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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꾸고 이루지 못할까 봐

조혜은의 『눈 내리는 체육관』을 읽고

by 김현주

지은 씨에게


오늘은 딸의 생일이에요. 딸은 오늘 세 살이 되었고 엄마인 저도 세 돌을 맞았네요. 서당 개가 풍월을 읊는다는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이만하면 어느 정도 엄마 흉내를 낼 수 있게 된 걸까요. 자신이 없습니다.


딸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저는 희한하게 해방감을 느꼈어요. 나라는 사람이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도리어 마음이 편해졌어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어떤 이름이나 자리나 상이나 돈이나 그 무엇을 위해서도 쫓기듯 달음질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말이에요. 나는 그저 이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살리는 엄마이기만 하면 되는구나, 그래 그거면 되는구나 싶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라는 인간은 참으로 모순적이고 이기적이지요. 곧 엄마이기만 해서 슬퍼졌어요. 내 이름을 찾으려고 무리해서 일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면 또다시 쫓기는 삶에 지쳐 다시 이름을 포기하게 되었어요. 지난 3년은 그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자 딸의 생일인데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어요. 아이들 앞에선 웃고 축하하고 예쁜 말을 늘어놓았지만 아무도 없는 시간 혼자 알 수 없는 감정에 침잠하기도 하고 조혜은 시인의 글을 읽으며 또, 또 울먹였습니다.


사실상 나의 쓰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악몽을 꾸지 않도록 잠들 때까지 옆에 있다가 가라는 아이들 곁에 누워 있자면 이대로 나의 하루가 아이들의 하루와 같이 끝나게 될까 봐 두렵다. 품속으로 고르게 번지는 아이의 숨소리가 느껴지면 당장 책상 앞으로 달려가 뭐라도 적고 싶지만, 아이가 완전히 잠든 뒤에도 침대를 떠날 수가 없다. 어차피 이렇게 끝날 하루였는데 왜 더 다정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다정하게 거절하면 이해해 주었을까. 너희의 하루가 끝나면 엄마에게도 엄마를 마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엄마도, 사랑해.”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의 고백에 답한다. 죄책감에 시달린다. 미처 끝내지 못한 내 몫의 집안일을 머리 뒤에 가득 안고서 나는 아이 대신 악몽을 꾼다. 오늘도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런 하루도 괜찮았을까. 사랑은 아주 쉬운 일이 되었다가, 그렇게 영영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153쪽,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조혜은.)


평생 아빠와는 잠들어본 적이 없는 둘째 덕에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우는 사람은 저입니다. 가끔 큰애가 아빠랑 같이 자겠다고 떼를 쓰면 아빠가 취침 당번이 되는 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자는 날인 거예요. 아들은 저와 살을 맞대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더라고요. 문제는 아빠가 있으면 아이들 마음이 너무 충만해져서 잠들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냥 차라리 혼자 재우는 게 더 쉬워요. 그리고 잠들기 쉬운 밤이든, 그렇지 않은 밤이든, 아이들이 깊은 잠에 들어야만, 재우고 살금살금 나와 밀린 집안일을 마쳐야만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바닥에는 치우지 못한 놀잇감들이, 싱크대에는 하다만 설거짓감이 그득하고 건조기에도, 심지어 세탁기에도 빨랫감이 뒤엉켜 저를 기다려요. 다들 저만 기다려요. 제 삶에서 엄마라는 역할이 1순위, 살림인이 2순위, 나라는 사람이 마지막이라서 나에게도 내가 필요하다는 부름을 자꾸만 미루다 보니 슬픔이 자꾸만 자라는 듯해요.


——

어제는 딸의 생일이었고 아들이 갑자기 고열이 나더니 손발에 수포가 올라왔어요. 수족구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2주 전엔 설사와 구토를 동반한 장염으로 지난주엔 심한 알러지로 병원에 다녀왔는데 면역이 바닥났나 봐요. 어린이집 친구에게 바로 옮아버렸어요. 해열제를 교차복용해도 열이 안 잡히는 아슬아슬한 밤이었어요. 약 먹이고 간신히 재우고 나와 글을 마무리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아파서 깊이 잠들지 못하는 아이가 ‘엄마 엄마’ 울며 저를 찾아 또 다시 쓰지 못한 몸으로 잠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혜은 시인의 『눈 내리는 체육관』이라는 시집에 동일한 제목의 시에 이런 문구가 나와요. “육아는 미리 몸을 다 써서, 더는 마음을 채울 수 없는 일.” 육체노동이며 지식노동이며 감정노동인 육아는 클라이언트(아기)를 케어하기 위해 체력은 물론 순발력과 지구력, 위기 대처 능력에 정신력까지 동원해야 해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물리적 보상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와 환경에서 사랑과 책임이라는 이유로 수백 번 수천 번 몸과 마음을 일으켜야 해요. 그러다 보니 자꾸만 공허해지는 순간이 많네요. 사랑해서 사랑하는 만큼 무겁고 아이들로부터 받는 사랑이 너무나 유일하고 순전해서 다시 내 부족함이 비치면 절망합니다.


지난주였나 남편과 같이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경연프로그램을 봤어요. 거기서 나온 노래가 내내 마음에 남아 찾아 듣고 듣고 또 들었습니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주는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거라 말하지 마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김윤아, 꿈)


지은 씨, 꿈이 있나요? 엄마로 살다가 꿈을 자꾸 잊어요. 엄마인 우리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꿈을 꾸어도 될까요. 혹은 꿈을 이루지 않아도 될까요. 자꾸 잠들어 꿈만 꾸다가 이루진 못할 것만 같습니다.



2025. 10. 19

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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