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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파급효과

어떻게 늙을 것인가

by 홍그리

유별나게 타국가와 차이나는 한국의 고질적인 문화라고 하면 바로 나이문화다. 한 살이라도 많으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예의를 갖춰야 하고, 존댓말을 해야 하며, 모임을 갖는다 치면 상석에 앉아야 하고, 자동차에 같이 탈 때에도 심지어 자리가 정해져 있다.

물론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자연스럽게 암묵적으로 굳어 내려온 것이다.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이니까. 뿐만 아니라, 명함을 줄 때, 악수를 할 때, 어른의 집에 방문할 때, 술을 따를 때, 경조사, 대화에서의 예의 등 서로 간 갖추어야 할 규범과 예의는 셀 수 없이 많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욕먹지 않고 지내려면 배워야만 하는 '의무'에 가까운 것이다. 단, 이 가정은 가깝고 막역한 사이는 제외한다.유일하게 이를 적용받지 않는 사회라고 하면 바로 군대다. 군대는 먼저 들어오면 장땡이거든. 오히려 그때가 인간관계에서 더 편했을지 모른다.


자, 근데 나이에 따라 지켜야 할 상호 간의 규범을 떠나스스로 느끼는 게 있다. 이는 10대, 20대, 30대 확연히 차이가 난다. 40대는 내가 아직 겪어보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며 고착화된 것들은 더 강하게 굳어질 것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갈수록 줄어든다. 즉, 20대를 거쳐 30대에 바뀌는 것들이 그대로 죽을 때까지 굳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 '30대 파급효과'란 우리 삶 전체의 생애주기로 볼 때에 개개인에게 중요한 인사이트를 남긴다. 그래서 최근에 내 뇌리에 박힌 강한 상념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글을 쓰면 곧이곧대로 본인의 편협한 시각으로 혼자 화나있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말한다. 개개인의 삶은 늘 가변성을 띠고 각자 처한 환경이나, 상황, 경제적 능력, 재정적 상황, 가족관계 등 모든 게 다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참고로 생각해 주길 당부드린다.


1) 술을 줄이고도 사람을 챙길 수 있다.


20대에는 술자리를 빠짐없이 다니는 것만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길이라고만 생각했다. 술 한잔 하며 나눴던 대화들이 결국 앞으로의 우정과 관계를 굳힐 수 있다고만 믿었다. 물론 중국처럼, 술을 마시지 않으면 비즈니스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실제로 굴지의 대기업이나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중국 해외영업직무를 뽑을 때 최소 한두 명 이상은 술상무를 뽑는다.

술을 잘 마시는 남자직원을 꼭 뽑는다는 것. 그것이 사업측면에서 볼 때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법이다.

즉, 'Precondition' 개념이다. 술을 마시는 인원이 없으면 애초에 협상자체를 하지 않는 것.

근데 우리는 한국인이다. 이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결코 술자리 하나로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이십대 때 술을 마셨던 수많은 동창들, 동기들, 친구들 지금어디서 뭘 하는지 친한 몇 명만 제외하고 아예 모른다. 원래 친했던 인원을 제외하고는 딱 인생 잘 풀린 사람들만 연락이 된다. 머리가 비상해 스타트업 창업을 해서 돈방석에 앉았거나, 메이저 대기업에 들어가 연봉 9천~1억 벌거나, 공부를 잘해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전문직이거나, 부모님 사업 물려받거나. 어차피 술자리로 가볍게 만난 관계는 가볍게 다 스쳐 지나가는 법. 절대 그 자리가 단지 재밌었다 해서 연락 오고 하지 않는다. 재밌게 분위기띄우는 사람은 그냥 ‘광대’일 뿐.

결국 술을 줄이면서 사람을 챙길 수 있는 노련함을 챙기는 나이가 된다. 내가 마음에 들면 커피 한잔을 하자고 할 수도 있고, 함께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서로 재테크 정보를 주고받거나, 사업파트너가 되거나,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관계는 얼마든지 술 없이 만들 수 있다. 알코올은 거짓평화고, 근본적인 만족을 절대 가져오지못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원래 술을 잘 못 마시거나, 몸에 잘 안 받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술이 없다면 인생이 무미건조하니, 적당히 마시는 건 상관없다. 그렇다고 20대처럼 맨날 술 마시고 다니면 30대는 몸이 안 받쳐주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주변에 관리를 안 한 사람들이 건강검진 시즌만 되면 죄다 최소 지방간이다. 결국 뭐든 적당히. 술을 절대적으로 줄이면서도 본인에게 필요한 사람은 얼마든지 챙길수 있다는 것. 앞으로 죽을 때까지 가장 중요한 것 두 개. 건강과 돈. 이 두 가지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2) 단순하게 이진법으로 삶을 바라본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자기 연민, 자격강박증 이런 거 없이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내가 집중해야 할 것과 버려야할 것. 매사에 이런 정신으로 삶을 관망하면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 설령 일이 내 마음 같지 않더라도 확실한 것은 본인에게서 스트레스가 없다. 그 스트레스받을 시간에 내 글하나 더 쓰고, 책 한 권 더 읽고, 내 사람 좀더 챙기고, 한 푼이라도 더 벌 생각을 한다. 그게 결국 남는 거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치고 매사에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 오는 사람 못 봤고, 오히려 단순하게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지금 보면 다 잘 돼있다. 일단 실행에 옮기면 뭐라도 되거든. 생각은 아무런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요즘 2030 청년들이 매일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뭔가. 흔히 '껄무새'라고도 한다.

"아, 그때 그 주식 살걸"

"아, 비트코인 작년에 살걸"

"아, 취업준비 좀 열심히 할걸"

"그때 내 집마련 할걸"


결국 뭣도 모르고 그 당시 실행에 옮긴 자만이 지금 웃을 수 있는 것. 미래에는 더 심해질 거다.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결국 생각만 하다 죽는다. 뭐 좀 갖추면 해야지, 돈 좀 모이면 결혼해야지, 애 낳아야지, 절대 본인이 원하는 그 시간 안 온다. 그리고 시기 다 놓친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출근준비나 집을 나설 때 에어팟들 귀에 꽂으며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음악 장르와 아티스트, 앨범을 들을지. 막 고민하다가 어느덧 지하철입구까지 왔다. 이럴 땐 난 그냥 안 듣는다. 그 고민한 시간도 아깝거든. 없어봐야 소중함을 알듯, 나중에 들으면 더 신나고 재밌다.


3) 취미를 줄인다.


20대에는 첫 월급 받으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돈은 언제든 벌 수 있다는 믿음아래 삶을 더 재미있게 살려고만 했다. 물론 틀린 건 아니다. 20대에 타는 포르쉐와 50대가 넘어서 타는 포르쉐는 그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유희, 삶을 대하는 방식, 주변의 시선 등모든 게 차원이 다르니까. 그때 즐겼든 안 즐겼든 이제는 주변에 필요하지 않은 것, 취미를 하나둘 줄이게 된다. 왜? 돈 아깝거든. 그 시간에 돈 더 벌어서 내 가족, 내 자녀, 보다 삶에 의미 있는 것들에 투자하고 싶어진다. 심지어 그 취미를 다 할 수 있는 시간 자체도 없다.

내가 골프가 싫은데 남들이 친다고 같이 치지 않고, 주식에 관심도 없는데 주식 소모임에 가지 않고, 내 주관대로 내 시간을 잘 굴리면서 돈과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모든 건 미니멀한 삶과 연결된다. 내가 가진 것에 더큰 애정을 쏟고, 필요하지 않은 걸 하나 둘 걷어내는 연습은 보다 내실 있는 삶을 만든다. 30대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이런 삶의 태도는 40대, 50대에 더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본다.


4) 당연한 건 없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그 어디에도 없다. 제일 친했던 친구와 한순간에 손절할 수 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한순간에 날 떠날 수 있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는 시험점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고, 직장에서 승진을 해야 하고, 사업이 잘돼야 하고, 이딴 거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게 다 정반대의 결과를 맞이하고 좌절할 수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결과들은 아무것도, 그냥 내가 단 1%도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전부 다 없어질 수 있다. 그때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노력한 인풋대비 아웃풋이 그 정도로 안 나왔다고? 당연한 거다. 그러니, 기대도 하지 말고 실망도 하지 말고 그냥 그 자체로 관심 끄면 된다. 본인만의 줏대를 갖고 그렇게 살면 그뿐이다. 그러면 그 어떤 불공평하고 불합리적인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상처가 덜하다. 왜? 애초에 기대 자체를 안 했기 때문에. 그리고 스트레스를 안 받았기 때문에 나는 손해 볼 것이 없는 거다. 단적으로 말해서 내 가족과 내가 가진 돈, 내가 가진 생각과 목표, 내 건강. 이것만 믿으면 된다. 끝이다.


자, 오늘은 2025년 1월 20일 월요일. 우리 모두는 오늘이 우리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다. 삼성 이재용 회장도, 일론머스크도, 트럼프 대통령도, 그 어떤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도 어떤 식으로든 매 순간 죽어간다. 자, 그러면 이 유한한 시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이젠 결국 내가 의미를 부여한 것들로만 내 삶이 채워진다. 그걸 알아야 한다. 이게 너무 많으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할 수 없고, 하나라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어진다. 필요 없는 건 이제 조금씩 조금씩 걷어내는 연습을 해야 할 때다.

삶의 의미를 만드는 법은 누구나 다르고,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앞서 말한 것들은 대다수의 삶에 있어 각자중요한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방법이라 여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내실을 다지는 법이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이기도 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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