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라는 선언

알고리즘과 징크스 사이에서, 봄을 시작값으로 두는 일

by 퐝클리

입춘은 달력 속 사건처럼 보인다.

“봄이 시작된다”는 선언이지, 실제로 따뜻해졌다는 증거는 아니다.

외출길에 나는 여전히 패딩을 입었다. 몸은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고, 마음도 마찬가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SNS를 보면 입춘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포스팅이 유독 많다. 대청소를 하지 말라, 화를 내지 말라,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 등등

사람들은 그렇게 징크스를 만들고, 그것을 피함으로써

한 해의 운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징크스는 미신이라기보다 불안을 관리하기 위한 개인적인 장치에 가깝다.


개인을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요즘에는 징크스 대신 알고리즘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인다. 징크스가 행동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놓는다면, 알고리즘은 내가 오래 머물렀던 체온만 반복해서 보여준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은 추천 목록에 잘 뜨지 않는다. 발음하지 않았고, 검색하지 않았고, 오래 바라보지 않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제외된다. 남는 것은 결국 내가 스쳐 지나간 것들의 누적값이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의 합이자, 오래 들여다본 생각들의 결과다.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봐야만 한다고 믿는 것들을 끝까지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얼마나 반복해야 그 믿음이 값으로 남을지는 모른다.

다만 알고리즘은 설득되지 않는다. 말이나 다짐, 의도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오직 체류한 시간만 남긴다. 머문다는 것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천천히 쌓이는 일이다. 눈에 띄지 않게 깊어지고, 어느 순간 높이가 된다.


봄이 와도 체감은 없고, 징크스는 오늘도 귓가에 속삭이고 알고리즘은 여전히 나를 밀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은 입춘이다. 세상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결국 도착하는 계절처럼 소망을 시작값으로 남겨둔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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