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기적
모두가 확률을 좋아한다. 불특정다수의 관심을 끌거나 어그로를 끌거나, 예측불가능한 미래의 변수를 이야기할 때 확률을 갖다 붙이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짝사랑을 하고 있는 A가 있다고 하자. 이 A는 상대방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주말엔 뭐하는지, 본인 말투와 외모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번 데이트는 어땠는지, 카톡 답장은 어떻게 오는지 청자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청자는 그대로 일단 듣고만 있다. 왜냐? 그건 일단 다 본인 생각이고 데이트를 한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이랑 사귈 확률이 몇 퍼센트야?
라고 물으면 바로 답이 나온다.
'아, 지금 이 친구는 과한 착각을 하고 있구나‘
‘혼자 영화를 쓰고 있구나’
혹은 ‘객관적으로 이 분도 관심 있어 하는 것 같은데 너무 소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등등 여러 판단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대학입시를 예로 들어보자. 수능 백분위 97%의 성적표를 들고 가서 내가 SKY대학교에 올해 갈 수 있는 확률이 얼만큼 되냐라고 물었을 때 전체 지원자수와 뽑는 인원수를 순위별로 계산해 %로 파악할 수 있다. 컴퓨터가 바로 계산을 해준다. 취업도 서류점수, 면접점수를 합산한 총점수가 80점이라고 했을 때, 이 직무에 지원한 전체 지원자수와 그들의 성적과 뽑는 인원수 등을 다 고려하면,
'아, 이 지원자는 합격할 확률이 0%구나. 10%구나'
바로 답이 나온다. 매사에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일은 확률로 따지면 직관적이라, 희망을 품거나 포기를 하거나 조금 더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왜? 주관적인 의사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를 보는 거다. 이만한 도구는 없다고 본다.
자, 그런데 문제는 뭐냐. 모두가 이런 확률적인 얘기를 할 때 말하는 당사자는 그 확률이 일단 높길 바란다. 본인은 당연히 0%, 즉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인 걸 아는데도 타인에게 본인의 고민 이야기를 하면서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조금이나마 단 1%라도 희망이 보이고, 위로를 듣고 싶고, 응원을 듣고 싶고, 자기 객관화가 결여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본인이 확고히 하기 위해 물어보는 거다. 이에 청자는 당사자와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혹은 그것이 사회생활이라면 어쩔 수 없는 눈치와 평판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도, 과장을 할 수 있다는 것. 이럴 때에는 더더욱 숫자에 기댈 것이 아니라 숫자의 의미를 해석하려 들기보다 본인을 믿고 그냥 가면 된다. 그리고 꾸준히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만약 확률이 낮아 안 풀린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이미 벌어진 일이기에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지우고 앞만 바라보면 그만이다.
스포츠가 그렇다. 한국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여기저기서 떠돈다. 10%, 5% 등등 온갖 경우의 수를 분석해서 경기 시작도 전에 설왕설래를 펼친다. 당연히 안 되겠지? 하면서 걱정부터 앞선다. 누군가는 3회에 벌써 TV를 껐다는 사람도, 5회에 껐다는 사람도 있다. 근데 우린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 이 말마저 어떤 가슴속에 조그마한 희망하나를 품고 있으니 그 바람에서 무심코 섞여 나온 말이라는 걸. 10%든 20%든 5%든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란 걸.
확률 안에 있는 숫자는 자리를 채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결국 확률이라는 건 가능성을 내포하는 건데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딱 두 개만 존재한다. 0 아니면 100. 일어나냐, 안 일어나냐. 단 0.00000001%의 가능성만 있으면 우리는 그걸 100으로 만들 수 있다. 간절한 바람과 노력과 운과 모든 것이 한 번쯤은 겹치는 순간이 올 때 그 작은 확률은 진짜 현실이 된다. 어떻게 현실이 됐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했냐, 안 했냐
하면 안 될 수도 있지만 될 수도 있다. 근데 안 하면 0%다. 왜?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 로또를 안 샀는데 로또가 당첨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이번 기적 같은 한국 야구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좁쌀만 한 확률의 스코어를 귀신같이 만들어 냈으며, 도대체 얼마만의 노력을 한 것이며, 어떻게 끝까지 포기 안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수많은 고뇌와 되뇌는 질문에 경외심이 깃든다.
그토록 바라던 기적도 결국은 끝까지 해야 하는 거다. 끝까지. 그리고 잘 되면 된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맞다. 결과만 잘 되면 된다.
보험회사들이 종신보험을 그토록 팔아서 어떻게 이윤을 남기냐. 10년 뒤, 20년 뒤에 복리이자로 3% 원금에 더 얹어서 준다 하고, 온갖 선물공세를 하는데 시간은 결국 흐를 것이고 그 돈을 다 몇 배로 돌려줘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돈방석에 앉았냐. 왜 보험회사 신입사원 연봉이 7천만 원이고 8천만 원인가. 영업사원 한 사람당 고객만 몇백 명씩 될 텐데. 답은 하나다. 10명이 있다 치면 10년도 안돼 7~8명은 해지한다. 딱 2명 남는다. 그 두 명한테 약속은 지켜야 하니 돈 준다. 7~8명이 해약해서 이득 챙긴 돈으로. 그래도 돈이 남으니까 보험회사가 종신보험을 그렇게 계속 팔고 다니는 거다.
당장의 이익에 안주하기보다, 끝까지 했을 때엔 더 달콤한 보상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게 남들이 말하는 진짜 기적이다. 7:2라는 환상적인 스코어로 8강 진출한 한국야구를 보며 다시 한번 느낀다.
이 극적인 기적이 그 하찮은 확률에 대한 유일한 복수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