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 수업 때였다.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사과를 떠올려보라고 하셨다. 각자 일어나서 떠올린 사과의 모양과 색깔을 설명하도록 하셨다. 평범한 사과의 모습들이었다. 이어서 너희들 머릿속에 있는 사과들은 절대로 같은 사과일 수 없다고 하시며 어떠한 개념을 설명하셨다. 그 말을 아직까지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설명할 때 나오는 사례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보는 사과는 이데아 세계에 있는 '완벽한 사과의 원형'을 불완전하게 본 것일 뿐이며, 각자 떠올린 사과의 모습은 같을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왜 서로를 오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반에는 봉구라는 친구가 있었다. 구수한 이름과 그에 걸맞게 순하고 수더분한 성격을 가진 착한 아이였다. 봉구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짝사랑했는데, 난 봉구가 싫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나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봉구와 내가 짝꿍이 되었다. 자리는 교탁 바로 앞, 선생님과 정면으로 마주보는 자리였다. 책상은 둘이 하나를 쓰는 옛날식 책상이었다. 가운데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금이 그어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오른편에 앉은 봉구에게 이 선을 넘어오면 넌 죽는다라고 하루에 한번씩 선언했다. 봉구와 내가 짝꿍이 되어 친구들의 놀림은 더욱 거세졌고, 이미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나였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1교시 수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맙소사, 어제 준비물로 삼각자와 각도기 세트를 분명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깜빡 잊고 말았다. 내 자리는 맨 앞자리… 준비물 안 가져온 사람 손 들라고 하실텐데 어떡하지 싶었다.
그 때 봉구가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까칠한 8살은 봉구의 손을 탁 쳐냈다. 힘이 너무 세던 탓일까? 책상 위에 있던 봉구의 교과서와 필통, 각종 물건들이 교탁 앞으로 물건들이 쏟아졌다. 일부러는 정말 아니었다.
친구를 괴롭힌 죄로 수업 시작부터 칠판 앞에서 손들고 벌을 서게 되었다. 그날 준비물을 안 가져온 애들은 아무도 혼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수업하는 칠판에 서서 모두가 보는 앞에 나혼자 벌을 받는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찔찔 났으면서도 봉구의 마음은 하나도 몰랐다. 한 학기 넘게 좋아하는 짝꿍에게 자기 삼각자 세트를 양보하려던 봉구의 예쁜 마음을 헤아려 준 것은 선생님 뿐이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정말 지혜로운 분이셨는데, 선생님이 내린 솔로몬의 재판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나와 봉구와 선생님,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모두 다른 마음으로 그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오해란 같은 상황이라도 각자가 서 있는 자리와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 생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여덟살의 나는 봉구의 마음을 단 1g도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봉구를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다.
서점에 갔다가 그림책 코너를 구경하는데 ‘사과를 그리는 100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작가는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의 틀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그림 그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사과는 다 다르고, ‘그리기’에 정답이 없다는 점을 전한다는 점에서 좋아보였다. 이 책처럼 모두 다 각자만의 사과가 있다는 점을 늘 떠올리다보면 누군가를 오해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