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에 대하여

월급 300만 원 받는 300충

by 홍그리

1.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매우 성실히 한다. 중학교 때에는 늘 반에서 10등 안에는 들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더 공부에 집중을 한다. 어떤 중간고사 때에는 반에서 5등을 할 때도 있고, 잠시 미끄러져 10등을 할 때도 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 그동안 남부럽진 않게 학원비가 얼마가 들든 내게 공부를 물심양면 시켜주셨던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더 공부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때까지 일탈이라고는 그냥 야자 몇 번 짼 게 다다. 그게 본인 인생에서 가장 큰 일탈이다. 그렇게 반에서 3~4등으로 학교 내 정독실에 들어가며 집중관리를 받는다. 담임선생님도 최소 스카이를 목표로 삼으라고 한다.

고3이 된다. 생각보다 SKY대학교의 현실은 높기만 하다. 내신과 정시를 동시에 챙기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지친다. 내신관리를 잘했다 생각했는데도 작년 수시모집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매일 아침 6~7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학원 뺑뺑이를 돌고 밤 12시까지 공부를 하다 잠에 든다. 그걸 일 년간 반복한다. 그렇게 이 열심히 한 학생은 수시로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 합격한다. 그리고 수능에서 최저등급을 맞추는 데 성공한다. 한번 더 하면 원하는 대학교에 갈 수 있을것 같은데 시험이란 것이 운도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기로 한다.

이 친구는 그래도 운이 좋은 거다. 공부를 같이 열심히 했던 친한 친구 중에는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 정시에 올인한 친구도 있다. 언어영역, 수리영역, 영어, 탐구영역에 1등급, 2등급이 죄다 찍혀있다. 근데도 SKY대학교는 어림도 없다. 수시비중이 훨씬 더 큰 데다, 정시에는 재수생, N수생도 포함이기 때문에 경쟁이 더 치열하다. 그렇게 그들은 현실과 타협하며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2. 대학생활을 하고, 군대를 갔다 오고 학점관리에 신경을 쓴다. 시험 전날에는 밤을 세기도 하고, 치열하게 공부한다. 이제 군대도 갔다 왔겠다, 열심히 학점과 자격증, 인턴 등을 챙겨야만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걸 본인도 안다. 그렇게 취업준비를 시작한다. 먼저 오픽 점수를 만든다. 어학연수는 돈이 많이 들기에 부모님한테 손 벌리지 않았으며 오로지 혼자서 영어를 공부했다. 시험 한 번이 84,000원이기 때문에 꽤나 부담스럽다. 잘해야 한다. 두 번 시도 끝에 최고레벨 AL을 받는다.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도 준비한다. 금턴이라는 인턴도자소서를 20개 이상 쓴다. 요즘은 인턴도 하늘에 별따기에다가, 인턴이라도 있어야 면접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아니, 자소서에 쓸 말이라도 있기 때문에 죽어라 면접준비를 한다. 그리고 50: 1의 경쟁률을 뚫고 마침 인턴에 합격해서 출근을 한다.


3. 3개월간의 인턴이 끝나고 같이 일했던 직원분들이 송별회를 해준다. “넌 어디서든 잘할 거야”라는 말을 해주신다. 왠지 좀 뭉클하다. 그렇게 이제 본격적인 취업준비가 시작된다. 자기소개서 기계가 된다. 한 시즌

(3월~7월/ 9월~12월) 당 자소서를 70개씩 쓴다. 친구들 중에는 100개 넘게 쓴 친구도 있다. 가고 싶은 회사? 가고 싶은 직무? 그런 건 있다 해도 어차피 크게 상관이 없다. 본인이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차피 알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 여자동기 중에는 이 취업준비 시기가 길어져 3년째 하다 전문직 시험으로 갈아탔다. 한 시즌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존감도 떨어지고, 어떻게든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에 조급해진다. 그 사이 영어시험은 또 만료가 되고, 다시 토익, 오픽을 치러 다닌다. 경험은 많을수록 좋기 때문에 관련된 전공 인턴도 함께 지원을 한다. 집에서 노는 것보다 어떻게든 월급 아니, 최저시급이라도 받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더 이상 부모님께 부담 끼쳐드리는 것이 미안하거든. 한 시즌이 끝나고 다 떨어져 좌절에 빠진다. 다음 시즌이 시작된다. 보통 못해도 이 취업준비기간이 아무리 준비 잘한 사람이라도 1년~2년 이상은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위안 삼는다.

다음 시즌은 80개, 90개씩 써보려고 한다. 좀 더 자기소개서에 어필할 수 있는 경쟁력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면서 몇백 번 첨삭을 한다. 그리고 돈을 주고 사설업체에 첨삭을 맡겨보기도 한다. 그렇게 5~6군데에서 서류합격 연락이 온다. 면접에 가는데 어떤 곳은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1차 면접에서 떨어지고, 어떤 곳은 최종에서 떨어진다. 이제 발표가 남은 곳은 딱 한 곳뿐이다. 이 한 곳조차 놓친다면 나는 또 똑같은 짓을 일 년 더 해야 한다.

사람이 언제 가장 힘드냐.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그 지루한 똑같은 여정을 다시 반복적으로 해야 할 때. 나는 진짜 잘하는 게 뭔지, 이때껏 열심히 공부했고 부모님에게 단 한 번도 반항 없이 살았던 지난 과거에 어떤 오점이 있었는지 자기검열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그렇게 좌절하는 중에 마지막 회사에서 합격 연락이 온다. 내가 바랬던 대기업이다. 마지막 동아줄을 겨우 그렇게 잡았다.


4. 이렇게 대기업에 기적적으로 입사를 한 A사원. 일 년이 지나고 2년 차 때 받는 월급이 300만 원이다. 세금 제하고 300만 원 정도 된다. 연봉으로 치면 세전 오천만 원 정도. 이름 있는 중견기업에서도 초봉으로는 택도 없는 금액이고 최소 3~4년은 다녀야 받을까 말까 한돈이다.

에이, 그럴 거면 차라리 왜 회사를 다니냐고? 자영업 월매출 최소 못해도 천만 원이상 나와야 이 정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4대 보험이며, 퇴직금이며, 연차며, 복지수당 이런 걸 다 따지자면 말이다. 물론 성과급과 상여금등은 예외. 그냥 평상시에 들어오는 월급이 300만 원이다. 자, 근데 문제가 뭐냐.


요즘은 이들을 300 충이라고 조롱한다. 이렇게 치열하게 평생을 살아서 남들이 바라는 회사에 그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친구가 받는 월급이 이 정돈데, 한 달에 300만 원 받아서 뭐 먹고 살건지, 답이 없다며이 미친 대한민국은 이들을 조롱한다. 그리고 본인이 돈을 얼마를 버는지(대체로 출처는 모른다) 인증하면서 남을 깎아내린다. ‘충‘이라고 말하는 건 말 그대로 벌레 같다는 것. 벌레만도 못한 인생이라며 조롱한다. 배달일을 하거나, 단순 노동을 해서 월 500씩 번다고 이 300만 원 버는 A사원을 조롱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더 이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긴 말할 것도 없다. 그냥 단 한 번도 규모 있는 회사를 안 다녀본 사람들이다.


자본주의의 잣대의 역치는 갈수록 높아진다. ‘월천’이라는 단어가 우습고, SNS에는 서울아파트에, 외제차들이 즐비하다. 누군가는 본인이 가난하다는 밈을 SNS에 올리면서 교묘하게 돈자랑을 한다. 가령,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 라면을 먹고 있다거나. 돈자랑도 누가 더 참신하게 하는지 내기하는 세상이다. 개인의 노력은 평가절하되고, 출처도 모르는 절대적인 돈의 액수와 정확하지도 않은 불투명한 정보만 날이 갈수록 과대평가된다. 그리고 또 더 자극적인 자본주의적 도파민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대중의 관심은 거기로 쏠린다. 마치 ’두바이 쫀득 쿠키‘처럼.


월 300만 원을 벌어본 사람은 안다. 실제로는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우습게 그렇게 시시덕거릴 금액이 아니란 걸. 조롱의 대상이 아니란 걸. 살면서 모든 경쟁률을뚫어낸 최소 100:1의 사람들이다. 쉽게 만들어진 건 쉽게 무너지는 법. 이건 단순한 300만 원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과 꾸준함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

그 돈으로 그들은 가정을 책임지고 더 나은 미래를 기필코 만들어간다. 이들이 얼마나 더 잘되려고, 얼마나 더 성공하려고 한 번도 대면한 적도 없는 익명의 온라인 사람들에게 이런 조롱을 받아야 하는지 난 거기서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의구심이 든다.

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