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행복을 찾아서

by 효지늴기


강원도 영월군에서 발행하는 <살기좋은 영월>이라는 월간지를 무료로 정기구독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컨텐츠를 살펴보면 꽤나 다양한 읽을거리가 담겨있어서 활자를 좋아하는 내게는 매월 집으로 배송되는 월간지를 손꼽아 기다리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특히나 ‘영월 문학관’편과 ‘영월애세이’편을 애정있게 살펴보고 있던 중 요조 작가님의 반가운 글이 실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최대한 작은 성과를 들여 큰 성과를 냈을 때 맛볼 수 있는 ‘영리한 행복’을 주로 가르치는 세상속에서 나는 그 날 자판기 커피라는 작은 성과를 위해 큰 노력을 들였을 때 맛볼 수 있는 미련한 행복을 알게 되었던 것이니까. ‘미련한 행복’은 ‘영리한 행복’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느끼기 어렵다] 라는 구절에 계속 눈길이 갔다.


내가 느낀 미련한 행복은 뭐가 있을까.


미련함과 행복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어쩌면 전혀 연결고리가 없을 형용사와 명사의 조합으로 보이는데, 요조 작가님의 이 글을 읽고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 시간과 체력과 비용을 들여서 기꺼이 누리고자 하는 소소한 행복 같은 것.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즈음 미련한 행복을 느껴봤던 것 같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의 한 논술 학원 수업을 마치면 버스를 타고서 구서동에 있는 집으로 가는 루틴이었는데, 굳이 먼 길을 걸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생 전에 함께 거주하시던 남산동 집에 가보고 싶던 것이었다.


걸으며 생각 여미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린 시절 부터 추억 회고를 위한 발품을 팔았었나보다. 그 날의 추억을 진득하게 곱씹어보고 싶은 마음에 버스로 족히 8정류장은 지나야 하는 거리를 작은 보폭으로 걸어 구서동 집까지 갔던 것이었다.


중1때 할머니께서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처음으로 맞닥뜨려본 어린 나이였는지라 그 그리움이 참 오래도 갔다.


아예 모르는 누군가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의 공간이었던 곳에 살고 있을거라는 사실도 알고, 집 안으로 들어가 떠난 가족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늘 습관처럼 오갔던 장소가 무사히 내 눈 앞에 있어줘서 그 집을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었고, 행복이었다.


추억에 더 잠겨볼 수 있어서, 눈에 한번 더 담을 수 있어서. 눈가에 어릉어릉 고여버린 눈물이 차오르는 기분 마저도 행복했다. 어릴 적, 버스도 타지 않고 먼길 걸어, 걸어 그 날의 미련한 행복을 느껴보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