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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유 Jan 14. 2022

날파리가 나를 공격했다

날파리처럼 산다는 것

나른한 오후,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눈앞으로 작고 거슬리는 무언가가 나를 자꾸 쳐댔다.

커피를 사 온 탓에 자꾸 커피 냄새를 맡은 것인지 자꾸 내 앞에서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커피는 분명 저쪽에 있는데 이쪽에서 나를 귀찮게 할 건 뭐람. 날았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있는 그 녀석이 컴퓨터 스크린에 앉았을 때, 인터넷 화면에서 ‘먹이 주다.’를 ‘먹어주다.’로 보았을 때, 나는 이 녀석 때문에 어쩌면 내 업무를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작고 짜증 나는 녀석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휴지를 조금 뜯어 작은 그 친구를 있는 힘껏 눌렀다. 휴지를 펴보니 그 친구는 온데간데없고 구겨진 휴지조각만 내 손에 들려있을 뿐이었다. 분명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눌렀던 것 같은데 그 조그마한 친구는 그 틈새를 고새 찾고 빠져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기분은 찝찝했지만 어차피 그로 인해 그 작은 친구가 나를 피해 도망갔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나도 그 친구도 피해보지 않고 갈등 상황을 해결한 것이니 더욱 좋은 일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시 일에 집중하려는 찰나, 그 날파리가 나에게 달려오는 것이다. 아까는 어슬렁거리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달려들기까지 하는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위협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친구는 나에게 계속해서 달려왔다. 꼭 자신을 죽이려 했던 큰 존재에게 복수쯤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쯤 되니 나는 화가 나기보다 갑자기 날파리에게 경외감이 느껴졌다. 나라면 저 작은 날파리처럼 나보다 몇 천배는 크고 힘이 센 존재에게 맞설 수 있었을까.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게, 자신의 목숨을 다해 맞서는 그 아이를 보며 저렇게 작은 존재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부끄러워졌다.



나는 사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현실과 타협하는 데에 사용해왔다. 높은 현실의 벽을 넘어설 자신감이 없어서, 잔인한 사회에 맞설 용기가 없어서 나는 항상 그에 맞는 많은 포기를 해왔었고 그로 인해 마음은 편해졌지만 점점 나도 모르게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자존감이 점점 낮아졌다. 나는 어느샌가 잘하는 것이 없는 것이 당연해지고 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 어색해졌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평온한 마음이었고 나도 그런 나의 일상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내가 포기한 것들은 한쪽으로 미루어놓고 일상을 보냈다. 평소에는 편안한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사실 편한 마음이 아니라 죄책감과 자괴감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형태 없는 두려움에 맞서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 형태 없는 두려움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든 것은 나의 내부의 문제였을 것이다. 외부의 것들에 대한 나의 반응도 결국은 나의 내면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라면 지레 포기하고 단념하였고 외부의 시선, 나에 대한 평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내가 만들어 낸 공포심에 굴복했다. 외부의 것들을 신경 쓰느라 나의 내면에 충실하고자 하는 작은 용기조차 나에겐 없었다.


이 작은 생명체를 보며 느낀 건 작아도, 힘이 약하더라도 그들은 극복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을 맞닥뜨렸을 때 끊임없이 저항하고 자신의 삶만을 집중하며 살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게 설령, 나와 싸우기 위한 달려듦이 아니었을지라도,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생명체에게 달려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항상 나보다 큰 존재를 보면 두려워하고 숨기에만 급급했던 나에게 아주 작은 사건이지만 내가 이 작은 일에도 깨달음을 느꼈다는 것은 나는 아마 속으로는 용기를 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고, 어떤 압박과 두려움에도 겁먹지 않고 ‘나답게’사는 것이 사실 제일 기본적이지만 제일 어려운 것이란 생각을 한다. 사실 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하는 인간이지만, 날파리도, 어떤 다른 생명체들도 어려워하지 않는 기본적인 것들을 인간은 어려워한다. 기본적인 것을 채우지 못한 채, 추가적인 엉뚱한 것만 얻으려 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가진 인간도 공허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기본적인 것을 얻기 위해 0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도 아닌, 100도 아닌 0에서. 아주 기본적인 요소를 가지러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주 작은 날파리가 나에게 달려든 용기를 배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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