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보다 인생에서 더 치명적인 것
주변에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취업, 연애, 결혼, 직장, 사업 등 인생에 중요한 일이나 이벤트를 앞두고 사주를 보는데, 이들은 사주의 결과를 맹신하며 행복과 불행 갈림길에서 서성인다. 2년간 열애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내 지인 커플은 사주를 같이 보러 갔는데 서로를 갉아먹고 부정적인 기운을 준다고 해서며칠 안가 헤어졌다. 2년 안에 회사에서 좋은 일이 생긴다는 누나는 실제로 1년 뒤 승진도 했고, 그 해 결혼도 했다. 반대로 엄마가 고3 때 내 사주를 몰래 보고 와서는 부산대학교에 간다고 했는데 전혀 딴판이었던 적도 있었다.
요즘은 전화사주도 2030들 사이에서 큰 인기다.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3~5만 원만 내면 본인이 가치를 두고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준다.
근데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사주나 점을 본 적이 없다. 10대나 20대 때 데이트 필수코스였던 재미로 하는타로마저 해본 적 없다. 그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정확히 점치든, 틀리든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처음에는 앞선 예시처럼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과 혹여나 안 좋은 결말이 나올까 봐, 내가 목표하고 원하는 일들이 무너질까 봐 막연한 두려움이 자리했던 게 사실이다. 돈을 주면서까지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다. 지금은 사주를 보지 않는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나 스스로를 믿는다는 진부하고 원론적인 말이 아니라, 인생이 물 흐르듯 어떤 방향으로든 흘러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죽으란 법 없고 오히려 더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만한 경험치가 쌓이거든. ‘호사다마’라는 사자성어처럼, 좋은 일이 있기 위해서는 시련이나 아픔은 필연적인 것이고 심지어 겨우 생긴 그 좋은 일은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상황은 늘 변화하므로 시련이 왔다 해서 그 시련에 오랫동안 잠식될 필요도, 기쁜 일이 있다 해서 그 행복에 오래 취해있지도 않아야 한다. 그저 물 흐르듯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게 벌어진 결말에 대해 대응하며 살아가면 그뿐이다. 이걸 깨달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사주를 믿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내가 몸소 경험한 이 결론에 대한 예시는 수도 없이 많다.
1) 26살 때 멕시코에서 스페인어 자격증을 정해진 기한까지 따려고 강박을 갖고 밤을 새운 적이 있다. 내 노력이든 실력이든 운이든 무언가가 부족했고 결국은 첫 도전에 고배를 마셨다. 나는 한없이 좌절했다. 이 때문에 멕시코에 반년 더 거주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두 번째 도전 때 합격했지만 그 덕분에 자격증보다 더 뜻깊은 인턴 기회를 얻었다. 내 평생 죽을 때까지 언제 멕시코 관세청에서 일해볼 경험을 쌓겠는가. 일과 소중한 사람을 만난 이 자체는 단순히 취업스펙에 국한되지 않는 평생 잊지 못할 내 값진 '경험'이다.
2) 정부에서 지원하는 미국 인턴을 가려고 군대에서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떨어져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덕분에 나는 한국에 있으면서 가기 전까지 경영학이라는 새로운 과목을 전공하며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3)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가 있었다. 3번 넘게 떨어져 좌절하다 그다음 해 또 모집공고가 떴다. 지원 마감을 30분 앞두고 '당연히 이번에도 떨어지겠지' 라며 고민하다 내 경험을 다른 직무에 녹여 1분 남기고 제출했는데 합격해 버렸다.
이처럼 인생의 한 면만 바라보면 내가 이루지 못한 목표에 대한 좌절감, 무력감이 나를 한없이 힘들게 하는데 다른 부분에서 행복과 기회는 어떻게든 온다. 안 좋았던 경험이 쌓이고 쌓여 어떤 방향으로든 좋게 흘러간 것이다. 단, 여기서 지켜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내 주변의 모든 루틴을 꾸준히 지켜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그냥 계속 빠지지 않고 그 루틴을 계속 지켜가면 된다. 대부분이 앞서 말한 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꾸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좋다길래 그냥 몇 번 해보고 나랑 맞지 않았다고 자위하면서 포기해버리거든. 힘들때는 며칠 빠져도 된다. 늦잠도 자보고, 뛰는 강도나 시간도 줄여보고. 단,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그것으로 하여금 기회는 무조건 온다. 마라톤대회를 나가든 하물며 매일 달리니 살이라도 빠지겠지.
새벽에 글을 쓰든, 책을 읽든, 혹은 퇴근 후 복싱을 하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든 그것이 무엇이 됐든 아무에게도 침범받지 않을 나만의 루틴은 꼭 지켜내야 한다. 그 루틴이 모이고 모여 좋은 기회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나만의 하루를 만들어가는 루틴 속에 운이 더해진다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기 마련이다. 운도 무언가를 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아무것도 없이 회사-집-회사-집 하는 이에게는 소름 돋을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경험에 빗댄 색다른 기회도 어쩌면 멕시코에서 자격증을 따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미국 인턴을 도전했기 때문에, 그 회사에 지원을 꾸준히 계속했기 때문에 결국은 찾아온 거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은 사실 다 옛말이다. 몸소 느낀 바로는 운은 90% 이상이고 실력이 10% 정도다. 토스를만든 이승건대표에게 누군가가 성공비결을 묻자, 운이99%라고 말했다. 이 정도로 운과 타이밍은 인생에서 중요하다. 운을 더 많이 내 인생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우리는 하루 중 꼭 해야만 하는 것 외에 나만의 것을 늘지키고 가져가야 한다.
다음은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 하고 싶은 것을 재밌게 하는 것이다. 노홍철이 늘 얘기하는 것이 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세요"
진짜 하고 싶고,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면 그냥 하면 된다. 단, 무조건 즐겁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걸 즐기면서 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한번 이상 오게 되어있다. 그 기회를 결과에만 초점을 둔다면 한없이 불행해지는 게, 그 결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뿐더러 재미 자체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대회에서 1등을 하고, 상금을 받고, 유명세를 알리는 일은 사실 길어야 일주일, 이 주일이면 쾌락이 끝난다. 나중에는 더 크고 자극적인 것만 쫓게 된다. 내가 만약 가수라면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고, 트로피를 받고, 많은 돈을버는 것보다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행복, 콘서트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팬들이 행복해하는 그 순간의 여운이 훨씬 더 오래갈 것 같다. 단, 그걸 언제 깨닫냐의 문제일 뿐이다.
줌인(Zoom In) 해서 무언가에 집중해 하루하루를 살다 줌아웃(Zoom out) 해서 내 인생을 위에서 넓게 바라본다고 하자. 결국은 아주 찰나의 그 쾌락을 위해 오랜 기간 희생한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심지어 그 찰나의 순간이 내가 기대했던 기간안에 오지 않는다면 어떡할 건가? 그땐 또 좌절이고 절망이다. 무한 악순환. 기대가 있으면 실망도 있기에 결국은 90% 이상을 차지하는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지켜진다면 사주를 믿지도,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안 좋은 일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