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약속이라도 한듯이
전쟁 때문에 쓰레기 봉투가 없어서 난리다. 우리 동네는 마트에서 장을 보면 한 장씩은 사게 해준다.
이게 그리 고마울 일인지, 눈물이 다 났다. 옆 동네는 마트에서도 안 판다는 소식을 들었다.
쓰레기 봉투가 없어서 쓰레기를 못 버리고, 그 한 장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선다.
오전 7시 20분에 출근길에 나선다.
준비가 늦어져 7시 30분에 나갈 때면 앞집 남자와 동시에 현관문을 열 때가 있다.
어색한 인사와 이어지는 침묵. 띵! 1층입니다.
그 뒤로 누가 먼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신발을 느리게 신게 됐다.
차를 타고 배드민턴 체육관을 지날 때쯤엔 늘 신호에 걸린다. 정지선 앞에서 좌회전을 기다린다.
보행자 신호등이 켜지면 한 여자가 뛰어온다. 하루도 뛰지 않는 날이 없다. 늘 횡단보도까지 못 가고 도로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길을 건넌다. 정류장에서 막 출발하려던 버스를 타고 사라진다.
그리고 코너에서 자전거 탄 여자가 나를 지나쳐간다. 항상 웃고 있다. 파란색 모자를 자주 쓴다.
어제 내린 비가 맺혀있던 꽃봉우리들을 모두 피웠다. 벚꽃길을 달리는 여자의 종착지가 궁금했다.
그가 나를 아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한다.
우린 약속이라도 한듯이 연극 속 등장인물처럼 각자의 타이밍에 등장해 제 역할을 한다.
대본도 없이 서로의 하루에 멋진 조연이 되어주기로 한다.
유독 아침에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은 오늘이었지만, 혼자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 하루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