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바이스 시대, 제품 UX 디자인이 중요해지다

by 유훈식 교수


1. AI 디바이스의 시대가 열리다

인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컴퓨팅 장치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메인프레임에서 퍼스널 컴퓨터로, 그리고 다시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단순히 기기의 크기가 작아진 것을 넘어 인간이 기술을 소비하고 활용하는 문법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우리는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파괴적인 변화인 AI 디바이스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2025년을 기점으로 인공지능은 단순히 화면 속에서 대화하는 소프트웨어의 단계를 넘어, 물리적 실체를 가진 하드웨어와 결합하여 사용자의 의도를 실시간으로 수행하는 에이전틱 AI(Agentic AI)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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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와 엣지 컴퓨팅의 비약적인 발전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의 인공지능이 거대한 클라우드 서버의 연산 능력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초소형 언어 모델(SLM)과 최적화된 하드웨어를 통해 기기 자체에서 즉각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가트너의 예측에 따르면 2025년까지 기업 데이터의 약 75%가 전통적인 데이터 센터가 아닌 엣지 환경에서 생성되고 처리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AI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에 스며드는 앰비언트 컴퓨팅 환경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애플 인텔리전스와 같은 시스템이 보여주듯이, 데이터가 원격 서버로 전송되지 않고 기기 내부에서 처리됨에 따라 개인 정보 보호와 반응 속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2. AI 디바이스를 준비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들

AI 디바이스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테크 거인들과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은 각기 다른 철학과 형태를 가진 차세대 하드웨어를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존 스마트폰의 앱 중심 생태계를 탈피하여 AI가 인터페이스의 전면에 나서는 경험을 설계하고 있다.


오픈AI의 하드웨어 비전과 조니 아이브의 협력

오픈AI는 전설적인 디자인 거장 조니 아이브(Jony Ive)와 협력하여 코드명 '검드롭(Gumdrop)'이라는 AI 기반 하드웨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약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스마트폰의 중독적인 특성을 해결하고 보다 차분한 기술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검드롭은 펜 형태의 디바이스로 알려져 있으며, 내장된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의 필기 내용을 실시간으로 챗GPT에 전송하거나 양방향 음성 통신을 지원하는 기능을 갖출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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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기는 스마트폰을 대체하기보다는 노트북과 스마트폰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제3의 핵심(Third-core)' 디바이스를 지향한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이 하드웨어가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유쾌한"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가 고민 없이 집어 들고 사용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조 측면에서도 오픈AI는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초기 파트너였던 중국의 럭스쉐어와 결별하고 폭스콘의 베트남 공장이나 심지어 미국 내 생산 시설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하드웨어 제조 공정에서도 데이터 보안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메타 AI 글라스와 멀티모달 인터랙션

메타는 레이밴(Ray-Ban)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웨어러블 AI 기기 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레이밴 메타 스마트 글라스는 멀티모달 AI를 탑재하여 사용자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인공지능이 함께 인지하도록 설계되었다. 안경테에 장착된 고해상도 카메라와 5개의 마이크 어레이는 사용자의 시각적 맥락을 파악하고, "헤이 메타"라는 호출어 하나로 실시간 번역, 사물 인식, 정보 검색 등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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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는 특히 안경이라는 익숙한 폼팩터를 유지하면서도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집중했다. 4시간 지속되는 배터리와 충전 케이스를 통한 추가 전력 공급, 그리고 전력 효율적인 온디바이스 처리를 통해 무게와 착용감을 일반 안경 수준으로 맞추었다. 또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환경 설명 기능을 제공하는 등 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장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는 AI가 인간의 시각을 증강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로 안경이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차세대 AI 펜던트와 폼팩터 혁신

삼성디스플레이는 CES 2026에서 스마트폰을 대체할 가능성을 지닌 'AI OLED 펜던트'와 'AI OLED 봇' 등 다양한 개념적 제품을 공개하며 하드웨어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1.4인치 원형 OLED를 탑재한 목걸이 형태의 AI 펜던트는 극강의 휴대성과 음성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결합한 제품이다. 삼성은 LCD보다 얇고 가벼운 OLED의 특성을 극대화하여 초소형 기기 내부에서도 배터리 공간을 확보하는 기술적 우위를 입증했다.

또한 삼성은 13.4인치 원형 OLED를 얼굴로 사용하는 'AI OLED 봇'을 통해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돕는 보조 교사 로봇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와 함께 기존 폴더블 패널의 고질적 문제였던 주름(Crease)을 20% 이상 개선한 차세대 패널을 공개하며, AI 시대의 시각적 몰입감을 높이는 디스플레이 기술력을 과시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AI가 탑재될 그릇이 더 이상 사각형의 스마트폰에 국한되지 않고, 가구, 액세서리, 로봇 등 일상의 모든 사물로 확산될 것임을 예고한다.


퍼플렉시티와 실시간 지식 검색의 결합

실시간 검색 엔진의 강자인 퍼플렉시티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래빗(Rabbit)과의 협력을 통해 자사의 AI 모델을 물리적 기기에 이식했다. 래빗 R1 사용자는 퍼플렉시티의 고급 AI 모델을 통해 지식의 컷오프 없이 인터넷상의 최신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다. 퍼플렉시티는 구글이나 빙과 같은 전통적인 검색 엔진의 대안으로 부상하며, 질문에 대한 답변뿐만 아니라 정보의 출처까지 투명하게 제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검색 기술과 래빗 R1의 하드웨어가 결합하면서 사용자는 별도의 앱을 실행하지 않고도 음성만으로 세상의 지식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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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마트폰 시대를 넘어 다시 다변화된 제품 시대가 오다

지난 10여 년간의 스마트폰 시대는 제품 디자인에 있어서 '수렴과 획일화'의 시기였다. 거의 모든 상호작용이 직사각형의 터치스크린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하드웨어의 개성은 사라지고 베젤을 줄이는 기술적 경쟁만이 남았다. 그러나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대가 되면서, 스크린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하드웨어의 형태는 다시금 '발산과 다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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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디바이스 시대의 제품들은 더 이상 사용자의 시선을 스크린에 묶어두려 하지 않는다. 조니 아이와 오픈AI가 추구하는 '차분한 기술'이나 래빗 R1이 지향하는 '존재의 현존성(Presence)'은 기술이 인간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고 배경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기기의 형태는 목걸이(Pendant), 안경(Glasses), 펜(Pen), 핀(Pin), 반지(Ring) 등 인간의 신체 활동을 제약하지 않는 웨어러블 형태로 빠르게 분화되고 있다.


이러한 다변화는 단순히 외형의 변화를 넘어 인터랙션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동반한다. 스마트폰이 앱 아이콘을 찾아 누르는 '탐색 기반'의 기기였다면, 새로운 AI 기기들은 사용자의 음성, 시선, 제스처를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의도 기반'의 기기다. 래빗 R1의 푸시 투 토크(Push-to-Talk) 버튼이나 아날로그 스크롤 휠은 디지털의 복잡함을 물리적인 직관성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이며, 이는 사용자에게 더 높은 통제감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결국 제품 디자인의 주안점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화면에 보여줄 것인가'에서 '어떻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각과 AI를 연결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2026년 이후의 제품 생태계는 마치 생물학적 진화의 폭발기처럼 각기 다른 환경과 맥락에 최적화된 수많은 형태의 AI 동반자들이 공존하는 풍경이 될 것이다.


4. 제품에서 중요한 UX

AI 디바이스가 물리적 실체를 얻으면서 사용자 경험(UX)의 영역은 스크린 디자인을 넘어 시스템 디자인과 인지 설계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정적인 인터페이스를 넘어 사용자에게 최적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 UX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적응형 UI (Adaptive UI)

적응형 UI는 사용자의 숙련도, 현재 위치, 작업의 맥락 등에 따라 인터페이스의 구성 요소와 기능을 실시간으로 재구조화하는 기술이다. 과거의 적응형 디자인이 단순히 화면 크기에 맞춰 레이아웃을 조정하는 수준이었다면, AI 시대의 적응형 UI는 사용자의 의도를 분석해 지금 가장 필요한 버튼을 노출하거나 복잡한 고급 기능을 숨기는 등의 지능적인 판단을 수행한다.

41598_2025_28937_Fig2_HTML.png Overview of the proposed adaptive UI system

예를 들어 주식 투자자가 시장 변동성이 큰 시간에 앱을 열면 시스템은 즉시 거래 버튼과 관련 지표를 전면에 배치하고, 평소에는 자산 현황과 뉴스 요약을 보여준다. 의료용 플랫폼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언급하는 즉시 관련 병력 기록을 우선순위로 정렬하여 보여줌으로써 인지 부하를 줄여준다. 이러한 개인화된 경험은 사용자로 하여금 기술이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유대감을 느끼게 하며, 이는 제품의 충성도로 이어진다.


예측적 UX (Anticipatory UX)

예측적 UX는 사용자가 명시적으로 명령을 내리기 전에 시스템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알림(Notification)의 단계를 넘어, 사용자의 과거 행동 패턴과 실시간 데이터, 그리고 현재의 물리적 맥락을 결합하여 가치 있는 제안을 던지는 '넛지(Nudge)'의 형태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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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안드로이드 XR 글라스나 메타의 AI 글라스는 사용자가 특정 랜드마크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질문을 예상하고 관련 정보를 준비한다. 사용자가 아침 운동을 시작하려고 운동화를 신는 동작을 인식한 스마트워치가 평소 듣던 재생 목록을 미리 띄워주거나, 공항에 도착한 사용자에게 탑승권 바코드를 즉각 노출하는 것이 전형적인 예측적 UX의 사례다. 이러한 선제적 대응은 사용자가 고민하고 선택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어, 기술이 삶의 비서로서 기능하게 만든다.


생성적 플로우 UX (Generative Flow UX)

생성적 플로우 UX는 디자인 프로세스 자체의 혁명을 의미한다. 기존의 UX 디자이너들은 사용자가 이동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미리 정의하고 화면을 설계해야 했다. 그러나 생성적 AI의 시대에는 AI가 사용자의 모호한 요청을 해석하여 그 자리에서 최적의 인터페이스와 워크플로우를 실시간으로 조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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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비결정론적 디자인'이라고 정의한다. 디자이너는 이제 고정된 화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AI가 상황에 맞게 꺼내 쓸 수 있는 동적인 빌딩 블록(Adaptive Cards)과 프롬프트의 체계를 설계한다. 사용자가 "지난주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줘"라고 말하면, AI는 즉시 관련 문서함, 일정표, 편집기를 하나로 묶은 새로운 작업 화면을 생성해낸다. 이러한 '저스트 인 타임(Just-in-time)' 인터페이스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흐름(Flow)에 따라 유연하게 확장되고 변화한다.


5. UX 디자이너들이 할 일이 많은 시대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위기설이 나오곤 하지만, AI 디바이스 시대는 오히려 UX 디자이너들에게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방대하고 복잡한 과업을 요구하고 있다. 화면이라는 캔버스가 작아지거나 사라짐에 따라 디자이너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경험'을 설계해야 하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디자이너들은 에이전틱 UX(Agentic UX)의 설계자로 거듭나야 한다.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는지, 사용자가 어느 시점에서 개입하고 제어권을 가져와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것은 기술적인 영역이 아닌 인간 심리와 신뢰의 영역이다. 인공지능이 내리는 판단의 근거를 사용자가 이해하기 쉽게 시각화하거나, 오류가 발생했을 때 부드럽게 복구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 작업은 디자이너의 섬세한 손길이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AI 디바이스 시대는 UX 디자인의 종말이 아닌 '대확장'의 시대다. 제품의 형태가 다변화되고 지능화될수록 인간과 기술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디자인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배워야 할 기술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해결해야 할 문제와 창조해야 할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새로운 시대의 문법을 받아들이고 화면 너머의 경험을 설계할 준비가 된 디자이너들에게 지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도전의 시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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