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화
이 세상 모든 잘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잘한다는 건 천부적인 재능 혹은 꾸준한 연습과 노력으로 그 변곡점까지 도달한거니까. 그리고 그 바뀐 결과를 직접 증명한 것일 테니. 재능이 없든, 노력을 안 했든, 운이든 뭐든, 그런 겸손함은 차치하고서 타인에게 잘한다는 인상을 주는 건 꽤나 고무적이고 어렵고 흔치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 결국 뭔가가 받쳐줬기 때문에 그런 결과물이 나온 것.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뒤에서 탄탄히 받치고 있는 결과물 때문에 그 후광이 그들을 더 멋있게 한다.
등산을 하면 높은 산일수록 경사가 심해 초반에 힘들다. 근데 문제는 이 강도가 정상에 이르기까지 더 세진다는거다. 대개 점점 체력은 떨어지고 목은 말라오고 온 관절이 쑤셔서,
'아 이제는 도저히 못 가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 정상에 마침내 도착한다. 근데 그 정상에서의 기쁨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마치 간절히 바라던 것을 오랫동안 바라왔다가 막상 가졌을 때의 허무함 같은 것. 오랫동안 구애해 온 이성과 막상 사귀게 됐을 때 초심을 잃어버리는 것 같달까. 본인이 현재 맡는 정상에서의 신선한 공기라던가, 정상에서 먹는 차원이 다른 맛의 컵라면이 이때까지 힘들게 땀 흘려가며 노력해 온 '당연한' 보상이라 여긴다. 정상에서 찍어 업로드한 사진은 '좋아요'가 쏟아지고, 부럽다는 주변 지인의 찬사가 쏟아진다. 그런데 머지않아 사고가 난다.
더 자극적인 자랑을 하기 위해 낭떠러지 앞에서 사진을 찍다 떨어져 죽는다던가, 정상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놀다 취해서 소란을 피운다던가, 정상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불이 옮겨붙는다던가. 방심하고 자만한 사이 무슨 사고가 난다.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니냐고?
이처럼 정상에서 본인에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의 능력에 취하는 것도 있지만 분에 넘치는 교만으로 착각에 빠져사는거다. 그렇게 그들은 소리소문 없이 떠난다.
그렇다면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뭘까. 내가 정상에 올라왔을 때 마침 뒤를 돌아보면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들도 정상을 찍는다. 본인만의 어떤 '대단한' 능력으로 그 자리에 간 것이 아니라, 대부분 노력하고 꾸준히 힘을 내면 정상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 결국 혼자만 할 수 있었던 성과가 아니라는 걸 간과한다. 겸손하고 개념 있는 사람들은 정상에 와서도 곱게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똑같은 길을 천천히 내려간다. 아름답고 천천히 내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다시 정상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 정상자리가 비좁을까 봐, 정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없을까 봐 살짝 한 발짝 물러서 지켜보다 조금 일찍 그리고 천천히 내려간다. 이들은 완전히 바닥으로 신발을 딛는 그 순간까지 천천히 롱런한다. 반대로 그 시간까지 정상에 취해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은 거기서 그냥 끝난다. 생을 마감하거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정상에 오른 노력을 그 어떤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그냥 다 잃는 거다. 그들이 올라왔던 노력 모두.
무언가를 가지면 이 전의 본인의 모습을 잃기 쉽다. 그리고 본인이 가진 걸 계속 소유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고 더 많은 걸 가지길 원한다. 정상에서 내 마음대로 막걸리도 마시고, 다른 사람 시켜서 사진도 찍고 그냥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사람을 부려먹고 함부로 대한다. 막걸리가 모자라면 밑에 내려가서 사 오라고도 한다. 왜? 본인은 지금 정상에 있으니까 눈에 뵈는 게 없거든. 그리고 편법을 쓴다. 그 정상자리가 본인 세상이니까 계속 유지하고 싶으니까 그 정권의 쾌락을. 근데 모두가 그것이 편법이라는 걸 안다. 막걸리를 심부름 가는 사람들,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들, 같은 정상에 있는 사람들, 모르는 척하면서 모두가 알고 있다. 그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욕심에 눈이 멀어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걸.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패망할 거라는 걸.
모두가 그렇게 갑자기 떠난다. 한 때 정상에서 이름 날리며 막걸리를 마시며 웃고 떠들던 이들이 갑자기 소리소문 없이 떠난다. 참고 참던 주변의 대중은 이때다 싶어 힐난을 하고, 그들은 그 사회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갑작스럽고 극단적인 도피를 한다.
꾸준했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사고 치고 떠난다. 꾸준이라도 했으니 정상까지 갔겠지. 근데 그렇게 초심을 잃는다. 돈에 눈이 멀어 가짢은 지식을 사고팔고 수강생을 모아 그 유명세로 사기 치다 나락 가고, 남의 글을 훔쳐 책도 내다가 도둑놈 소리 듣고 떠나고. 욕심이 화를 부른다. 잘되지 않아야 될 사람이 잘되는 이 사회가 문제다.
그들이 꾸준했던 건 정상에 간 그 분야에 대한 진정성일까, 아니면 정상에 대한 탐욕이었을까. 그 탐욕은 대체 얼마나 두꺼운 것이며 몇 겹인걸까.
꾸준함마저 검열해야 하는 시대. 아.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