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구보다 더 잘 살고 싶은가
취업 사이트 중 ‘자소설닷컴’이라는 곳이 있다. 취업준비생 혹은 대학생들끼리 서로 취업정보를 공유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채용공고나 서류전형 마감기한, 지원자격 등을 서로 공유하면서 취준생들의 지원기회를 늘리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상생하는 모임이라는 취지아래 이 어플의 인기는 그야말로떡상했다. 요즘 취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학생 중 이 어플을 모르면 간첩소리 듣는다.
근데 현재는 어떻게 변했을까. 자소설닷컴에 가보면 채팅창이 있다. 처음에는 정보를 주고받던 곳이 현재는 그야말로 비교의 장이 됐다. 그 비교는 연봉이나 회사의 근무환경 및 복지를 넘어 인생 전체로까지 번진다. 익명을 무기로 삼아 서로를 공격하면서 상대적 박탈감, 열등감을 조장한다. 대기업에 취업한 일부는 우월감을 과시한다. 이 우월감은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일종의 자기 효능감에 대한 결핍으로, 취업을 해도 이 어플을 떠나지 않는다. 왜냐고? 현실에서 상사한테 까이고, 스트레스받고,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로 이곳에 들어가 우월감으로 자기 위안을 얻어야 하거든.
내가 현실에서는 시궁창이라도 적어도 돈 못 버는 너희들보단 낫다.
라는 마음가짐이다. 이 어플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아직 취업을 못한 경우가 많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본인보다 이 현대사회에서 한 단계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채팅창은 난장판이 됐다. 꼭 이 어플뿐만 아니라, 취업정보를 알려주고, 평범한 회사원의 연봉을 인터뷰하는 유튜브를 봐도 마찬가지. 댓글 보면 가관이다. 사람은 본인이 눈에 보이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 인생의 정답에 가깝다고 믿는 자기 확증적 편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것이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말을 수용하지않는다.대기업 안 가면 인생이 망한다는 둥, 공부를 그래서 어릴 적부터 시켜야 한다는 둥, 너 연봉은 얼마냐, 나는 사무직 아니고 생산직인데 얼마번다, 공부 잘 해도 다 필요 없다 등 각자의 세상에서 서로가 정답이라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 다 지기 싫어서 안달 났다. 그게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스스로의 증명이 되니까.
자, 여기서 뭘 느꼈는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기 방어에 가장 효율적인 말들을 이들은 매일 고심한다. 실제 현생을 살다 보면 이런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그 기준자체도 한참 낮은데 사람들은 인터넷상에서 서로 비교하면서 어떻게든 타인의 인생을 부정하고 묵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본인인생에 대한 정당화가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
취업만 하면 끝일까? 더 심하다.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이 경쟁은 계속된다. ‘블라인드’라는 어플이 있다. 이는직장인들을 위한 어플로, 회사 이메일로 본인이 그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 인증이 되야만이 가입할 수 있다. 즉, 그만큼 정보에 대한 신빙성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근데 문제는 여기도 익명이다. 이 전에 얘기한 ’자소설닷컴‘ 이랑 똑같다. 가입자 전체의 평균적인 연봉과 삶의 질이 아주 조금 더 상승했을 뿐이다. 취업준비생> 직장인으로. 왜냐면 자소설닷컴은 아직 일자리도 안 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블라인드‘는 최소한 일자리는 있기 때문에 고정적인 수입은 있단 얘기니까. 여기서 싸움은 또 시작된다. 너는 연봉이 얼마고,나는 얼만데, 복지포인트가 얼마 있고~. 성과급을 이번에 얼마 받고. 신혼집은 어디고, 몇 살인데 벌써 얼마를 모았고.
반대로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 대한 욕도 많은데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위로하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는 안심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곳은 그나마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다. 유명한 ’현대차 사무직’ 명언도 이 블라인드라는 앱에서 나왔다. 무한경쟁 현대사회를한 단어로 요악한 짤로 청년들에게 유행처럼 번진 짤이다.
현대차에 다니는 이 사무직 직원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한 게 감사하다며, 부모님 덕분에 매 순간 감사하며 산다고 한다. 수협은행 직원은 현대차 사무직이 좋냐고 묻는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음... 나 현차 사무직이야. 대답이 좀 됐으려나?
더 가관인건 대댓글이다. 질문자가 그 분야를 잘 모른다고 하니,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어”라고 한다. 이 말의 속 뜻을 솔직히 해석하자면 ’너는 한참 내 밑이고,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자격조차 안되니 꺼져‘ 라는 얘기다.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왜 이런 걸까. 사실 이 사람 자체에 대한 교육부족, 인성문제가 아니다. 실제 사회생활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만날 수 있다. 과한 애사심이 일으킨 자기 확증편향. 매우 흔한데 이는 결국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다.
나중에는 퇴직자 어플, 노년기 어플까지 생길 판이다. 거기서 또 비교하고 정신승리하다가 죽는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산다. 사회에서 서로 유대감을 가질 때 곧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무소유나, 욕심, 욕망이 없는 불교의 절이 산속에 있다고 하는 속설도 있다. 근데 사회에서 부대끼며 산다 해서,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눈에 보여도 그걸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굉장히 큰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분명한 건 그렇게 서로를 비교하면 진정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행복은 더 떠나버린다는 것에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인데 이게 얼마나 아깝나. 타인의 시선에 그렇게 집중하고 살아봤자 그만한 본인의 인생에 보상이 돌아오지도 않는다. 타인의 평가에 100%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안다. 남들한테 뒤쳐지면 당연히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즉, 매 순간 이 비교를 최소화하되 본인의 ‘행복’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이 행복이 아니더라도 최소 내가 할 일은 내가 찾아서 하고 있어야 한다. 정말 최소한. 근데 그 앞으로나아갈 일조차 찾지 못한 채 비교질만 하고 있으면 인생은 그야말로 퇴보한다. 이게 인생을 잘 살고, 못살고의 출발점이다. 자, 이렇게 출발을 했다 치자. 비교를 최소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의 판로에 대해 현실적인 결과를 말해주겠다.
*비교를 최소화 한 사람: 현실은 시궁창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한다.
1. 학창 시절 공부를 꼴찌해도 큰 걱정이 없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2. 명문대에 가지 못해도 된다. 여기서 더 잘해서 또 다른 기회를 찾으면 된다.
3. 중소기업에 다녀도 된다. 그 어떤 경험도 배울 것이 있다고 여기고 더 나은 곳으로 점프하면 된다.
4. 결혼을 늦게 해도 된다. 맞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여긴다. 현재에서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지 궁리한다.
5. 돈이 지금 좀 없어도 괜찮다. 시간이라는 무기가 있기에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저축하면 기회는 온다.
이 사람에게 정녕 더 나은 미래가 실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부를 꼴찌 해서 기회를 못 찾을 수도 있다. 명문대에 가지 못해 좋은 회사에 취업을 못할 수 있다. 그 기회가 영영 안 올 수 있다. 설령 그래도 상관없는 것이 그 생각을 하는 그 순간 행복했거든. 그럼 된거다.
*비교만 하고 사는 사람: 현실은 최상이라도 불행하다.
1. 이번에 시험에서 1등이 아닌 2등을 해서 좌절한다. 주변에서도 왜 그거밖에 못했냐고 혼낸다. 스스로의 자괴감 그리고 불안에 시달린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부모를 원망한다.
2. 명문대에 가도 나보다 더 가지고, 똑똑한 주변을 의식한다. 점점 그들과 만남을 줄여가며 열등감을 느끼고 내 것만 챙기다 보니 관계가 엉망이 된다.
3. 대기업에 다녀도 본인보다 연봉을 더 받는 사람을 찾아낸다. 스스로 비교를 사는 꼴. 왜 본인보다 더 연봉이 높은지 까 내릴 명문을 찾는다. 전문직이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이들의 노력을 폄하한다.
4. 결혼을 일찍 해도 더 나은 이성이 보인다. 지인들 결혼식을 가면서 훨씬 나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이 여겨진다. 섣부른 선택이었나 후회한다.
현재가 어떻든 상관없다. 딱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비교는 당사자의 현재 인생을 더 작고 형편없게 만든다. 신경을 아예 안 쓰는 것이 최선이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타인은 본인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그 어떤 관심도 없다. 비교를 버리는 이 습관이 최우선이다. 결국 SNS가 욕먹는 게 이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