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럴 수 있지
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나면 뇌가 맑아진다. 그때부터 이제 선택에 맞닥뜨린다. 하루 24시간 중 약 백여 가지의 사사로운 선택에 우리는 마주하는데, 당시 사사롭다고 생각한 선택이 시간이 지나 나비효과가 되어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결말로 본인에게 돌아오곤 한다. 근데 그 선택이란 건 따로 대비할 수도 없고, 미리 정해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라 매 순간 더 나은 선택을 위해 공부하고, 예측하고, 또 공부한다. 근데 각자가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이 다르고, 결정이 다른데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는 늘 정답이 정해진 선택만이 환대받고, 그 선택이 아니라면 조롱받는다. 정답이 설령 아닐지라도 성공할 수 있고 더 잘 살 수 있는데 그 선택에 대한 리스크를 과대평가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요인을 과소평가하는 느낌이다.
1. “20살에는 명문대학교에 진학해야함
2. 25살에 대학을 졸업하면, 1~2년 취업준비를 해서 대기업에 취업해야함
3. 여자는 30살, 남자는 32살 안까지 돈을 열심히 모으고 모아 결혼을 해야함
4. 결혼을 하고 나서 2년 안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병행해야함
(하나가 아니라 둘을 낳으면 더 좋다”)
이후 부모님 간호비, 자녀 양육비, 회사 승진이나 이직문제, 본인 노후대책 같은 일련의 모든 ‘숙제’를 차치하고서도 저 1단계만 봐도 낙오자들이 80%다. 일단 명문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비율이 대한민국의 10%다. 이 명문대학교를 소위 인서울대학교, 서울 내에 있는 대학교를 모두 통틀어 폭넓게 얘기해도 10%다. 근데 대학 학점을 잘 받고, 인턴을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 대기업, 전문직, 공기업 들어가기 어려운 그 회사에 취업할 수 있는 비율은? 이 10%의 사람들이 확률이 높겠지. 나머지 지방대학교 출신이 들어갔다 하더라도 러프하게 지방대학생 10명 중 2명을 잡아보자. 인서울대학교에선 좀 더 확률이 높을 테니 10명 중 4명. 즉 아무리 래인지를 넓게 잡아도 전체 취업가능인구의 20%도 안 되는 인원이 여기에 들어간다.
결혼은 또 혼자 하는가? 나와 맞는 짝이 있어야 한다. 계속 소개팅을 받고, 결혼정보회사에 가고, 본인이 생각하는 인생의 중요한 조건들을 일부 포기해서라도 이성을 만나려 해도 늘 마음에 안 드는 이성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한들,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은 배우자를 만날 수도 있고, 아이를 너무 원하는데 안 생길 수도 있다. 난임병원에 가보면 알겠지만 당장 임신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 앞서 대기업과 전문직, 공기업 등 이름 있는 회사에 입사를 하지 못한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혹여나 아이를 당장 가질 수 있어도(혹은 가져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자녀를 가지는 일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자, 많고 많은 경우의 수에 아주 일부분만 말했는데도 벌써 숨이 막힌다. 이 일련의 과정을 결국 ‘성공적’으로 거치고 나서야 육아라는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 다른 방면으로 생각해 보면 또 재테크가 있겠다. 이 오르고 오르는 코스피를 가만히 보기만 할 것인가 혹은 한국주식이 아닌 미국주식을 고수하면서 끝까지 적립식 매수로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할 것인가. 또 부동산은 돈을 알뜰히 모으고 모아 서울에 매수를 할 건지, 우선 월세나 전세로 살다가 기회를 볼 것인지, 자녀의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 모든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 자 근데, 이 와중에 갑자기 건강이라도 아프다면?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암에 걸렸다거나, 갑자기 앉아있는데 허리가 너무 아프다거나, 눈이 잘 안 보인다거나. 모든 문제는 이처럼 직면했을 때 선택해야 하고, 늘 그렇듯 그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 복잡한 이해관계에 한 발짝 물러서 요즘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그럴 수 있지
다. 내가 생각한 거랑 애초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회사를 입사하지 않고 당장 경제적으로는 힘들지언정 창업에 도전해 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한시라도 늦게 전에 도전해 볼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놀러 다니고, 혼자 사는 것에 점점 재미를 느끼는 이들이 있다. 앞으로도 결혼할 계획이 없다. 연애만 한다. 단, 이 연애라는 것도 서로에게 결혼하자고, 평생 함께하자고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만 이뤄진다. 음. 그럴 수 있지.
이 오르는 주식시장에 남이 돈을 벌든 말든 포모현상도 아예 안 오고, 그냥 예적금만 착실히 하는 사람이 있다. 경제에는 관심이 많지만 내가 직접 투자를 한 것이 아니기에 시시때때로 등락을 오가는 코인이나 주식의 차트이동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럴 수 있지.
원룸 단칸방에서 자녀 육아를 하고, 누군가는 중소기업은커녕 회사에 입사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전전한다. 하루 아르바이트를 두 탕 뛰고 나면 본인은 오늘 하루 본인 역할을 다 한 것이다. 대신, 남에게 절대 피해는 주지 않는다. 음. 그럴 수 있지.
결국, “그것이 정답일 거야”라는 암묵적이고 원론적인 한국인들의 망상에 얽매이지 않는 그들이 어쩌면 더 위너일지도. 하루를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을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방법대로 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게 색연필이 됐든, 연필이 됐든, 샤프가 됐든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다는데 남들의 시선과 평판이 알 게 뭔가. 신경도 안 쓴다. 대기업도 못 갔으면서, 돈도 많이 못 벌면서,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살면서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고? 그 당당함의 근거가 뭐냐고?
행복하거든. 결국 이 선택이라는 것도 다 본인이 행복하려고 하는 거다. 행복하려고 사는 것이고, 행복하려고 오늘도 출근하는 것이고, 나와 내 가정이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어쩌면 오늘 하루도 숨 쉬고 사는 것이다. 그 행복이라는 걸 찾는 과정은 본인이 그냥 그렇게 바라보고 인지하고 있으면 그만인 거다.
왜 계란 노른자만 고집하는가. 흰자에 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아참. 이 말에도 노른자가 더 우위에 있다는 관념이 깔린 게 아니냐고? 아니. 누군가는 노른자를 버리고 흰자만 먹는 사람도 있다. 흰자가 단백질이 더 많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