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코어찾기
1년은 365일, 그 365일 안에서도 하루에만 평균 열 번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발생한다. 크게는 자녀가 집에 가다 넘어졌다거나, 부모님이 편찮으시다고 연락이 온다거나, 갑자기 급똥이 온다거나, 하다못해 카드를 놓고 와 버스나 지하철을 못 타는 어제 내가 겪었던 일 같은 것. 대개 하루를 둘러싸고 있는 이 일들은 막 긍정적이고, 미래가 기대되는 좋은 일이라고는 단정 짓기 힘들다. 그냥 말 그대로 하나의 '이벤트'. 굳이 찾아서 내가 기록을 하지 않으면 365일 중 잊히기 십상인 큰 가치 없는 하루일 뿐.
하루를 기록할만한 일을 손에 꼽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정작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은 몇 번 안 일어난다는 거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웃프게도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이미 엎질러져버린 일들을 억지로 주워 담느라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곤 한다.
한 해를 정리하는 작년 연말만 해도 마찬가지. 연말이면 모두 한 해를 돌아본다. 거기서 대체로 커뮤니티나 SNS에서 많이 보이는 게 삼재다, 너무 힘들었다, 잘 버텼다는 단어들만 보인다. ‘강한 사람이 버티는 게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강하다’와 같이 현재의 시궁창에도 불구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위로의 문구들로 만연하다.
맞다. 좋은 일은 아주 가끔 일어난다. 왜냐. 현대인에게 좋은 일이라고 하면 사실 운이 좋게도 돈을 많이 버는 것, 직장에서 승진을 하는 것, 주식으로 혹은 재테크로 수익을 내는 것, 사업이 대박 나는 것처럼 아주 가끔 일어날법한 적은 확률을 가진 것뿐이거든. 가정이 화목한 것, 본인이 건강한 것 이런 건 본인이 잃기 전까진 그냥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외에 90%는 전부 안 좋은 일이라 보면 된다. 기분 나쁘고, 짜증 나고, 아프고, 싫증 나고, 잃어버리고, 사이가 틀어지고, 증오감이 생기고, 억울하고, 좌절하고. 일에서든,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내 건강에서든, 모든 면에서 서서히 나아지는 데에는 분명한 시행착오가 수반된다.
인생에 파고가 있다 하지만 파고가 바닥을 찍었을 때 다시 올라가는 그 기간까지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딱 하나다. '코어'에 집중해 보는 거다. 그 코어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시작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직장인이 있다. 이 직장인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승진에 몇 번씩 누락되고 있다. 혹은 남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그런 한직에 있다고 하자. 이런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본인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내가 그려온 스토리텔링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지?'
스토리텔링? 사실 다 개소리다. 그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혹은 합리화를 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 사실은. 어떤 본인만의 근사한 이야기가 있어야만 상대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으며,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는 냥 딱 사기꾼의 전형이라 보면 된다. 근데 매번 이런 흔한 고민에도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은 결국 그 시기를 이겨내고 본인이 원하는 자리, 본인이 원하는 직급에서 업무를 하게 될 날이 온다. 그리고 그때를 회상한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 준 게 뭐였냐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 무조건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
절대 아니. 나만의 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가? 다.
조직은 누군가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평가를 줬더라도 그곳은 조직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사람을 알아볼 원석 한 명 이상은 있다. 본인의 코어를 살리고, 꾸준히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그걸 알아줄 사람은 나타난다. 내가 가령 숫자를 굉장히 잘 보고, 숫자 하나로 어떤 인사이트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아무리 영업을 잘하는 누군가, 실적을 잘 내는 누군가가 있다 하더라도 절대 그 사람의 영역은 따라올 수 없다. 따라온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꼭 필요한 존재다.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코어가 있거든. 숫자로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고, 개선점을 도출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거든. 단순히 실적을 올리는 영역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코어가 있다는 거다.
직장만 이럴까. 흑백요리사가 시즌 2가 한창이다. 우리나라에서 요리 잘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누가 더 잘났냐를 두고 딱 '요리'하나로 검증한다. 근데 이 중에는 단순히 '요리'를 잘하는 요리사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중식의 대가도 있고, 양식, 일식, 아니면 미쉘린 투스타, 쓰리스타 등 요리 중에서도 본인만의 각자의 영역에서 최정상을 찍은 사람들이 나온다. 다 각자 본인만의 코어가 있는 거다.
그 코어가 있으면 어떻게 되냐. 언제, 어느 순간에도 본인은 당당하다. 어느 안 좋은 위치나, 잠시 고꾸라져 주눅 들 수 있는 환경에 봉착하더라도 가령 승진을 못했다거나, 사업이 망했다거나, 준비했던 대회에서 결과가 안 좋았다거나, 시험에 떨어졌다거나 등등. 그래도 당당하다. 본인의 그 코어가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란 게 존재한다. 본인만의 장점이 명확하거든.
누군가 내게 가장 상대에게 듣기 좋았던 말 하나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넌 어디 가서든 잘할 거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이 말을 할 수 있는 상대는 나를 진짜 잘 알고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니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오래 보지 않았더라도 나의 장점을 굉장히 크게 평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그들은 내 코어가 어떤 건지 알아챈 사람들이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무언가에 조금은 이끌려서 살아왔다. 아무리 좋아하는 게 없고 잘하는 게 없다 하더라도 그건 말도 안 된다. 유치원 때 누군가는 나가서 축구를 하는데 나는 그림 그리고 있고, 누군가는 게임을 하는데 나는 노래를 듣고 있고, 같이 하는 활동 속에서도 생각하는 게 다 다르고 나도 모르게 아주 조금씩은 끌리는 것이 있었다. 그 끌리는 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선택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직장, 집, 배우자, 취미 모두 내 취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백화점에 디스플레이된 여러 물건도 다 마케팅적인 이유가 있어서 배치가 된 것이고, 시장에 있는 굴비나, 돼지고기, 삼겹살, 반찬가게도 다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 내가 아무것도 좋아하는 게 단 하나도 없다고 단정 짓는 사람은 사실상 그 디스플레이된 물건이나 음식보다도 못한 인생을 산거다.
그 안에서 본인만의 코어를 찾아야 한다. 뭔가 대단하게 회사를 막 바꾸고, 세상에 없는 걸 내놓아라 하는 것이 아니다. 스티브잡스가 되어라가 아니고 그냥 단순히 내가 남보다 조금 더 밝다, 그리고 소통을 잘한다라고 하면 그건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뛰어난 거다. 내가 좀 더 계산이 빠르고 숫자를 세는 감각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숫자에 능한 거다. 영업이나, 숫자로 뭔가를 판단하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부서에 가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는 데 역량이 있다고 하면 전략기획이나 임원을 설득할만한 경영기획 일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것이 모이고 모여 회사 같은 조직이 설령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본인만의 코어다. 결국 이 코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직장의 어느 부서에서 일하든, 좌천이 되든, 일자리를 잃든, 사업이 망하든, 어떤 상황에 봉착한다 해도 전혀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그 코어는 대개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에서 찾는 게 당연히 빠르겠지. (좋아하니까 자주 할 것이고, 익숙할 것이고, 잘할 테니까).
환경은 매년 계속 바뀌는 가변적 요소다.
나만 내가 가진 코어를 근거로 영구적으로 중심 잘 잡으면 그만이다. 두려울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