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에 대하여

1화: 나락문화

by 홍그리

끌어내리길 참 좋아한다. 아침 뉴스 1면에는 모두가 아는 유명인들의 사건사고가 하나둘 터지고, 기다렸다는듯 당사자의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는 실시간 대화창을방불케 하는 악플이 쏟아진다. 인신공격부터 시작해서다시는 재기불가능할 정도의 아니, 그러길 간절히 소망하는 단어들로 댓글은 10초, 아니 5초 단위로 새로고침된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정도.

이런 냄비근성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소위,


조심하세요, 그분들이 오고 있어요

와 같은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표적을 삼는 걸 대기하고 있는 5분 대기조를 보는듯하다. 심지어는 이 표적을 삼는 대상에 대해서도 갈라치기를 하는데, 그 집단은 남녀 성별은 기본이고 출신 대학교, 사는 곳, 같은자동차를 타는 커뮤니티일수도, 고소득 직업분류, 전문직, 맘카페, 유부녀, 골프모임 취미나 본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본인이 처한 상황과 주변환경, 사고방식, 가치관, 자산의 유무가 다른 이 모든 걸 차치하고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건 한 가지.

내가 속한 집단의 가치관과 정반대의 집단을 표적 삼고 때가 됐을 때 달려드는 것이다. 마치 비유를 하자면 야생에서 사자가 천천히 걷다가 먹잇감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갑자기 속력을 내 달려드는 것처럼. 리오넬 메시가 경기 내내 걸으면서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가 공이 본인에게 왔을 때 모든 집중력을 발휘해 골로 연결시키는 것처럼. 진짜 그런 식이다.


냄비근성을 비관적으로만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거엔 꽤 고무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례도 물론 있겠다. 6.25 전쟁이라던가, IMF경제위기 시절 금 모으기 운동이라던가, 태안 기름 유출사고라던가, 가까운 데서는 하다못해 불우이웃을 돕는다던가 모두가 힘을 합쳐 위기극복을 한 사례말이다. 근데 요즘은 이 냄비근성이 교묘하게 변질돼 절대 남 좋은 일을 하는 데 달려들지 않는다. 무슨 일이 터져 허우적대고 있는 당사자가 있으면 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서 손을 잡아끌어올려주는 게 아니라, 표적을 삼아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숨도 못 쉬게 발로 머리를 밟는다. 그리고 숨을 더 이상 쉬지 않고 재기불가능한 상태가 됐다고 판단이 들면 이 조직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면을 쓰고 의뭉스럽게 일상생활에 복귀하고 다음 표적을 잔잔하게 기다린다.

그나마 이 중에서도 사리분별을 할 줄 알고, 남의 불행이 본인에게 이득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중립기어’라는 걸 박는데, 이들은 어떤 명징한 사실여부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아무런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어떤 경위에 본인의 의사판단이 명확한 근거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들은 최소 본인이 나락 갔을 때 그 위기를 타인보다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이런 사람들이 조금은 많아졌으면 하는 그런 바람.


자, 그러면 이 집단들은 왜 이렇게 죽자고 달려드는걸까? 그 이유를 보면 보잘것없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먼저 파헤쳐야 한다. 바로 ‘남이 무너져야 내 인생이 위안이 되고, 최소한 본인의 위치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생각. 본인의 위치가 올려가려면 불가능은 아닐지라도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인내심이 허락을 안 하기에 ‘내가 올라가는 대신 남을 까내려서 내 위치를 보존하겠다’라는 알량한 가치판단이라 할 수 있겠다. 가령,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의대를 가거나 인서울 대학교에 가는 것,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 시험에 합격하거나 치열한 취업의 문을 뚫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코인이든 투자공부를 열심히 해 자산증식에 성공해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것, 노후대비를 하는 것, 마음에 들고 가치관이 맞은 정상적인 이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 이 모든 것이 평범해보일지라도 현대사회에서는 사실상 꽤나 의미 있는 노력과 시간의 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거보다 남을 까내리는 게 내 위치를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여기는 거다. 실제로 내 눈앞에 놓인 수많은 경쟁과 허들을 넘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과 노력의 양은 정비례할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 꼭 의미 있는 결과물을 가져다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끼리 피 터지는 경쟁을 하고 거기서 누군가는 나락을 가고, 힘들어지고 결국 회사나 자영업이나 돈과 돈이 연결된 ’사회생활’이라는 건 지옥이라는 결론에 수렴한다.


아니, 연예인도 이러는데 그러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겠나? 보통 내가 우러러볼 수 없는 대상은 우리는 아예 비교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손흥민이 돈이 얼마나 있고 내 자산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대통령이 보유한 부동산은 얼마짜리고 내 것에 비하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우리는 비교하지 않는다. 어차피 비교대상이 아니란 걸 본인도 알거든.

그 정도의 자기 객관화는 되어있다. 문제는 늘 나와 비슷한 내가 꼭 이기고 싶은 주변의 지인들, 친구들, 직장동료에서 온다는 거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도 이렇게 어떻게든 나락으로 가게끔 끌어내리는데 내 주위 사람들이 내가 나락 가는 순간 손을 잡고 도와줄까? 속으로는 웃으면서 더 즐기고 있을걸. 진짜로. 가족과 진정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지인 몇 명을 제외한 모두는 아마 그럴 것이다. 겉으로는 위해주는 척, 슬픈 척,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뒤에서는 관심도 없고 속으론 좋아하고 있다. 경쟁자 한 명 제쳤다는 마음으로.


나락의 대상이 연예인이든, 본인이든 그 원인은 물론 있을 것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수도 있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쳤을 수도, 본인이 속한 회사나 집단에 손해를 일으켰을 수도, 실수가 됐든 고의가 됐든 옳지 못한 의사결정을 했을 확률이 높다. 물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에 그 정도에 따라 죄는 달게 받아야지.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건 선택의 영역이 아니거든.특히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의 경우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 죄는 2배, 3배가 된다. 아이나 청소년들도 그 행동을 따라 배울 수 있으니. 절대 그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가치판단이 우선시 되고 그 자기 객관화가 이뤄졌을 때 그리고 사회가 정한 그 벌이 합당하다고 순응할 때 비로소 끝나는 거다. 그 이후에 우리는 대중으로써 번뇌하는 다수가 되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대중이 침묵하거나 비관적이라면 본인이 더 이상 못 나오는거고 어느 정도 용서가 된다면 용기를 낸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거고. 우리도 다 그런 나락의 순간이 크게 작게 인생에서 어떻게든 생길 것이지 않나.


자, 이 냄비근성을 내가 바꿀 수 없다면 언젠가 닥칠 우리의 나락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미리 대비하고 대처해야 하는가. 물론 안 일어나는 게 베스트겠지. 본인이나락갔다고 가정해보자.


먼저 주변의 조언에 집착하지 않는다. 조언을 구하는 당사자는 상대에게 위로와 동정을 바란다. 그리고 밝은 미래를 암시해 주길 바란다. 그게 질문과 동시에 깔려있다. 당장 본인의 기분을 맞추는 데에는 그게 약이 될 수 있으나, 사실상 본인 인생에 큰 도움이 안 될뿐더러 상대도 내 기분에 맞춰 말해주기 때문에 그것이 진심 어린 조언이 아닐 확률이 높다. 본인 살기도 바쁘다.

또 반대로 나락에 갔을 때 누군가 나를 지금 어디선가 또 손가락질하고 있지 않을까, 욕하고 있지 않을까에 몰두한 나머지 내 인생에 집중할 수가 없다. 그냥 눈과 귀를 닫고 살면 된다. 그리고 내가 현재 가진 것, 그리고 그 가진 걸 토대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사기를 당해 전재산이 10만 원이 남았다면, 그 10만 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생각하고 어떻게든 그 10만 원을 지키면 된다. 그리고 건강하면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에 몸이 건강하다는 건 마음이 건강하다는 것이고, 다시 시작하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하나의 팁이 있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라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길이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다는 것. 오히려 이 일을 일찍 겪어 다행이라는 마인드로 더 이상 내려갈래야 갈 수가 없으니 앞으로는 오를 일 밖에 없겠다, 좋은 일 밖에 없겠다는 마인드로 무장하면 된다. 그러면 어떻게든 시간은 지나가고, 실제로 더 올라갈 것이며, 나는 다시 원래의 상태에 서 있을 테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어디 숨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기회를 준 새로운 사람들로 내 인생이 가득 찰 것이다.


생각하는 정도와 깊이가 다를 뿐 모두에게 언젠가 이 나락은 오기 마련이다. 내가 쏜 화살이, 내가 표적을 삼은 것이 내게 똑같이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나. 이 세상에 관용과 포용이 어떤 상황에서든 현재보다는 좀 더 필요한 시점이다.

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