하게 구매했다고 가성비 좋은 구매를 한 것이 아니다. 21만 원을 더 싸게 사기 위해 3일밤낮을 뒤진 시간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그 3일 내내 내가 인터넷서핑에 쏟은 시간은 어떻게 보상할 건가? 한정판 신발을 21만 원 싸게 산 그 시간보다 더 큰 효용을 주는 무언가를 했다면 그 구매는 가성비 좋은 구매라고 할 수 없다.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그것이 21만 원의 가치보다 높은 지를 결국은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이젠 우린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시간에 따른 가성비, '시성비'에 이제는 집중해야 한다. 더 이상 가격대비 성능이 좋다고 서비스가 좋다고 무작정 선택할 것이 아니라, 적은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큰 효용을 낼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세계적인 부자, 사업가, 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시간이다. 그래서 돈을 계속 들여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사고, 본인은 그 시간에 더 큰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없어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각자의 분야에 재능이 있는 전문가들을 모아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분업의 가장 큰 이점이다.

쇼츠가 대세인 것도 짧은 시간 안에 핵심만 요약해서 전달하는 데 사람들은 익숙하고 흥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MBTI를 예로 들어보자. MBTI를 모르면 요즘 현대인은 대화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근데 MBTI를 들어본 적도 없는 중년의 직장인이 있다고 하면 그 직장인은 인터넷으로 MBTI의 역사, MBTI 이름의 유래, MBTI가 한국에 어떻게 정착했는지 이 모두를 조사할까? 아니다. 내 MBTI가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요약집이나, 짧은 영상하나면 충분하다. 현대인은 오랜 시간을 들여 무언가에 시간투자할 흥미도 없고, 시간도 없다. 하루를 쪼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더 시간을 쓰고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가성비로 물건을 사려할 때 물건에는 권장소비자 가격이라고 가격표가 붙어있다. 권장소비자가격은 '제조사의 권장 소매가격', 말 그대로 소비자가 내야 하는 정해진 가격이다. 우리는 이를 더 싸게 사기 위해서 가성비에 집중해 왔다. 내 시간에 더 집중하는 '시성비'에 집중한다면 소비자가격처럼 정해진 건 없이 원래의가치보다 몇 배는 더 큰 아웃풋을 낼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시간을 쓰냐에 따라 내 가치를 몇 배는 더 불려서 받을 수 있다는 거다. 더 이상 가성비에 목숨 걸지 말고, 제 값 주고 사더라도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에 투자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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