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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Aug 09. 2024

잠들기 전에

아쉽다는 말

1. 어제는 열두 시간을 잤다. 너무 피곤해서 세수를 안 하고 그냥 곯아떨어졌는데 다행히 뾰루지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푹 자고 일어났다고 오늘 컨디션은 괜찮았던 걸 보면 역시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2. 요즘 기분이 들쑥날쑥하다. 하루 좋으면 하루 나쁘고 다음날 좋고 그다음 날은 안 좋고 이런 식이다. 차이가 큰 건 아니지만 나는 알 수 있다. 기분이 좋고 나쁨의 차이가 너무 크다면 내가 가장 힘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폐가 될 수 있겠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컨디션 관리에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맑았다가도 오후에 갑자기 한바탕 내리는 소나기처럼, 여름 날씨처럼, 내 기분이 좀 그런 편이다.


3. 머리를 기르는 중이다. 사람들은 나한테 긴 머리보다 단발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하고, 나도 그걸 아는데 나의 추구미는 긴 머리라서 그렇다. 오늘은 수업 시간인데 4학년 지우가 갑자기 플라스틱 빗을 꺼내 내 머리를 빗어 주었다. 하루 걸러 아이들에게 뭔가 작은 것을 받게 된다. 그제는 3학년 도율이가 목이 돌아가는 작은 키링 인형을 주고 갔다. 지우가 내 머리를 빗을 때, 천사의 날개가 내 머리를 쓸어주고 있나,라는 상상을 잠깐 했다. 평화로운 오후의 수업이 지나가고 있었다.


4. 이번 주는 한 주가 되게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휴가가 끝나고 맞이하는 주라서 시간이 지루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면 어쩌나, 약간 걱정했었는데.


5. 책을 읽는 시간, 글을 쓰는 시간이 무용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읽거나 쓰며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라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읽고 쓰는 시간을 내게서 없애는 이도 나고, 읽고 쓰는 시간을 나에게 쥐어 주는 이도 나다.


6. 요즘은 음악을 듣는다는 게 너무 좋다.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고 행복이다. 출퇴근하면서 음악을 듣고, 집에 있을 때는 거의 내내 음악을 들으며 집안일을 하거나 사부작거린다. 어떤 때는 너무 좋은 음악을 들으면, 행복이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순간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7. 퇴근하고 와서는 피맥을 즐겼다.


8.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있다.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첫 작품부터 너무 좋아서, 반납일인 16일까지 다 못 읽는다면 한 권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9. 아쉽다,는 느낌에 허할 때가 있다. 나는 뭐가 이렇게 아쉬울까. 아쉽고 허전한 기분은 그림자처럼 내 언저리에 드리워 있다. 무엇으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할 거고, 누구도 나를 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항상 깔려 있지만 그걸 알면서도 구원을 바라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를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나는. 외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영리한 아이라고 나를 많이 추켜세워주셨다. 어쨌든,  사람은 사람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옆에 있어 줄 수는 있다. 때로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주, 많은 때에 그저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때가 많았다. 나는 그런 걸 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진실일까, 잘 모르겠지만 가끔씩은 진실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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