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여배우
틸리 노우드가 등장하다
2025년, 미디어 산업은 새로운 행위자의 등장으로 큰 파장을 맞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AI 여배우 ‘틸리 노우드(Tilly Norwood)’다. 노우드는 네덜란드 출신의 배우 겸 프로듀서인 엘라인 반 더 벨덴(Eline Van der Velden)이 설립한 프로덕션 회사 파티클6(Particle6 Group) 산하의 AI 부서, 시코이아(Xicoia)에 의해 탄생했다. 시코이아는 스스로를 ‘AI 탤런트 스튜디오’로 칭하며, 영화, TV, 팟캐스트, 소셜 미디어, 비디오 게임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할 디지털 스타, 즉 ‘합성된 문화 아이콘(synthetic cultural icons)’을 창조하고 관리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틸리 노우드가 단순한 일회성 기술 실험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의미한다. 시코이아는 틸리 노우드를 시작으로 총 40여 명의 AI 캐릭터를 선보일 계획을 밝히며, AI를 영화 후반 작업의 보조 도구로 사용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 기획 단계부터 인간 배우를 대체할 수 있는 ‘탤런트’로 공급하려는 전략적 전환을 분명히 했다.
틸리 노우드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업계에 알려진 것은 2025년 9월, 취리히 영화제 기간에 열린 취리히 서밋(Zurich Summit)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창작자 반 더 벨덴은 틸리 노우드를 소개하며 할리우드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킬 발언을 했다. 바로 틸리 노우드가 이미 여러 대형 탤런트 에이전시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으며, 곧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발표였다. 이 발표는 틸리 노우드를 기술적 호기심의 대상에서 인간 배우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실질적인 상업적 경쟁자로 격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AI가 영화 제작의 보조 수단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배우와 에이전트라는 전통적인 산업 구조의 핵심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틸리 노우드는 단순한 디지털 창작물을 넘어, 할리우드의 미래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AI 여배우 틸리 노우드의
주요 활동 사례들
틸리 노우드의 유일한 공식 출연작은 AI 코미디 단편 스케치 ‘AI 커미셔너(AI Commissioner)’다. 이 작품은 10개의 각기 다른 AI 소프트웨어 도구와 ChatGPT가 작성한 대본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틸리 노우드를 포함해 총 16명의 AI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제작 과정 전체가 AI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기술적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제작사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개입 없이도 콘텐츠 제작이 가능함을 증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기술적 성취와 별개로 예술적 평가는 참담했다. 다수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지독하게 재미없고(relentlessly unfunny)”, “엉성하게 쓰였으며,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전달되는 대사”로 가득 차 있다고 혹평했다. 이는 현재의 생성 AI 기술이 인간의 창의성, 특히 유머, 타이밍, 미묘한 감정 표현과 같은 고차원적인 영역에서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AI 커미셔너’의 실패는 픽셀을 렌더링하는 기술적 능력과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서사를 구현하는 예술적 능력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존재함을 명확히 드러냈다.
AI 여배우가 가져올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
할리우드 스튜디오 입장에서 AI 배우는 거부하기 힘든 경제적 유인을 제공한다. AI 배우는 연봉 협상, 스케줄 충돌, 사생활 논란과 같은 인간 배우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들로부터 자유롭다. 또한 나이가 들지 않아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으며, 감독이나 제작자의 요구에 100% 순응하는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존재다. 특히 제작비 절감 효과는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파티클6 측은 틸리 노우드와 같은 AI 배우를 활용할 경우, 제작비를 최대 90%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수치가 다소 과장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배우 출연료, 촬영 관련 제반 비용 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영화 산업에서 매우 강력한 동기로 작용한다. 이러한 경제적 이점 때문에 스튜디오들은 윤리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AI 배우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 AI 기술이 거대 스튜디오의 자본 없이도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창작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인 창작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고품질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되어, 더욱 다양하고 실험적인 이야기가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다.
AI 배우 시대
디자이너의 생성 AI 활용 역량
틸리 노우드와 같은 합성 미디어의 등장은 디자이너를 포함한 크리에이터들의 역할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과거 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생성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지휘하고, 그 결과물을 선별하며, 예술적 비전에 맞게 다듬는 ‘AI 아트 디렉터’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틸리 노우드의 탄생 과정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그의 외모는 단순히 기술적 명령어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특정 배우들의 이미지를 조합하고, 특정한 스타일과 페르소나를 부여하는 등 정교한 예술적 기획과 디렉팅의 결과물이다. 디자이너의 가치는 이제 ‘무엇을 만드는가’에서 ‘무엇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어떻게 완성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핵심 역량 1: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라는 새로운 핵심 역량이 있다. 이는 단순히 원하는 결과물을 텍스트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AI 모델의 특성을 이해하고, 명확하고 창의적인 언어를 통해 원하는 예술적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기술이다. 창작자 반 더 벨덴이 자신의 작업을 ‘장인정신’에 비유했듯, 정교한 프롬프트는 AI 시대의 새로운 디지털 장인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능력이 아니라, 예술사, 영화 언어, 문화적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AI와 소통하는 새로운 형태의 창의적 글쓰기이자 아트 디렉팅이다. 디자이너가 가진 방대한 시각적 레퍼런스와 지식이 AI를 통해 탁월한 결과물로 변환되는 통로가 바로 프롬프트인 것이다.
핵심 역량 2: 생성 모델의 이해와 활용
성공적인 AI 아트 디렉터가 되기 위해서는 프롬프트 작성 능력을 넘어, 다양한 생성 모델의 원리와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GAN, 디퓨전 모델 등 각기 다른 이미지 및 영상 생성 모델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프로젝트의 목적에 맞게 최적의 도구를 선택하거나 여러 도구를 조합하여 사용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AI 커미셔너’가 10개의 다른 AI 도구를 사용해 제작된 것처럼, 미래의 창작 과정은 단일 툴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AI 시스템을 조화롭게 지휘하는 복합적인 워크플로우를 요구할 것이다. 이는 디자이너가 특정 소프트웨어 전문가에서 벗어나, 여러 기술을 엮어 창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 통합자’이자 ‘합성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핵심 역량 3: 창작자의 윤리적 책임과 비판적 사고
마지막으로, 기술적 역량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윤리적 책임과 비판적 사고 능력이다. 틸리 노우드 논쟁의 핵심이 ‘허락 없는 데이터 사용’과 ‘인간 노동의 가치 훼손’에 있었던 것처럼, AI 시대의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업이 가져올 사회적, 윤리적 파장에 대해 민감하게 인식해야 한다. 학습 데이터의 편향성, 초상권 및 저작권 문제,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미래의 디자이너는 단순히 뛰어난 결과물을 만드는 기술자를 넘어, 윤리적인 AI 활용을 선도하는 중요한 사회적 책임을 지닌 전문가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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