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아주 분명하다.
정대건 작가의 『급류』를 읽고 난 뒤였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야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이야기 속에서 오래전에 묻어두었던 나 자신의 기억이 불쑥 고개를 들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어떤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밤, 두서없이 첫 장을 적었다. 구성도 없었고, 끝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문장을 옮겼고, 그렇게 적힌 글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급류』를 읽은 사람이라면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 안에 어딘가 닮은 결이 있다는 것을. 숨기고 싶지도,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글은 분명 그 책에서 시작되었고, 그 덕분에 꺼내지 못했던 기억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여섯 편에서 많아야 여덟 편 정도의 짧은 에피소드로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멈출 수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열 편이라는 숫자 앞에 서 있었다. 마지막 두 편의 업로드가 늦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를 한참 고민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처음 써본 긴 이야기다. 그래서 모든 독자에게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쩌면 서툴고, 어쩌면 감정에 치우쳐 있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솔직해서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끝까지 남기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글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닿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사랑을 겪고, 이별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남겨둔 기억이 있다. 끝났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는 얼굴,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완전히 잊히지도 않는 시간. 이 이야기가 그런 기억을 조용히 건드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사랑이 옳았다고 말하고 싶지도, 틀렸다고 정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한때 분명히 흘러갔던 감정의 물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 물길을 건너온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 사실을 나 역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처음 이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을 때는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글을 끝까지 써 내려온 이유도, 이쯤에서 멈추게 된 이유도. 이 이야기가 완성되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덧붙이지 않아도 괜찮아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독자 각자의 기억 속에도 비슷한 얼굴 하나쯤 떠오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글을 읽어준 모든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그리고 혹시 이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면, 그 기억 역시 언젠가는 조용히 제자리를 찾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