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작년부터 하려고 생각만 하다 아직까지 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예술인활동증명을 받는 일이다. 2022년 첫 영화를 작업한 이후 매년 단편영화 작업을 해 왔고, 그 가운데 주요 작품은 KOBIS에 등록도 된 상황이니 신청을 할 법도 한데 아직까지 하지 않았다. 이유는 예술인활동증명에 기한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당장의 예술인활동증명 기록이 필요한 상황도 아닌 데다 서류를 준비하기도 귀찮아서. 스스로를 예술가라 하기에는 미진하게 느껴져서. 무엇보다, 신청했다가 반려당할 일이 두려워서…. 그렇지 않은가. 기껏 민망함을 무릅쓰고 “나는 예술가다!” 자신 있게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는데, 예술인복지재단 측에서 “예술가 아니신데요?” 하며 반려하면 얼마나 민망하겠나…. 안다. 예술활동증명이 “예술인임을 승인하거나 증명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도 민망함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하기에 앞서 확실하게 예술가로 인정받을 만한 작품을 먼저 내놓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
이런 내 판단은 정확했다.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리더 윤덕원 님도 예술인활동증명이 반려되는 걸 보면 말이다. 20년 가까이 적잖은 히트곡과 음반을 내며 밴드 활동을 해오신 분도 활동 증명이 반려당하는 걸 보면, 아직 극장 개봉작 하나 없이 단편만 작업한 내 이력으로는 분명 예술가로 인정받기 힘들 거다. 기껏해야 활동 증명을 위해 서류 작성 한 번 해본 “예술가 호소인” 쯤 되겠지…. 나름 의미는 있는 셈이다. 국가에서 공인한 “비예술인”이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면 어떤 분들이 예술가로 인정을 받는 걸까. 애초에 예술이란 뭘까. 생성형 AI로 만든 제작물로 예술활동증명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소식까지 듣다 보니 예술의 본질에 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분명 심각한 상황이다. 이렇게 근본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니까. 칼럼계의 아이돌, 김영민 교수님께서도 그 유명한 글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에서 쓰지 않았나. “자신의 존재 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이한 사태가 발생하면,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그러니까, 예술에 관해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지금의 상황은, 예술가의 존재 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이한 사태가 발생한 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예술을 “감정의 전염”이라 했고, 피카소는 예술을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 했다. 개가수 유세윤 님은 “태양이 날 향해 비추고, 그러면 난 선크림 바른다”가 더 예술이라 했고, 그래서 나는 매일 선글라스에 우양산을 쓰고 다닌다. 이게 더 예술이니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따르면 예술은 문학, 일반미술, 디자인/공예, 전통미술, 사진, 건축, 일반음악, 대중음악, 국악, 무용, 연극, 영화, 방송, 공연, 만화 등 15개 카테고리 가운데 hwp로 증빙 가능한 활동이다. 그렇다. 예술활동증빙을 하려면 아래아한글이 필요한 것이다.
브로콜리 너마저나 윤덕원 님의 다음 솔로 새 싱글은 이 예술활동증명과 관련한 내용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싱글의 커버는 지금 반려당한 서류를 바탕으로 하게 될 것이다. 윤덕원 님 뿐이랴. 서류 미비 등으로 활동증명이 반려된 “예술가 호소인”들은 자신들의 활동 증명을 위해 작성했던 서류와 반려당한 메시지 등을 모아 전시 기획을 할 지도 모른다. 그 전시회장에는 윤덕원 님의 신곡이 하루종일 울려퍼질 것이다. 그렇게 울려퍼진 노래의 저작권료는 윤덕원 님의 다음 예술활동증명을 위한 증빙 자료가 될 것이다. 그때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담당자도 그 노래를 따라 부를지도 모른다. “안 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앵콜요청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