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대한 단상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나서.
우주선에서 눈을 뜨는 남자.
이 우주선 안에 깨어있는 인간이 또 있는지 확인하지만 살아남은 자는 나 혼자.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이 우주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이곳은 어디인지 탐색한다.
태양이다!
그의 눈에 찰나의 기대가 스친다.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은하가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그가 본 것은 우리 태양이 아니었다.
우주 영화에서 그려내는 우주는 역설적이게도 지구보다 좁다.
우주선이라는 한정적인 공간, ‘라이언 고슬링’ 혼자서, 2시간 40분을?
긴긴 러닝타임을 어떻게 채워나갈까. 대체 어떻게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 걱정은 역시나 기우였다.
남자는 복잡한 수식을 몸이 기억하는 대로 써 내려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까지 돌아가는 데는 113년이 걸린다는 결론을 내린다. 절망. 탄식.
이내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영화는 주인공의 잃어버린 기억이 파편처럼 떠오르는 방식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기억의 조각을 맞추면서 이야기를 따라간다.
또, 회상을 통해 극의 핵심이 되는 우주에 대한 정보를 여러 층위로, 점진적으로 설명한다.
학교 장면, 과학자들과의 토론 장면, 우주에서 주인공이 홀로 발견하는 새로운 사실들...
그는 선생님이었다.
왜 태양이 아프기 시작했는지, 왜 금성으로 가고 있는지.
태양의 온도가 15도 낮아지면 지구는 어떻게 되는지.
교실에 앉은 중학생들의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보게 되었다.
그 뒤로 우주선을 타게 되기까지의 그의 사연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중앙에선 밀려난 연구자. 지구를 구할 사람은 당신뿐이라는 세상의 부름.
생명의 필수조건이 물이 아니라는 주장, 평생을 바친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페트로바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아스트로파지’라는 태양을 좀먹는 존재가 ‘세포’라는 것을 발견한다.
새로운 발견에 기뻐하는 연구자의 순수한 희열.
그렇게 변방의 고학자에서 작고 푸른 우리별 지구를 구할 히어로가 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그의 마음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이 영화에서 끝내 과거는 현재를 구하고, 현재는 미래를 구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정체는 죽음으로 가는 우주선, 원 웨이 티켓.
돌아오는 법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나 끝내 주인공은 지구를 구하고, 또 돌아간다.
그 뒤로 영화는 쭉 전형적이지만,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운 장면들로 채워져 나갔다.
영웅 플롯 영화들의 공식을 지키면서도 <프로젝트 헤일메리> 만의 히든카드가 있었다.
외계와의 조우, 최초의 대화, 소통,
왈츠를 함께 추는 두 개의 우주선,
침투, 2차 만남, 친구가 되어감,
위기, 구출, 1차 승리,
또다시 찾아온 위기,
마침내 서로를 구하는 둘,
주인공 그레이스는 똑똑한 과학자지만, 영웅이라기엔 우리와 같이 평범하다.
가족과 연인이 없지만 그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30년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사람이 있는 이 세상에 남고 싶으며, 투철한 영웅 정신 따위 없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고 도망치려 한다.
그런 그에게 죽음 앞에서도 스스로 빛나게 하는 것은 ‘발견’이다.
세포를, 우주에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나의 능력을 알아주는 친구를,
내 안에 숨어있던 용기를, 지구를 살릴 방법을.
그는 끝없이 발견한다. 과학을, 타인을, 세상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내게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두 우주선이 왈츠를 추는 장면이다.
어제 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왈츠 음악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좋은 영화는 관객의 지나온 경험에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사건이 아니라 ‘발견’으로 서사를 끌고 간다.
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면서 내 삶의 모든 ‘최초의 발견’을 떠올렸다.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별’을 그릴 줄 알게 되었던 순간, 삼각형 두 개를 거꾸로 합친 별이 아닌 한 줄 그리기로 별을 그리고 신나서 종이 한 장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두 장, 세 장, 안방 벽지에까지 별을 그렸다가 혼났던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지개를 본 날, 별똥별을 본 순간,
동생이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는 모습을 온 가족이 지켜봤던 날...
영화가 끝났을 땐 알 수 없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생명과의 만남.
우주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생명체를 만나서 함께 각자의 행성을 구하고, 친구가 된다면?
지구를 구하라고 인간들이 이 우주로 나를 떠밀었을 때... 나를 구하는 외계인을 만난다면?
거울처럼 움직이는 너무도 극과 극의 환경에 살고 있는 두 생명체가 주는 감동에 벅차올랐다.
잠들었을 때 혼자서 일어날 수 없다는 점, 서로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는 것.
영화 속 록키는 외계 생명이라기보단... 또 다른 우주의 또 다른 자신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둘 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행성 밖으로 떠밀렸고, 둘 다 혼자였다. 그러니 록키는 외계인이 아니라, 다른 우주에서 나와 똑같은 상황에 던져진 우리 모두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두 생명이 각자의 행성을 힘을 합쳐 함께 구하는 여정은
모두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순수한 용기와 열정을 찾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나를 찾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어떤 순간들을 ‘발견’하며 살 것인지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Q. 영화를 보며 내가 스스로 던진 질문과 답변들.
1. 왜 1인극인데 긴장 유지가 되는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 관객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점진적으로 제공하는 방식 덕분에?
2. 록키 등장 전후 서사 밀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두 사람의 이야기, 두 세계의 이야기로 변하기 때문이 아닐까.
3. 초반의 “113년”이라는 수치는 단순 정보인가, 감정 장치인가?
인간의 유한한 삶을 넘어서는, 내 손을 떠난 듯한 상실감과 무력감을 주는 장치이자 정보?
영화가 끝날 무렵 불가능해 보이던 113년의 한계를 뛰어넘고, 주인공은 지구로 귀환한다.
(막바지에 지구로 돌아갈 때까지 4년 가량 걸린다는 정보도 나온다. 물론... 그보다 더 걸렸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