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기심
주말 없이 일한다. 토요일에 일하는 건 당연지사다. 회사에 목숨을 바친다. 그 경제발전기에 함께 자산의 낙수효과를 이룬다. 아파트도 턱턱 사고, 차도 사고, 자녀 학원 보내고, 노후준비까지. 자연스레 회사에 충성할 수밖에. 적어도 같은 곳에서 월급 받는 월급쟁이들은 돈을 주고 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근본적 발판이 되는 회사 아래서 똘똘 뭉친다. 죽어도 같이 죽자. 너도나도 형제라며 술 한잔씩 돌리며 함께하는 미래를 약속한다. 공동체정신은 그야말로 밥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었다. 노동자와 회사라는 두 집단안에 있으니 각자의 책임을 물을 땐 그 책임마저 공동체였다. 그리고 한 개인은 그 책임이 본인 개인의 책임이라 동일시한다.
IMF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보자. 보여주기식 공동체의식 대표사례. 물론 금 팔아도 자기 이익이 되니까 판 거다. 그래도 언론은 같이 팔아서 나라의 빚을 갚고 위기를 극복했다는 무미건조한 사실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라며 떠들어댄다. 공동체정신이 함양되지 않았다면 절대 이룰 수 없었던 일인 양. 공동체가 곧 역사를 만들고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내 아들딸을 배불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단다.
현재는 이런 공동체가 악의적으로 왜곡돼 이용당하고 있다. 공동체의 이점만 뽑아 이익을 착취하고 그 집단에 배제된 다수에게 불이익을 준다. 의사집단만 봐도 그렇다. 의대이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저출산과 지방소멸 이 두 가지다. 의사들은 기피학과 의료수가개선이라는 명백한 해결책이 있는데 왜 의대증원하냐 난리 친다. 왜? 본인만 돈 벌어야 하거든. 경쟁자가 늘어나면 안 되거든. ‘지방에 몇억 줘도 의사들이 안 간다’고 의사가 돈에 미쳐 환장한 프레임 씌운다고? 프레임이 아니라 사실이다. 성형외과 피부과 레이저 쏴서 쉽게 돈 버는 불균형을 해결해서 시장균형을 이루는 근본적 정책이 의대증원이다. 의대증원이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치쇼다? 진정으로 거울보고 가슴에 손을 얹고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한 집단안에서 이 공동체 의식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본인과 본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현대차 노조도 마찬가지. 생산성 훨씬 좋은 아틀라스 들이자니 내 밥줄 위태로우니 파업하고 시위한다. 집단의 ‘황금 노조’라는 거대한 뒷배경이 있으니 든든하거든. 집단 안에서만 큰 소리를 친다. 심지어 그건 권리라기보단 억지에 가깝다. 그래도 그 집단이 책임을 져주니 뭐든 안 두렵다.
근데 이 집단을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더 큰 것이 하나 기다린다. 악재가 이런 악재가 없다. 갈수록 이 세상은 억지가 아니라 평등과 정의를 원하는데 세상을 맞대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꽤나 염려스럽다.
단순히 말해 지금 현 상황이 된다. 어떤 상황? 아무도 책임지기를 싫어한다. 서로 눈치 보며 중간만 하자는 스탠스. 그냥 대학교 캠퍼스부터 회사 사무실이나 공장 현장직, 전문직, 회장부터 말단사원까지, 가정주부, 학부모, 국회의원, 대한민국이 굴러가는 모든 시스템 전부. 그냥
나만 아니면 돼
마인드로 간다. 책임을 지는 게 극히 부담스럽다. 다른 사람 일에 관심을 가지고 딱히 도와주거나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다. 누가 뭘 하든 신경 안 쓰고 개입 안 한다. 왜? 괜히 나섰다가 나만 다치니까.
일례로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있다고 하면, CPR이 긴급히 필요한 상황이라 할 때 강남역 한복판에서 그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열 명 중 한 명 본다. 한 명도 있으면 다행이다. 괜히 CPR 잘못했다가 죽으면? 본인의 과실도 분명 있을 텐데 겁나서 누가 구해주겠나.
대학교 캠퍼스를 보자. 요즘 대학 수업에서 누가 수업 중 질문하는 거 봤나? 교수가 직접 지목하기 전까지 질문 안 한다. 부끄럽고 뻘쭘한 건 둘째 문제고 괜히 수업 길어지고 누군가에게 피해 줄까 봐 안 하는 게 더 크다. 팀프로젝트? 단톡방 할 얘기만 하고 각자 역할정하고 끝나면 바로 나간다. 사적인 대화? 끝나고 술 한잔? 아예 없다.
취업준비생은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한다면 협심해서 다 같이 으쌰으쌰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익을 내기 위해 회사가 존재하듯, 연간, 분기별, 매달 주어지는 목표달성을 위해 함께 뭉칠 거라고. 절대 아니. 옛날얘기다. 본인 역할만 하고 바로 빠진다. 최대한 소극적으로 인볼브하며 애초에 많은 일에 인볼브 되는 걸 꺼린다. 자, 그렇다면 무슨 큰 이슈가 터졌을 때 회사는 어떻게 할까. 예를 들어보자.
제조업에서 수출용 제품에 품질이슈가 생겨 100박스가 잘못 생산됐다. 전부 매몰비용이다. 부자재를 전부 폐기처분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회사는 폐기비용이 얼마인지 우선 조사한다. 그리고 수출하는 국가에 어떻게 소통할 것이며, 어떤 프로모션을 제공할 것이며, 다음 품질이슈가 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먼저 고민할 것이라 '누구나' 생각한다.
아니. 잘못한 놈 먼저 잡아낸다. 그리고 조져놓는다. 보란 듯이 징계를 준다.
아니 그래서 누구 잘못인데? 누가 실수했는데?
에 집중한다. 여기서 관련부서는 하나 둘 본인의 변명거리, 즉 이 구설수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바쁘다. 왜냐. 조금이라도 내 실수가 인정된다면 난 징계받을 게 뻔하니까. 실제로 회사도 어떻게든 잘못한 놈 먼저 찾아 조지고 징계하고, 그다음에 문제해결을 논한다. 사회가 그런 식이다.
이렇게 사회는 계속 굴러가고, 개개인은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해가고. 안전한 울타리 집단에서조차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한다. 그저 중간만. 조용히- 묻어가면 월급 받고 안전히 그냥 계속 다닐 수 있다. 팀장? 관리자? 포기하는 2030은 어쩌면 현명할지도 모른다. 책임만 늘어나는 자리에 월급은 쥐꼬리만큼만 오르는데 누가 감히 하려 하겠나. 돈 좀 덜 받고 그냥 스트레스 안 받는 게 최선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모두가 이렇게 그냥 '중간'만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있다. 한두 명이 아니고 대체로 모두. 서로 티를 안 내는 눈치게임만 할 뿐. 이런 개개인이 사는 장소에서 어떻게 개인에, 산업에, 나라에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 발전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현상유지가 가능할까? 진짜 능력이 있는 인재가 본인의 역량을 펴려고 하면 나댄다고 대놓고 욕하는 세상에서 그 인재는 본인의 역량을 펼칠 수 있을까? 그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시장으로 떠나겠지. 미국이나 호주나 유럽이나 중국이나. 집단의 힘에 기대어 발전해 온 과거와 달리 이제 이 사회생활은 한 개인이 너무 똑똑해져 적당히만 하고 본인 살 궁리만 펼친다. 집단의 권리를 이용한 과거의 횡포보다 더 무서운 건 이 개인의 안일함 아닐까.
지금 이렇게 오르는 코스피는 왜 거품으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떠돌아다니는 소문이 아니라 원래 제값이었던 건지. 다치기 싫어 나서지 않는 이 관행은 부메랑이 되어 개개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책임은 어느새 두려운 단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