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조급증
1억을 가진 사람은 2억을 부러워한다. 2억을 가진 사람은 3억, 4억, 5억을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모을지를 고심한다. 원룸에 사는 사람은 작지만 본인만의 공간이 있는 작은 아파트 사는 게 꿈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내 아이와 함께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는 구축이라도 대단지 아파트에 가는 게 소원이다. 근데 그 대단지 아파트 사람들은 신축 브랜드 대단지아파트를 또 원하고 강남 3구 아파트를 원하고 이 욕망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특히나, 욕망은 상대적이라 금전적인 부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역치는 명확한 숫자로 모두의 동의를 이끌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욕망자체가 꼭 나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당연한 거겠지.
물론, 그 욕망의 원천은 삶의 불편함도 한몫한다. 예를 들어보자. 원룸에 2년간 살았던 적이 있다. 4-5평 남짓한 공간에 하루 종일 있으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답답함이 자리한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하루 종일 밖에 있다 밤에 잠만 자고 다시 나가곤 했다. 집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편하다는 인식보다는 갑갑함이 먼저였으니까. 그러면 당연히 더 넓고 좋은 집을 가길 원하고,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더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당연지사. 주거 부분뿐 아니라 매사가 마찬가지다. 결국엔 내가 현실과 타협할 수 있냐, 없느냐의 문제다.
1) 고3 수험생: 명문대 가고 싶어.
2) 직장인: 직주근접 강남/서초 살고 싶어, 재테크 잘하고싶어.
3) 부모님: 내 자녀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어.
4) 솔로남녀: 돈 많고, 이쁘고, 잘생기고, 성격 좋은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어.
5) 자영업자: 사업 대박 나서, 2호점, 3호점 차리고 싶어.
모두 마찬가지다. 근데 성적이 안 나와 누구나 아는 서울 명문대학교에 가고 싶다가도 수능을 치고 나서는 지방대 혹은 집앞 대학교로 현실과 타협한다. 직장인은 돈이 부족하니 대중교통을 한 시간 타야 하지만 서울보단 저렴한 집을 매수한다. 부모님은 본인의 자녀가 공부는 못해도 건강하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자기 위안 삼는다. 그래도 성실하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하며 아쉬워한다. 결혼시장에서 솔로들은 지금 내 여자친구/남자친구가 최고는 아닐지라도 최선이라고 자위하며 연애와 결혼은 '타이밍'이 전부라고 합리화한다. 자영업자는 이 불경기에 1호점이라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을 한 일상에서 흔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자, 그런데. 그 현실과 타협은 유효기간이 짧다. 본인 각자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 어떤 만족감도 주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조급하다. 무조건 뭐든 빨리. 급해진다. 그렇게 스스로의 위치를 늘 검증받으려 한다.
저 정도(연봉, 얼굴, 자산, 키, 몸매, 직업, 건강)이면 지금 괜찮은가요?
확인을 받아도 받아도 갈증을 느끼고 사회가 만든 구조적인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든 빨리 올라가려 발버둥친다. 이 불확실한 현재를 빨리 벗어나려 한다. 그게 회사에서의 승진이 됐든, 자산격차가 됐든, 뭐가 됐든 간에 빨리 올라가려면 경쟁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 경쟁에서는 (본의 아니게)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발생하고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 그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냥 그 피 터지는 경쟁에서 잠시 밀려났을 뿐. 그렇게 죽자 살자 달려드는 이들은 많아지고, 사회는 더 삭막해진다.
어쩌면 한국인이 아파트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게 아닐까. 구조적으로 1층/2층/3층 모두가 획일화되어 있는 하나의 공간 안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안전한 커뮤니티를 누릴 수 있는 그런 안정장치가 있기 때문에 모두가 여기에 열광한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최소한의 마진이 생기는 꼴이니까.
이렇게 삶이 조급해지니, 그 경쟁 사이에서 개개인의 행복은 찾기 어려워진다. 영화나 책에서 꽤나 자주 삼는 핵심가치인 '공허', '행복', 이런 단어들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영화가 현실을 기반한 것이라 하지만, 현실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영화의 러닝타임 2시간만이라도 행복하자는거다.
다른 국가나 또 다른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존재한들 비교해도 끝이 없다. 우리는 한국인이고 여기서 계속 살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개개인이 바뀌어야 조직이 바뀌고 나라가 바뀐다.
각자가 잘하는 게 다르고, 가진 가치관이 다른데 이상적으로 잘 살아왔다는 어떤 기준으로 하나의 목표로만달려가는 것이 어떻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거기에 조급함이 더해진다면?
나 빼고 다 적이야
라는 생각밖에 안 들지 않을까. 그렇게 관계 간 문제가 생기고 그 다툼이 험담이 되고, 혐오가 되고, 혐오가 범죄가 된다.
어느 나라나 상류층의 삶은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또 호화롭다. 하류층의 삶은 피폐하고, 불편하고, 무시당하고, 위험하다.
'무조건 이렇게 되어야겠다!'라는 적극적 태도는 양면적인 것이 만약 그 목표가 되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이나 공포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좌절감과 괴로움은 나쁜 게 아니라, 현재를 바꾸고자 하는 것이기에 어쩌면 필연적이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는 징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고, 실패가 있고,능력부족을 본인이 인정하고 그렇게 천천히 원하는 방향을 일궈가는 게 현대사회의 참을성, 인내와는 기준이 다른 영역이라 본다.
자산이 0원인데 강남아파트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우리는 매일 살고 있다. 그래서 내년엔 좀 천천히 가보려 한다. 이러한 생각엔 강한 믿음이 하나 깔려있다.
어차피 잘 될 거니까.
이러면 더 잘 된다. 진짜다.
올해 마지막 날입니다. 구독자 분들이 있어 올해도 꾸준히 쓸 수 있었습니다. 새해엔 모두 더 잘 되시길.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