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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인생이 꼬이는 과정

선택에 대하여

by 홍그리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 앞에 서 있다. 오늘 아침은 바나나를 먹을까, 요거트를 먹을까, 어떤 옷을 입을까, 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는 KTX 몇 시 차를 끊어야 할까,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들고 갈까부터 해서 친구 누구를 만날 건지, 언제 다시 집에 돌아올 건지. 하루에도 이처럼 당장 생각나는 선택만 몇십 번이 넘는다. 공식적으로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일반 성인은 보통 180번정도의 선택을 한다고 한다. 일 년이면 65,700번이다.

이 6만 번이 넘는 선택 중 하나로 인생이 변하기도, 큰돈을 벌기도, 잃기도, 인생에 큰 변곡점을 맞이하기도 한다.


자, 이 선택 중 우리는 그 선택이 올바른 결정이었는지,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최선이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결과론적 관점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 그 선택으로 하여금 파급된 결과가 본인에게 좋았다면 그건 올바른 선택이었을 것이고, 그게 아니었다면 최악의 선택이었을 거다. 그래서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예측밖에 못하기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점을 보기도 하고, 무당을 찾아가기도, 공부를 하기도, 자기 계발을 한다. 말 그대로열심히 산다. 만약 5년 전 내가 한국 주식이 아닌 미국주식, 그리고 비트코인에 전재산을 박는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더 활짝 웃고 있었겠지. 여유의 정도가 달랐겠지. 결국 ‘선택’이 본인 인생의 9할을 결정한다.


근데 또 생각해봐야 할 것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자기 계발에 매진한다 해서 좋은 선택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가령, 내가 5년 전 비트코인에 대해 공부했다고 치자. 비트코인이 언제 만들어졌고, 왜 만들어졌고, 누가 만들어서 지금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 관련자료를 찾아보고 일 년 내내 그것만 공부했다고 해보자. 근데 만약 결국엔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았다. 왜? 공부는 많이 했지만 결국, 내 의지와 신념이 비트코인을 선택하지 않았거든. 결국 본인의 가치관, 하고자 하는 의지, 삶에 대한 신념이 그 선택을 만든 것이다. 만약 지식의 양과 정도로만 양질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주식투자자, 펀드매니저, 고위공무원, 전문직 종사자들은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았을 것.

근데 본인의 신념과 가치관은 결국 본인에게만 유효하다. 남들은 중요치 않다. 다시 말해서, 본인의 목표가 본인 스케줄에 맞춰 하루, 한 달, 일 년을 성실히 사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는 거다.

내 사촌동생을 예로 들겠다. 이 친구는 공부를 잘한다. 내신 올 1등급을 받아, 공부에서 정상을 찍는 것이 본인의 신념이라고 하자. 그러면 어떻게 됐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1등을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것이다. 잠을 줄여서까지 이 모든 스케줄을 철저히 관리하고 세운다. 이런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은 본인 신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니, 나는 공부는 됐고사무직이 아닌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내 신념이라고하자. 그러면 누구나 부러워할 대기업 사무직을 때려치우고 기술을 배우러 공사판에 갈 수도 있고, 전문대에 다시 입학할 수도 있다.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많다.신념이 같은 누군가는 응원하고, 신념이 다른 누군가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유튜브에 봐도 잘 다니던 대기업 때려치우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누가 뭐라 하든 어쨌든 그게 본인 입장에선 인생을 가장 값지고, 가장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아쉬움 없는 삶은 없다. 여러 선택지 중 그 당시최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깊게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의 최선이라 여긴다.


근데 외적변수를 한번 생각해 보자. 한 인간의 의지와 신념은 외부적인 변화의 작용과 비교했을 때 한없이 일천하고 형편없다. 바로 무너져 내린다. 다시 말해서, 비교자체가 안된다는 거다. 동생이 공부 1등을 목표를 세웠는데 갑자기 나보다 잘하는 학생이 특목고에서 전학을 왔다. 그냥 공부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친구다. 그 어떤 노력으로도 따라갈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내 사촌동생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2등인 거다. 그럼 사촌동생은 욕하겠지.

아 씨X. 쟤가 여기로 전학 오는 건 내 계획에 없었는데?

당연히 없지. 본인은 신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의 목표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기술을 배우는 사람도 마찬가지. 부동산 호황기 때 인테리어 업이 수요가 많아 화장실 타일 가는 기술을 배웠다치자. 근데 부동산이 이듬해 폭락해서 매도심리가 떨어졌다. 그 누구도 집을 팔지도 않고 보러 오지도 않는다. 일이 안 들어온다. 외적변수다. 혹은 철거작업을 하는 기술을 배웠다. 경제 불황 탓에, 임대가 늘어나고,가게가 자주 바뀌는 걸 예상하고 배웠는데 철거하다 손을 크게 다쳐서 오른쪽 손을 못쓰게 됐다고 하자. 그럼 그 일을 못한다. 또 외적변수다. 삶은 그렇게 꼬여버린다. 한 개인의 의지와 목표는 외적변수에 의해 이렇게 쉽게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 인간이 자연 앞에 어떻게 덤빌 수 있는가. 이건 노력해도 안되는 거다.


그렇다면 선택을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할까. 어차피 내가 뭘 하든 외적변수 그리고 운이 무조건 따라줘야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최선은 매 순간 최소한의 성실을 발휘하되, 닥치면 그때 유연하게 대처하면 된다. 그게 인생을 가장 즐기고, 시간을 잘 활용하는 태도라는 생각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절대 집착하지 않는다.일상생활에서의 가령, 회사 이직이라던가, 면접이라던가, 승진이라던가, 주식 및 부동산 매수라던가, 자녀문제, 결혼문제, 건강이라던가, 가족, 모두 동일하다. 우리가 삶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대부분 미리 걱정하지 말고 되는대로 대처하면 그만이다. 어떻게든 된다. 미리 걱정하고 준비해 봤자 어차피 결과론적으로 변하는 건 딱히 없거든. 한 사람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현재를 끝없이 희생하면서 살았다 치자. 남들 다 추억 만들고 즐기고, 이 유한한 인생 알차게 보낼 때 거기에만 매진했다 치자. 그랬는데 결과가 본인 예상치보다 좋지 못하면? 모든 걸 거기에 걸었는데? 인생 X된거다.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주식쟁이한답시고 반도체에 올인했는데 어제처럼 엔비디아 -17% 떨어졌으면? 그 인생은 단언컨대 그냥 망한 거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5년, 10년, 시험공부하는 장수생들 봐라. 투자한것이 있기 때문에 쉽사리 포기도 못한다. 그냥 최소한의 성실만 유지한 채 되는대로 살면 된다. 단, 조건이 있다.

내 목표와 가치관이 과하게 흐려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런 사람이 결국 이미 가정 이루고, 사회에서 자리 잡고 훨씬 더 잘 산다. 매 순간 재는 사람은 대부분 이룬 거 없이 산다. 심지어 아무 시작도 못한 이들도 있다. 그 시간에 또 재야 하거든. 그 외적변수의 대처의 시작은 미완성일지라도 결국은 다 된다. 잘 풀린다. 나도 그걸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다.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는 지가 이토록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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