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자기 검열
온 걱정을 달고 산다. 그 걱정은 대개 현실에서의 불만족에서 오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다. 아니면 타인으로부터 발생한 가스라이팅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는 현대인이 흔히 겪는 현상 중 하나로, 어떤 걸로 걱정을 하든 늘 어떻게든 반성을 달고 산다. 크고 작은 문제든 늘 반성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아, 당시에 이렇게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결정했다면 더 괜찮게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반성을 한다 해서 다음에 반성한 내용을 100%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이 기회를 통해 내가 더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아쉬움과 후회만 가득 남은 채. 먼저 가스라이팅과 반성에 대한 차이를 보자.
가스라이팅은 상대가 현실을 의심하게 만들어 내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닌대도 상대로 하여금 사실처럼 꾸며 상대를 까내리는 것. 흔히 직장생활에서 많이 겪는 문제다. 누군가의 뒷담을 한다던가, 아니면 상사가 업무에 대한 지적을 넘어 인신공격을 한다거나, 공적인 영역을 넘어 내 인생 전반을 침투하는 것. 이게 진짜 무서운 것이, 사실이 아닌 걸로 본인의 정신을 지배당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볼품없고가치 없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자주 생긴다는 것.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이 된다.
반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내가 내 행동에 직면하고 스스로 깨닫고, 책임지는 것이다. PPT발표를 했다고 해보자.
A: “넌 왜 맨날 이것밖에 못해? 이걸 못해서 다른 것도 할 수 있겠어?”
B: “아, 이 부분을 내가 조금 더 세심하게 표를 첨부하거나 설명을 추가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A가 가스라이팅이고 B가 반성이다. B는 그래도 현실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주체적으로 생각을 한 것이기에 내가 작아지는 이유는 없다. 그냥 그때 상황에 대한 판단이 아쉬울 뿐. 결국 명백한 차이는 가스라이팅은 나를 작게 만들고, 반성은 나를 작게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 반성이 가스라이팅에 비해 낫지만 결국 이게 많다해서 삶이 급속도로 바뀐다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다. 대다수는 반성을 하는 것이 곧 미덕이고, 상대를 위한 길이며, 그것이 심성이 착한 사람인 반증이며, 관계에서나 본인 일에서나 공부에서나 성과가 극대화할 것이라 믿는다. 근데 그건 사실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왜냐고?
현대인은 화가 많고 예민하거든. 아주 작고 사소한 문제도 큰 문제를 만들고, 냄비근성으로 달려들어 괴물이 돼 한 사람을 조져놓거든. 그러면 자연스레 피해자는 반성밖에 할 게 없어진다. 그리고 한없이 본인 및 타인에게 미안해하고 주관 없이 그렇게 사회가 ‘해야만 하는 것’에 끌려다니다 생이 끝난다. 얼마나 슬픈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 그러니까 윤리/비윤리, 합법/불법의 단계를 저울질할 수 있는 일을 제외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답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본인의 부모조차 자식에게 함부로 “꼭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즉, 무조건적인 반성보다는 그냥 내 맘대로 하고 살아도 크게 문제가 날 경우가 실제로는 많이 없다는 거다. 가까운 지인은 어릴 적 왼손잡이라고 많이 혼났는데 지금은 그게 혼날 일인가? 대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사실 그게 회초리를맞을 일인가? 상사가 시킨 프로젝트의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는데 그게 인생 망한 일인가? 회사 잘릴 일인가? 레시피를 보고 그대로 요리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별로였다면 그 자체로 내가 요리에 소질이 없는 형편없는 놈인가? 독서를 많이 하라고 하는데, 지난 일년 중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면 나는 반성해야 하나? 작년의 새해 목표를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면 나는 형편없는 일 년을 보낸 걸까? 아니다. 그 자체로 버틴 것, 무탈하게 지나온 것, 경험한 것 그 자체로 대단한 거지 뭘 별것도 아닌 거에 자꾸 본인을 반성하고, 남을 가스라이팅하고, 당하는 걸 보고 있을까 다들.
상사의 욕은 월급값에 포함
이라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혼나고, 뒤에서 욕먹고 이런 일들은 사실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근데 그걸 그 자체로 회사에서 놓고 나와야지, 집에서 소주 까먹으면서 스트레스받고, 주말에도 스트레스받으면서 걱정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본인 인생에서 손핸가? 온전한 내 시간은 다 날리는 꼴이다. 그렇게 하고 또 바뀌지 않을 현실에 좌절할 거면서.
반성은 겉으로는 좋게 포장돼 마치 미래에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 줄 거라 믿지만 이게 잦으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결국 흐르는 것 같다. 그게 내 기분이든 결과든.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조금만 다음에 더 노력하면 되겠지
노력하면 다 이루어지고 잘 풀릴 거라는 환상, 뭔가가 될 거라는 환상도 사실 다 이상적으로 자위하는 것과 같다. 오히려 아무런 반성 없이 큰 생각 않고 마음 당당히 그리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게 일도 더 잘 풀리더라. 죽도록 노력해서 안 됐으면 한 발짝 물러나 한 템포 고르는 것도 체력과 정신적 건강에 훨씬 더 이롭다.
자기 검열? 반성? 굳이 내 시간을 내서 하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