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과 속도 사이에서
해 질 무렵 운전을 할 때
후미등의 빨간색으로 가득 찬 도로를 보며
저 신호는 멈추라는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한쪽 발을 브레이크에 올려놓은 채 달린다.
도심 도로에서
액셀을 깊게 밟을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오히려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서있는 자리에서 달라지는 풍경이 아닌 것 같은 생각.
방향은 다르지만
멈추라는 신호는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되려 초록불이 더 낯설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조급하게 만들기 위해 괜히 나를 재촉하는 듯하다
요즘 정치 뉴스를 보면
머릿속 신호등이 자꾸 깜빡인다.
모두가 초록불을 외치지만
아무도 먼저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지 않는다.
한편, 얼마 전까지 SNS에서 불붙었던
두바이쫀득쿠키의 열풍은
검색량이 고점을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반토막이 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때 ‘K푸드 트렌드’처럼 퍼졌던 것이
순간의 관심 속도만큼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다. 
과거의 트렌드는 종종 빨간불처럼 먼저 켜졌다가
곧 사라지고 마는 신호 같기도 하다.
넘어지지 않을 만큼이면 족하고
되돌아볼 수 있을 만큼이면
그 정도 여유면 고맙다.
습관이 건강으로,
버릇이 삶으로 드러나는 시기에 들어섰다는 걸
이제야 체감한다.
신경 쓰이는 일들이
손끝의 거스러미처럼 열 가지가 넘어도
나마저 나에게 냉정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래서 나는 질주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속도를 내지 않는 게 아니라
속도를 관리한다는 쪽에 가깝다.
넘어지지 않을 만큼이면 족하고
발이 브레이크 위에 있다는 건
두려움의 표시가 아니라
선택권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다.
멈출 수 있어야
다시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
종종 묻는 목소리가 들린다.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가느냐고.
왜 아직도 그 구간을 지나고 있느냐고 던지는 걱정의 목소리. 어떤 참견은 그런 얼굴도 갖고 있고
결국 그런 참견을 용인한 것은 젊었을 적 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늘 목적이 있는 길 위에서는
전진보다 정지가
더 정확한 답일 때가 있다.
서두르지 않는다고 해서
길을 포기한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은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속도를
고르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해는 저물고
신호는 여전히 빨간색이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엔진을 끄지 않은 채 기다린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
아직 건너가지 않았을 뿐.
브레이크에 발을 올린 채로도
길 위에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일본 소설 <버터>를 옮긴이가 번역을 끝내고 소감을 적은 글이 있다. “삶의 모든 순간은 복선이다 “
그리하여 오늘의 멈춤도 결국엔 나아감일 것이다.
지금 브레이크에 발을 올린 채 있는 누군가에게도
그건 분명히 해당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